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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옥 목걸이

by 에디터's 2021. 3. 16.

세상을 살다 보면 특별한 체험을 할 때가 있다. 
책 속에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경험하기도 하며 좋아하는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그냥 멍하다. 내가 나인지, 혹은 지금 나는 어디서 왔을까, 그것도 아니면 나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착각과 망상을 한동안 쥐고 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절대 나쁘지는 않다. 지루하고 따분했던 일상에 시원한 청량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때 홍콩 영화가 시대를 주름잡았을 때가 있었다. 이소룡, 성룡, 홍금보라는 배우가 인기 가도를 달라지면서, 나오는 영화마다 히트를 쳤다. 평범했던 주인공이 뛰어난 도사나 스승을 만나 무술의 달인이 되어 부모님의 원수를 갚거나 못된 놈들을 혼내 준다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뛰어난 스승은 말끔하고 세련된 모습이기보다는 작고 행색이 초라하며 말투 또한 거칠다. 그런 그들에게는 특별한 비법의 책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도 홍콩 영화나 무협지에 한참 빠져 있을 때는 길을 걸으면서도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를 보게 되면 혹시 내공이 가득 차 있는 도사로 오인하기도 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오는 영화마다 승승장구하던 홍콩 영화의 인기가 추락하고, 성룡, 이연걸이라는 대스타들도 나이가 들어 힘을 못 쓸 즈음, 일터에서 한 아저씨를 알게 되었다. 그냥 평범했다.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소개하면서 시간이 나게 되면 내 얘기 좀 들어 보겠냐면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첫 만남 후, 몇 개월 뒤 나에게 부탁할 게 있다면서 A4 용지를 내밀었다. 비자 연장을 해야 하는 데 인터넷 사용이 서툴러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되어 흔쾌히 응해 주었다. A4 용지에 쓰인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그 아저씨에게 하나하나 입력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절차도 복잡하지 않았다. 연장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삼사일은 걸려야 한다고 했다. 덕분에 직접 찾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는 볼 때마다 미소를 잊지 않으셨고, 늘 감사의 표시로 한 손을 들어 보이곤 했었다. 그러던 아저씨가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간다며 나를 찾아왔다. 중국으로 가기 며칠 전이었다. 아저씨의 한 손에는 둘둘 말은 천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내가 글씨 연습하는 종이야. 나중에 글씨 연습할 때 좋을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저씨는 서예에 조예 깊다고 했다. 그 종이에 붓에 물만 묻혀서 글을 쓰면 종이에 글자가 써지고 물기가 마르면 사라진다고 했다. 펼쳐보니 그냥 종이와는 다소 다른 재질처럼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준 것은 옥 목걸이였다. 십이 간지 동물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옥은 사람에게 좋다며 가급적이면 몸에 지니고 다니라며 건네주었다. 의외의 선물들이라 얼떨떨했다. 짬이 나면 아저씨가 해주시던 다소 허무맹랑했던 얘기들이 그 선물을 받고 나니 순간 진짜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찾아 헤매던 도사가 혹시 이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과 불안감도 스쳐 지나갔다. 
아저씨는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났다. 나의 손에는 부적처럼 아저씨가 주신 옥 목걸이가 쥐어있다. 매일 아침이면 옥 목걸이를 만지며 시작한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요정 지니를 소환하듯 말이다. 언젠가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을 만날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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