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많이 자란 머리카락을 보면서 오늘은 미용실을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외투 안에 지갑만 집어넣고 집을 나섰다. 자주 가는 미용실이 휴일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이다. 도착해 보니 미용실은 문이 닫혀 있었고 그때서야 ‘아뿔싸! 화요일이었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참 걸어온 길도 있고 그냥 되돌아가기는 뭔가 억울한 듯싶어 주위에 있는 미용실을 찾았다. 마침 가까운 곳에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평소 재고 따지는 성격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코로나 사태 때문일까? 매장 안은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미용실이라면 커트 정도는 다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다소 젊은 미용사가 다가왔다. “어떻게 해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앞머리는 기르고 있어 그에 맞게 잘 잘라주세요.”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미용사는 잘 알았다는 뜻으로 “네!”라는 말과 함께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짧은 커트가 아니었기에 미용사는 가위를 들고 옆머리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뭐 어려울 게 있을까 싶어 안심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능숙한 헤어드레서와는 다른 느낌의 가위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미용사를 다른 분으로 바꿔 달라고 하기에는 미용사 자존심을 봐서도 그렇고 그렇게 말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그래도 잘해줄 거라는 믿음만을 안고 말이다. “머리를 숙여 보세요.” 하는 말에 고개를 숙이고, 길었던 뒷머리가 사각사각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3개월가량 길었던 머리카락은 겨울을 따뜻하게 막아주었던 방패와 같았다.
조금씩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들로 인해 목덜미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가위로 자르고 있는 거라 큰 우려도 없었다. 뒷머리까지 다 자르고 나니 30여 분이 지났다. 보통이라면 이미 다 끝났어야 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었는지 그 미용사는 다시 가위를 집어 들고 옆머리를 다시 자르기 시작했다. 허리가 점점 아파졌다. 이제 되었다고 그만 잘라 달라고 할까 말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 10분이 정처 없이 흘렀다. 어느덧 옆머리는 귀 위까지 껑충 올라가 있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은 아닐까. 뒷머리를 열심히 다듬던 미용사는 급하게 카운터에 있는 원장님을 찾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원장님은 가까이 오더니 면도기를 잡고 뒷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도 말을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뭐가 잘못되었나요?” 원장님은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미용 기술이 많지 않은 미용사라 실수한 것 같다고 그제야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결국, 정말로 원하지 않은 머리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원장님과 미용사는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죄송하다고 했다. 문을 여니 겨울 찬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짧아진 머리 탓이었을까. 찬바람이 더욱더 춥게 느껴졌다. 모자를 눌러쓰고 나서야 찬바람을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문득 매번 다니는 미용실을 고집하는 선배가 생각났다. ”커트야 아무 데서나 깎지?”하고 농담으로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은 그 선배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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