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여행을 떠나요

[광주 여행] 무등산 자락으로의 힐링 산책, 충장사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안전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상에 존재하는 코로나19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 붐비는 곳은 피하게 되는 요즘인데요, 그렇다고 하염없이 집콕만 하고 있기엔 가는 세월이 야속할 뿐입니다. 안녕하세요, 앰코인스토리 가족 여러분! 이번 광주 & 인천 여행은 덜 붐비는 인파에 공기마저 좋은 자연 속 힐링 여행지, 광주 무등산 자락으로의 산책을 떠나보았습니다. (^_^)

충장공 김덕령(金德齡) 장군의 넋을 기리는, 충장사

 ▲ 충장사를 가는 버스가 무등산 자락의 문정 휴게소에 멈춰 선다

먼저 소개할 무등산 자락의 힐링 장소는 ‘충장사’입니다. 4수원지를 지나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곳으로 충장사로 향하는 숲길이 정말 아름다운데요, 그곳을 가기 위해 광주 시내에서 탄 버스가 무등산 자락을 타고 올라 문정휴게소에 정차합니다. 매점을 겸하는 작은 휴게소는 낡고 오래된 간판을 내걸고 자리합니다. 목마른 방문객이 스스로 우물을 파고자 내부를 들어서자 뒤뚱한 몸체의 TV가 확성기를 켜고 여행객을 반깁니다. 볼록 브라운관으로 재생되는 화면에도 지지직 노이즈가 제법 묻어나는, 공간 안의 모든 것들이 시간을 거슬러 응답하라 시대로의 입성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휴게소 앞쪽의 공터는 충장사 앞에 조성된 전용 주차장과 함께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편의를 돕습니다. 혹시나 하는 주차 걱정은 NO! 평화로운 파킹을 마치고 충장사 입구를 향하는 발걸음이 외삼문 옆에 설치된 안내판에 멈춥니다. 

▲ 충장사 입장 전, 발걸음이 외삼문 앞에 설치된 안내판에 멈춘다

1975년 2월 조성된 충장사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배치도가 보이는데요, 내부 지도를 보며 충장사 경내의 대략적 배치를 가늠해 봅니다. 김덕령의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 충장사, 동재와 서재, 은륜비각과 해설비, 유물관, 충용문, 익호문 등이 세워져 있으며, 특히 수직축 상에 일렬로 배치된 충장공 묘소, 사당, 내삼문, 외삼문이 인상적이네요. 사당 뒤쪽 언덕에는 김덕령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충장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사우 및 묘역으로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75년 건립되었습니다. 김덕령 장군은 앞서 ‘충효동 왕버들군(群)’ 여행 글에서도 소개해드린 바 있는데요, 그곳의 왕버들나무가 장군이 태어날 때 심은 탄생목(木)이라는 설이 있다 하여 ‘김덕령 나무’라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지요. 
광주 출신의 김덕령 장군은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왜군과의 전투에서 민첩하고 탁월한 능력을 보인 의병장입니다. 1594년 의병을 정돈하고 선전관이 된 후, 권율의 휘하에서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하여,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하였는데요, 1596년(선조 28) 충청도의 이몽학 반란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적장과 내통한다는 무고로 체포되어 구금, 혹독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杖毒)으로 옥사하였습니다. 그 뒤 영조 때 무죄가 밝혀져 병조판서로 추증되었지요. 작자와 연대 미상의 전기 소설, 《김덕령 전》에는 그의 생애와 도술이 잘 묘사되어 있답니다. 

충장사 외삼문(外三門)인 충용문(忠勇門)을 통해 경내를 진입합니다. 층장사의 내・외삼문, 재실 및 비각은 건물의 표면이 흰색으로 매우 인상적인데요, 해설자분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는 김덕령 장군의 무고와 정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현판의 ‘충용(忠勇)’이란 이름은 선조가 김덕령 장군께 내린 ‘忠勇軍(충용군)’이란 군호(軍號)에서 따온 것이며, 글씨는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1902~1981) 선생의 제자인 경암(景岩) 김상필(金相筆, 1914~1995) 선생이 쓰셨다고도 알려주셨습니다. 많은 사당이나 향교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들어갈 때는 오른쪽, 나올 때는 왼쪽 문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 점을 안내하는 입구의 표지판에 동입서출(東入西出) 네 글자가 명확하네요. 

