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글감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이 고추잠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곤충이면서도 단어만 떠올려도 누구나 한 가지씩의 좋은 추억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9월의 뙤약볕이 강하게 내리쬐면, 엄마는 마당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빨랫줄에 빨래를 널 준비를 했습니다. 기다란 막대기로 쭉 늘어질 빨랫줄을 계산하며 지지대로 삼으셨지요. 사 남매의 빨래다 보니 그 긴 빨랫줄이 빨래들로 가득 찼습니다. 강한 볕을 고려한 건지 빨래들은 널기가 무섭게 빨래에 배어 있던 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바싹 말랐던 마당도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이쯤에서 등장하는 녀석은 잠자리들이었습니다. 하늘 높이 올려진 빨랫줄 지지대 끝에 사뿐히 내려앉아 사방을 응시하는 모습은, 먹잇감을 찾아 하늘을 빙빙 도는 매의 그것과도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녀석을 보면 꼬마 시절에는 왜 그리도 그것이 잡고 싶었는지. 그 막대기 높이를 맞추기 위해 부엌 안에 있던 대야를 의자 삼아 잠자리에 가까이 갔지요. 눈치채지 못한 잠자리는 운 좋게도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였고, 양 날개를 잘 잡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거라 생각했습니다.
거의 다 됐다 싶은 시점이 왔을 때쯤!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고추잠자리를 보며 안타까움과 분함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습니다. ‘조금만 빨리 잡았으면 됐는데!’ 아쉬움에 마당을 몇 바퀴 빙빙 돌고 있을 즈음, 다시 한 번 고추잠자리는 막대기 끝에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이번에는 꼭 잡아야지!’ 오기가 발동합니다.
좀 더 신중하게 하자고 마음속으로 몇 번을 다짐하고, 조금 더 천천히 조심조심 다가서서 양 날개를 드디어 움켜잡습니다. 몸부림치는 고추잠자리를 살살 피해서 땅바닥을 내려올 때쯤, 환희와 희열이 극에 닿습니다. 별거라고 할 수 없는 건데도 성취했다는 그 기쁨이 개선장군이 부럽지 않은 순간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잠자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합니다. 개구쟁이 동생들이 오면, 잠자리 꽁지에 실을 묶어 장난을 칠 것이 분명했던바, 동생들이 오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결국, 놓아주기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날지 못해 기가 죽었던 잠자리는 나의 손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힘찬 날갯짓을 합니다.
가을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던 그 고추잠자리들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을 하늘을 붉게 태우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 어디에선가 빨랫줄 위에는 올해도 고추잠자리가 졸고 있지 않을까요?
글 / 사외독자 한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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