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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외국 특파원

[대만 특파원] 대만 최고봉 옥산(玉山) 산행기, 2편

▲ 옥산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지난 호 서성태 수석의 옥산 산행기에서 이어집니다) 새벽 2시. 알람이 필요 없었다. 산장의 모든 사람이 부스스 일어나서 등산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도 어제의 좋은 날씨에 힘들게 배낭에 묶어 끌고 온 겨울 외투를 껴입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어둡고 추웠다. 화장실 앞 바닥은 얼음이 얼어 있었다. 헤드 렌턴 등 사전 준비도 부족했고 전문가도 아닌 우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정상을 향해 선뜻 출발을 할 수가 없었다.


▲ 험난한 정상부근의 등산로


때마침 저쪽 한구석에 최소 산악동호회급은 되어 보이는 한 무리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꼬리에 붙어 같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고 앞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좁은 등산로를 따라 쉼 없이 올라갔다. 맑은 날씨에 탁 트인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잠깐 멈추어 사진기에 담고 싶었으나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마음속에 간직하는 게 낫겠다는 변명으로 계속 앞사람을 따라갔다. 실은 그 무리를 놓치게 되면 등산길이 더욱 험난해질 거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한참을 거침없이 오르던 그들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우리에게 먼저 가려면 가라고 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옥산의 주봉이 아닌 ‘북봉’이었다.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이제 우리만 남았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변변한 불빛도 없이 어둠 속에서 안전을 위해 설치해놓은 쇠사슬 등에 의지하며 위로 위로 올라갔다. 중간에 낙석을 막기 위해 등산로 위로 지붕 같은 걸 설치해 놓은 곳도 있었다. 그곳을 지나니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는 ‘풍구’라는 곳이었다. 항상 바람이 많이 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순간 마음속에 많은 생각이 피어올랐다. 이대로 가도 안전할까? 여기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뉴스에서 봤던 각종 사건 사고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로 물러 지붕이 설치된 곳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여전히 주변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리 아래쪽에 몇 개의 불빛이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너무 일찍 출발한 것 같았다. 별은 여전히 너무도 많이 아름답게 검은 밤하늘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체 이걸 왜 가져 왔을까 싶었던 겨울 외투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정상을 향했다. 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앞은 잘 보이지 않고 경사는 급했다. 그저 길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따라 계속 오르고 또 올랐다. 숨이 차고 다리가 뭉쳐왔지만 차가운 바람에 쉬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져서 쉼 없이 바위 사이를 올랐다.


▲ 아직은 어두운 새벽, 손전등으로 비추어 찍은 옥산 정상 표지석

 

어느 순간 더는 오를 곳이 없다는 걸 느꼈을 때, 우린 이미 정상에 올라 있었다. 정상 정복의 기쁨을 즐기기에는 여전히 너무 어둡고 바람은 차갑고 강했다. 바람이 조금 잔잔한 건너편으로 넘어와 휴식을 취했다. 눈앞으로는 저 멀리 운해가 수평선처럼 보였고, 여명이 밝아 오는 듯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일출은 보고 하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추위를 견디며 졸고 있었다. 어느 순간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모두 눈 앞에 펼쳐지는 일출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분주했다. 긴 서사가 필요 없는, 정말 장관이었다. 미국인 친구는 폰으로 미국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일출을 실황 중계해 주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제 산은 이것으로 되었다.’를 다짐하고 있었다.

 

▲ 아침 햇살을 받기 시작한 봉우리


한동안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정상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 후 하산길에 올랐다. 이미 날은 환하게 밝아 주변의 모든 것이 보였다. 정상에 오를 때 이 모든 게 안 보였던 것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길과 앞사람만을 확인하며 올랐기에 위험한지도 힘든지도 모르고 빠르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지, 만약 이 모든 것이 다 보였다면 두 배는 더 힘들게 느꼈을 것 같았다. 매서운 칼바람도 잦아들고 기온도 어느 정도는 올라간 밝은 하산길은 주변을 둘러보며 경치를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그저 이 험난한 길을 그 어두운 새벽에 어떻게 올라왔는지, 스스로 감탄하면서 말이다.

 

 

 

▲ 하산길 풍경

 

하산을 마치고 돌아온 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짐을 꾸려 귀갓길에 올랐다. 꽉 찬 1박 2일의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성취감은 다른 어떤 대만여행보다도 컸다. 하지만 등반 열흘 후, 한국 뉴스에서 본 대만 SNS 스타 등반가의 옥산에서의 사망 소식은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철렁하게 했다. 날씨가 좋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처럼 준비 안 된 아마추어 등반가들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산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