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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김구이

by 에디터's 2021. 4. 28.

 

‘김’은 어떤 음식에나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반찬이 없을 때 포장 김 한 봉이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과도 더없이 잘 어울린다. 기름 위에 솔솔 뿌려진 소금에 간도 잘 베어 있으면 그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그러나 포장 김 용기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김이 열 장 내외라 꼭 한두 숟가락을 남기고 아쉬움을 갖게 한다. ‘김 몇 장만 더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제대로 된 김을 만들어 보리라!’ 커다란 포부를 안고 백 장짜리 김 한 톳을 산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식구가 많은 관계로 엄마는 김을 한 톳씩 사 오곤 하셨다. 김 한 장 꺼내어 앞뒤로 한번 훑어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김 위에 참기름을 칠하셨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끝에 닿으면 침이 꼴깍꼴깍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 위에 소금을 솔솔 뿌리고 나면 김 한 장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열 장이 쌓이면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어 김 한 장을 올려놓으셨다. 김이 타지 않도록 재빠르게 뒤집고 다시 뒤집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질 수밖에 없었다.
한 장만 먹어 보겠다며 떼를 쓰는 우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엄마는 큰 인심을 쓰셨다. 뜨거운 김 한 장을 받아들고 손 가는 대로 쭉쭉 찢어 동생들에게 나눠주셨다. 모든 음식이 그렇듯, 갓 나온 음식은 그냥 그대로 맛이 있었다. 맨입으로 먹기에 다소 짜기는 했지만 충분히 먹을 만했다. 참기름과 소금의 적절한 비율과 더불어 김이 만나자, 누가 먹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음식으로 재탄생이 된 것이었다.
불에 구운 김의 사각거리는 식감도 참 좋았다. 김을 구울 때마다 연탄불도 탁탁 소리를 냈으며 소금과 참기름으로 인해 불의 색깔도 순간순간 다양한 색깔을 연출했다. 김을 굽는 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많은 김을 한꺼번에 굽지 않는 이유도 있었고, 장시간 두면 밀봉을 잘해도 눅눅해진다며 엄마는 일주일 분량을 고집하셨다. 언젠가 눅눅해진 김을 한입 베어 물고 나서 남은 분량에 손을 못 댔던 적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김 한 톳 백 장은 식구가 많았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게눈감추듯 없어졌지만, 나중에 자취하면서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참 어려운 점이 있었다. 김구이를 해서 빠른 시간 내 소비하지 않으면 눅눅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김 보관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야 알았다. 냉동실에 보관하면 다소 오래갈 수 있다는 건어물 사장님의 조언이 있기는 했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별수 없었다.
요즘도 저녁 밥상에는 김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섣불리 손이 많이 가는 김구이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의 결과였을까. 마트에서 포장 김을 사곤 한다. 만들어 먹는 재미와 비용 절약 차원을 떠나, 바쁜 현대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 보니 이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또 모르겠다. 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진다면 엄마가 우리를 위해 김구이를 하셨듯 나도 열정과 열의를 한번 불태워 볼지도.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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