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광주, 그리고 봄
윤상원 열사 생가 & 만귀정, 2편
수중 풍류를 즐기다, 만귀정(晩歸亭)
살랑이는 마음과 달리 코로나19로 강제 집콕을 감행하고 있는 요즘, 바이러스 범주 밖의 산책지가 너무도 절실합니다. 되도록 인적 드문 곳으로의 외출은 자연히 자연을 벗 삼고 있는데요, 광주광역시 서구 세화동에 위치한 만귀정(晩歸亭)은 2차선 아스팔트 옆길, 동하부락이라는 입석을 지나 인적 드문 숲길로 접어들어 만나게 됩니다.
그곳에 일직선으로 놓인 세 개의 정자, 전라도 지역에서 유일무이한 형태의 정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독특한 누정은 서구 8경 중 제1경으로 시 지정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전북 남원에 살던 효우당(孝友堂) 장창우(1704~1744)가 광주서구 동하마을에 이거한 후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곳. 정자의 명칭 ‘만귀정(晩歸亭)’은 효우당이 노년의 인생을 자연과 더불어 보내겠다는 ‘영귀(詠歸)’의 뜻으로 해석됩니다.
커다란 연못에 수중정자 3개가 일렬로 늘어서 장관을 이루는 풍경. 주변에는 소나무, 버드나무, 왕벚나무 등이 우거져 운치를 더한다고 하는데요, 실제 찾은 만귀정은 경관정비사업으로 곳곳에 현수막이 걸리고 잘린 나무들이 방치되는 등 다소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수막에 의하면 공사 기한이 2020년 1월 16일까지로 되어있는데…. 여전히 진행 중인 공사와 지저분한 주변 환경은 시당국의 적극적인 시설관리가 시급해 보입니다.
연못 한가운데 세운 수중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정사각형 팔작지붕을 가집니다.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동·서·남쪽의 세 방향에는 난간을 돌렸는데요, 만귀정 외에 습향각(襲香閣)과 묵암정사(默菴精舍)가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한 줄로 늘어서 있습니다. 만귀정시사(晩歸亭詩社) 창립기념비를 살펴보고 습향각으로 이어지는 다리, 좌측과 우측에 놓인 널찍한 돌은 각각 취석(醉石)과 성석(醒石)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해석하자면 들어갈 때는 술에 취하더라도, 나올 때는 술에 깨어나오라는 뜻을 갖는데요, 이는 이곳이 문인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1940년, 효우당 세손 묵암 장안섭이 지은 습향각(襲香閣)은 사방 1칸의 팔작지붕으로 주위의 연꽃 향기가 엄습하여 온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 이름대로라면 술에 취하고 깨는 것이 아니라 연꽃 향기에 취하고 깨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이 되었든 이곳에서 시를 읊으며 자연을 즐겼던 옛 문인의 풍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묵암정사는 만귀선생의 후손인 장안섭의 공로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60년 광산군민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정자로 노년의 휴식처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준 것입니다. 사방 1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커다란 연못에 일렬로 늘어선 수중정자 3개는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연꽃이 가득 차며 가을에는 왕버들 나무가 흥취와 시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만귀정이 위치한 동하마을은 조선조 초엽, 청주 한씨가 들어와 살면서 생성된 마을로 그 뒤 영천 이씨가 들어와 살고 약 250년 전에 흥성 장씨가 전북 고창에서 옮겨와 세거하고 있습니다. 뒤로는 백마산과 옥녀봉이 솟아있고 앞으로는 송정 평야의 넓은 들판이 펼쳐진 마을, 그들 가운데 흐르는 극락강은 수리가 매우 좋아 전형적인 농촌 형태를 지니며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완성합니다.
광주 서구 동하길10 (세하동 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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