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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다인과 채아

by 앰코인스토리 - 2018. 3. 2.


나에겐 다인과 채아라는 예쁜 조카가 있다. 한 명은 초등학생 또 다른 한 명은 유치원생. 부모님들이 가장 예뻐할 때가 그 시기란 말처럼, 정말 순수 그 자체의 아이들이다. 가끔 얘기를 들어보면 세 살 터울의 언니와 동생답지 않게 잘 싸운다고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끔찍이 아껴 줄 때가 많다. 며칠 전 대전에 갈 일이 있었다. 이 두 아이에게 무슨 선물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때마침 동생 내외가 시내로 쇼핑을 하러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자연스레 두 아이를 봐주게 되었다. 자주 보는 얼굴이 아니라 서먹서먹한 시간이 10여 분 흐를 때쯤, 아이 둘을 모아 놓고 옛날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낯설어 말도 붙이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기를 반복하던 아이들은, 나의 얘기가 시작되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금세 바뀌었다.

“옛날옛날에 다인이와 채아라는 자매가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네 식구는 야외로 캠핑을 나가게 되었지요. 엄마와 아빠가 짐을 푸는 사이, 두 아이는 밖으로 나가게 되었답니다. 따스한 햇볕이 비추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새들, 나무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두 아이를 무척 행복하게 만들었지요. 그런 와중에 다람쥐와 마주치게 되었고 다람쥐를 따라 달려가던 아이들은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날은 점점 어두워져 사방이 깜깜해질 때쯤, 아이들은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몹시 배가 고팠던 자매는 그 집으로 향했답니다.”

어느새 다인과 채아는 이야기 속에 쏙 빠져 버린 듯 나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한 호흡 쉬고 뜸을 약간 들이자 “그래서 삼촌 어떻게 되었어?” 채아가 졸라댔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은 과자와 초콜릿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벽으로 된 과자를 잘라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문이 슬그머니 열리고 안에서 누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누구냐? 코가 큰 한 할머니가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다인이가 물었다. “삼촌, 그 할머니가 혹시 마귀할멈이야?” 채아도 거들었다. “까만 망토의 할머니 맞지?” “그래, 엄청 무서운 할머니. 채아와 다인이는 막 울었을까? 안 울었을까?” “음, 나는 울었을 거 같아.” 겁이 많은 다인이가 대답했다. 이야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할머니가 큰 가마솥 물을 끓이고 있는 틈에 용기 있는 다인이가 마귀할멈을 펑 차고 나서 채아와 다인이는 손을 잡고 그 집을 빠져나왔데요.”

“와! 만세!”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삼촌이 해준 얘기가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인이와 채아에게 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 하나씩 말해봐.” 채아가 먼저 말을 했다. “응, 발차기 연습을 열심히 하자.” “그래, 매일매일 발차기 연습하기로 하자. 약속!” 채아는 빙그레 웃었다. “그럼 다인이는?” 초등학생인 언니답게 “어디 나갈 때는 엄마 아빠한테 말하고 나가야 해요.” “그래, 엄마아빠가 걱정할 수 있으니까.” 짝짝짝 손뼉 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조카에게 유치원 시절에 처음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각색해서 들려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아빠에게 그대로 얘기해줬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헨젤과 그레텔을 어린 조카들에게 들려주는 이유는, 둘이 힘을 모으면 어떤 역경과 고난도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다.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형제, 남매 혹은 자매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의지한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옛날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이들은 나와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이미지 출처:  wikimedia.org  (by. Arthur Rackham, <Hansel und Gret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