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광주, 그리고 봄
윤상원 열사 생가 & 만귀정, 1편
길고 긴 코로나19와의 전쟁에도 여지없이 봄은 찾아옵니다. 춘흥에 겨운 꽃들이 지천에 만발하건만 그 봄을 온전히 즐기기란 여전히 버거운 현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앰코인스토리 가족 여러분! 살랑대는 마음 따라 사부작 걷는 걸음, 이번 여행은 ‘오월 광주, 그리고 봄’이라는 주제 아래 윤상원 열사의 생가(천동마을)와 만귀정(동하마을)을 가보았습니다.
오월 정신 천동마을, 민들레 홀씨되어 평화 전하리
따뜻한 봄볕이 파릇한 생명을 틔우는 오월의 어느 날, 광주의 봄 역시 매한가지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 싱그러움을 오롯이 즐기기엔 ‘오월의 광주’는 우리에게 특별합니다. 5·18의 기억이 서글픔과 애잔함을 전해오는 이맘때, 그 먹먹함에서 비롯한 걸음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대변인, 서른 살 청년 ‘윤상원 열사’의 생가를 찾습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의 천동마을은 윤상원 열사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지류, 황룡강이 무심히 흐르는 지척에 자리한 마을은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를 지나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는 걸음, 저 멀리 노란 민들레 벽화가 그곳이 열사의 생가임을 알려옵니다. 하얀 벽돌담에는 1974년, 군 복무 중 아버지에게 보낸 윤상원 열사의 편지글이 소개돼 있습니다. 서슬 퍼렇던 유신 독재의 암울한 현실을 사는 스물네 살 젊은 윤상원의 고뇌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엿볼 수 있는 벽 앞에서 한동안 걸음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열사의 생가에 들어서니 집 한 채 덩그러니 오가는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열사의 호를 딴 해파재(海波齎)라는 현판이 보이는데요, 이곳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으로 2004년 겨울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5월 복원, 현재는 윤상원·박기순 열사 자료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열사의 뜻을 기리고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장소로, 내부에는 윤상원 열사의 책, 메모, 옷가지 등이 전시되어 5·18 광주항쟁의 역사와 정신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윤상원 열사는 1950년 8월 19일, 이곳 천동마을에서 윤석동 선생과 김인숙 여사 슬하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윤개원으로 후에 윤상원으로 개명했는데요, 고등학교 졸업 후 삼수 끝에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윤상원은 입학 후 연극반 동아리 활동을 하였고 연극을 통해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를 탐구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윤상원은 졸업 후 주택은행에 입사,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유신독재의 암흑의 시대, 안락한 삶과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반년 만에 사표를 제출한 윤상원은 이후 광주로 내려와 고졸 출신으로 학력을 위장해 광천 공단에 있는 플라스틱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합니다. 그리고 ‘진짜 노동자’가 된 윤상원은 이곳에서 본인 말고 또 한 명의 위장 취업자를 만나니 그녀가 바로 스물두 살의 꽃다운 여성, 박기순입니다.
‘야학(夜學) 운동’이야말로 현실에 입각한 노동운동이라는 박기순, 그녀의 말에 공감한 윤상원은 바로 그녀가 이끌던 ‘들불야학’에 합류했고 그 이름처럼 활활활 번져 나갑니다. 유신독재 말기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던 기세, 그러나 그해 겨울 박기순은 과로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윤상원은 일기장에 “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이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돼 가슴속에 피어난다”라고 눈물로 적어 놓습니다.
윤상원과 박기순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영혼의 반려자 박기순을 먼저 떠나보낸 윤상원은 광주민주항쟁의 투쟁 속 1980년 5월 27일,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박기순의 뒤를 따르는데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훗날 ‘혼령의 부부’가 된 두 사람의 결혼식에 헌정된 곡으로 백기완의 장편시 <묏비나리>를 개작해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썼습니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 윤상원은 1980년 5월의 참혹함을 똑똑히 목격합니다. 당시 광주는 완전히 ‘고립된 섬’으로 정규 언론들은 앞다퉈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였습니다. 진실이 망각된 세상, 윤상원이 들불야학 동지들과 발행한 <투사회보>는 오로지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목표로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주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의 저항은 거셌습니다. 계엄군들은 전남도청을 장악하고 있던 시민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냈고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들은 M16 소총과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민군의 본거지인 도청으로 진격합니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굳게 뭉쳐 싸워야 합니다….” ‘아이쿠’ 소리와 함께 총을 든 채로 쓰러진 윤상원, 그렇게 ‘광주의 피’를 먹고 제5공화국은 탄생합니다.
마당 한편의 기념비에는 윤상원과 박기순 열사의 얼굴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오월을 상징하는 오각형 기단석과 역사의 수레바퀴. 수레바퀴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연설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추모비 옆에 세워진 입간판 형태의 기념 조형물 등을 살펴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5·18 항쟁 당시 열사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록해 놓은 입간판들은 그 중 거울로 만들어진 기념물이 눈에 띕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라고 적혀 있는 기념물 앞에서 오늘, 우리의 현실을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출까를 생각해 봅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천동길 46 (신룡동 570-1)
064-940-9843(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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