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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여행을 떠나요

[광주 여행] 사부 사부작~우리 동네 예술공간, 광주 용아생가 & SAF : 소촌아트팩토리 1편

사부 사부작~우리 동네 예술공간
광주 용아생가 & SAF : 소촌아트팩토리

 

숨통을 옥죄는 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비로소 사부작사부작 여유 가득 동네 산책도 나서봅니다. 안녕하세요, 앰코가족 여러분~! 이번 광주 여행은 걷다가 만나는 우리 동네 예술공간, 광주 소촌동 용아생가와 SAF : 소촌아트팩토리입니다. 자! 함께 떠나볼까요?

한국문학의 개척자, 용아 박용철 생가

 

광주에서 만나는 우리 동네 예술공간, 그 첫 번째 장소는 광주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된 <용아생가>입니다. KTX 광주송정역에서 도보 25분, 광주 광산구 소촌동의 한적한 지형에 위치한 용아생가는 한국문학의 개척자, 민족문예운동가이자 시인이신 용아 박용철(1904∼1938) 선생의 생가입니다. 사부작 걸어서 당도한 용아생가는 푸릇한 나무에 둘러싸인 작은 흙 마당, 그 위에 살포시 얹혀 있는 초가집이 안온한 인상을 자아내는데요, 공간을 소개하기 전 먼저 용아 박용철 선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04년, 광주 소촌동에서 태어난 시인은 1930년대 ‘시문학파’를 탄생시키고 한국 순수 서정시 시대를 연 시인이자 번역가, 문학평론가, 극작가, 연극인으로 현대 한국 문학예술의 지평을 넓힌 광주를 대표하는 문학인입니다. 대표작으로는 <떠나는 배>가 있는데요, 이는 몰라도 ‘나두야 간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두야 가련다.’의 싯귀는 우리에게 꽤 익숙합니다.
우리나라 현대 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초창기 시단을 빛낸 시인 용아 박용철 선생, 광주 소촌동에서 태어난 시인은 물 찬 제비처럼 말끔한 용모를 지녔다 알려졌습니다. 천성적으로 몸이 약했던 시인은 당시 일제강점기의 흉흉한 시절을 보내며 짧은 생(35년)을 살다 갔는데요, 그의 시를 보면 정착보다는 자유롭기를, 희망보다는 허무를 노래한 질곡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용아의 생가>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시멘트 기와와 슬레이트 등으로 개량하였으나 1995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실시, 다시 초가지붕으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 등이 남아 있는데요, 이 집은 용아 박용철 선생의 고조부가 지었다고 전해지나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이곳 광산구는 송호영당이 있는 유서 깊은 빈촌으로 눌재 박상, 사암 박순, 고봉 기대승 등 기라성 같은 문사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시인 역시 이곳에서 문학을 하며 새로운 문명을 소개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우는 활동을 펼쳤는데요, 극락강이 내려다보이는 풍영정, 노평산 기슭의 호가정, 빙월당의 물안개는 지금도 변함없는 풍경으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흘러내려 1930년 시문학파를 태동시킨 순수시의 고향이 된 광산구. 박용철은 시문학 외에도 《문예월간》, 《문학》, 《극예술》 등 총 4종, 14권의 문예지를 발간하였습니다.

 

 

천천히 그 집을 거닐다 뜨락 한켠 우뚝 선 시비에서 그의 시, <떠나는 배>를 만납니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두야 가련다.’ 익숙한 시구를 입으로 도내이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음미해 봅니다.

 

 

 

 

평일의 오후, 인적 드문 생가를 거닐며 그 한적함을 온몸에 새겨봅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흙바닥의 생경함, 유난히 깨끗한 하늘은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합니다. 그곳 사랑채에는 초로의 사내가 홀로 생가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며 한없이 느린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는 풍경도 더없이 안온한 <용아생가>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Travel Tip. 용아생가
주소 : 광주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 (소촌동 363-1)
문의 : 062-944-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