▲ 충장사 내삼문(內三門)인 익호문(翼虎門)의 현판
▲ 내삼문 지입 전 만나게 되는 동재(東齋)

저 멀리 충장사의 내삼문인 익호문(翼虎門)이 보입니다. 그곳까지 쭉 뻗은 길이 마치 김덕령 장군의 올곧음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길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앞서 담은 머릿속의 배치도를 떠올려 보면 내삼문 너머로 사당인 충장사와 김덕령 장군의 묘가 일자로 자리해 있을 터. 내삼문 진입 전 앞쪽으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각각 자리하고 있습니다. 
충장사 내삼문(內三門)인 익호문(翼虎門) 앞에서 그 현판을 올려다봅니다. ‘익호(翼虎)’는 광해군이 김덕령 장군에게 내린 ‘翼虎將軍’이란 군호에서 따온 이름이며 현판의 글씨는 외삼문(外三門)인 충용문(忠勇門)과 마찬가지로 경암 김상필 선생이 썼습니다.

▲ 가을날 단풍이 만발한 충장사 ( 사진출처 : 오매광주)

익호문을 지나자 정면으로 김덕령 장군의 사우인 충장사(忠壯祠)가 위풍당당합니다. 이곳에는 충장공의 영정(影幀)과 교지(敎旨)가 봉안되어 있는데요, 사우(祠宇)의 이름은 정조가 1788년에 김덕령에게 내린 시호(諡號)인 충장공(忠壯公)에서 따온 것입니다. 충장사는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외삼문과는 달리 단청을 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사당 내부에는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네요. 

▲  사당 앞쪽에 위치한 김덕령 장군의 은륜비각(恩綸碑閣)

밖으로 나온 걸음이 사당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곧 충장사 앞에 있는 김덕령 장군의 은륜비각(恩綸碑閣)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는 1842년(현종 8년) 당시 광주 목사였던 조철영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이라고 합니다. 비석 앞에는 비석의 내용을 담은 해설비(解說碑)가 자리합니다. 1979년 12월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1914~1999, 한학자·금석학자·서예가·역사학자) 선생이 지었다고 하네요. 

▲  김덕령 장군의 묘소를 가는 사재 옆의 출입문
▲  김덕령 장군의 묘소(墓所)

사당 뒤쪽 언덕으로는 김덕령 장군의 묘소(墓所)와 묘비가 있으며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당에서 바로 통하는 길이 없는 그곳을 가기 위해 서재 옆의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갑니다. 그 길을 따라 약 100m 정도 올라가면 장군의 묘를 만날 수 있는데요, 뚜벅뚜벅 걷는 걸음과 스치는 자연의 풍경이 한없이 한적하고 평화롭습니다. 정돈된 나무들 사이로 난 잔디길, 그 끝으로 김덕령 장군의 묘와 비석, 석물 등이 위치합니다. 장명등(長明燈)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무인석(武人石)과 석양(石羊)이 각각 마주하며 이를 수호하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네요. 충장공 묘 앞에서 내려다보는 충장사 전경도 새롭습니다.
끝으로, 충장사 탐방의 대미를 장식할 충장사 유물관(遺物館)을 향합니다. 이곳 전시실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11호로 지정된 ‘김덕령 장군 의복’과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관곽, 친필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요, 전시된 그의 의복으로는 조선 시대 문무관이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왕을 호위할 때, 또는 국난 시에 입었던 철릭과 두루마기와 같은 모습이지만 옷깃이 직선으로 곧아 이름 붙여진 직령포, 그리고 저고리 1점과 바지 1점이 있습니다. 철릭 여름용과 겨울용이 있으며, 전시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그가 입었던 것으로 위급 시 양팔을 모두 뗄 수 있게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직령포는 흰 무명을 곱게 누빈 춘추용과 솜을 두텁게 두고 누빈 겨울용으로 구분됩니다. 이 옷들은 16세기 말 복식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답니다. 

Travel Tip. 충장사
광주 북구 송강로13 (금곡동 1023)
매일 09:00~18:00 (동절기 17:00까지, 연중무휴)
062-266-6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