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항쟁의 역사를 기념하는 스물세 개의 방, ’5⋅18자유공원’
사부작사부작 ‘공원 산책’, 두 번째로 소개할 곳은 광주 상무지구에 위치한 ‘5⋅18자유공원’입니다. 이곳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을 기리는 곳으로, 당시 계엄군에 체포된 시민들을 모아 놓고 정신 교육을 시켰던 상무대 법정과 영창을 원래의 위치에서 100m 정도 이전하여 원형으로 복원⋅재현한 곳입니다.
광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당시 계엄군과 시민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야외 설치물들입니다. 군용트럭 위에 진압봉을 든 군인의 모습, 그 앞에 시민 한 명이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포승줄에 손과 허리를 묶인 채 줄지어 끌려가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대다수가 옷도 입지 못한 채 속옷 바람으로 끌려오기도 했다는데요, 당시 잡혀 온 시민들은 이곳에서 정신교육을 받은 후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희생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법정과 여섯 개의 감방으로 이루어진 영창, 각종 고문과 조사를 받던 중대 내무반과 임시 취조실로 사용한 식당, 그리고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반이 임시 본부로 사용한 헌병대 본부 사무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는데요, 이곳에 꾸며진 스물세 개 전시실에는 방마다 주제를 갖고 관련 사진 및 영상, 이야기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타이틀은 <23개의 방>입니다.
헌병대 사무실을 통해 열 개 방을 관람합니다. <반란의 방, 분노의 방, 저항의 방, 학살의 방, 공포의 방, 왜곡의 방, 해방의 방, 최후의 방, 통곡의 방, 진실의 방>의 타이틀을 하나하나 지나는 발걸음이 더없이 무겁습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진실의 참혹함에 한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끼며 한 장면 한 장면 가슴에 품습니다. 드높은 민주화 의지와 젊은 열정으로 불의에 항거했던 분들의 뜨거운 용기와 숨결이 남아있는 이곳은 투쟁의 자취요, 인권⋅평화⋅화합의 상징으로 기억될 역사의 현장입니다.
헌병대 식당은 5⋅18 당시 연행된 시민들이 고문과 조사를 받는 임시 취조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수사관들은 잡혀 온 시민들에게 매일같이 자술서를 쓰게 했고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틀리면 온몸이 피범벅이 되도록 구타를 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식당 안의 조리실에서는 잔인한 물고문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요, 그 모습을 재현해 놓은 장면을 보니 절로 화가 치밉니다.
영창은 자유공원 내 가장 안쪽, 철조망이 둘러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구금되어 있던 곳으로 여섯 개의 방이 부채꼴로 배치되어 있으며 수감자들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감시대가 중앙에 있습니다. 이곳에 투옥된 사람들은 하루에 열여섯 시간 동안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포착되면 노소를 불문하고 구타를 당했으며 많으면 150명까지 수감되는 현실에서 편히 누워 잘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식사량도 변변찮아 늘 배고픔에 굶주려야 했다니, 잔혹한 현실에서 광주시민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불가합니다.
법정은 내무반에 들어서기 전, 왼편에 위치합니다. 5·18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으로 5·18민주화운도의 진상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신군부가 상무대 안에 법정을 만들어 재판을 하였다고 합니다. 법정에는 무장한 헌병들이 도열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재판부는 이미 짜인 각본에 따라 관련자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등의 실형을 선고하였다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전시는 내무반으로 이어집니다.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를 기억하는 ‘신념의 방(추모의 방)’. ‘감동의 방’에서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비극 속에서 꽃피는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 봅니다. 영화는 평범한 택시기사와 외신기사, 두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 날’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한 개인이 시대의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일을 해낸 감동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부활의 방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그 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85년 출간 당시 진실에 목말라하던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며 ‘지하 베스트셀러’로 수많은 사람이 숨죽여 읽던 책으로 알려져 있지요.
여명의 방, 슬픔의 방을 넘어 기억의 방과 정의의 방을 들어옵니다. 이곳은 80년 당시 계엄군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직시하기를 멈추지 않은 용기 있는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 앵글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이 기록한 진실’이라는 ‘역사’ 앞에 절로 숙연해집니다. 이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광주의 진실은 묻히지 않았습니다.
촛불혁명과 민주주의의 승리를 다룬 평화의 방, 마지막 침묵의 방을 끝으로 스물세 개의 방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1980년 5월에 멈춰진 광주의 시간, 그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의한 국가권력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운영 : 매일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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