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이 있듯, 샴페인의 탄생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샴페인의 아버지, 피에르 페리뇽(Pierre Perignon)과 샴페인의 어머니, 클리코 퐁사르당(Clicquot Ponsardin)이다. 두 사람은 140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났다. 페리뇽은 젊은 수도사로서, 클리코는 27세에 남편을 잃은 과부로서 청춘을 바쳐 오늘날의 샴페인을 탄생시킨 사람들이다. 그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 나온 샴페인이 바로 돔 페리뇽(Dom Perignon)과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다. 그 둘의 공헌이 얼마나 지대했길래 샴페인의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을까.
이번 호에서는 피에르 페리뇽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도록 하자.
1668년 당시 30세였던 피에르 페리뇽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 있던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의 재정 담당 수도사로 있었다. 전쟁에 의해 파괴된 수도원을 재건하기 위해서 페리뇽은 미사주인 와인을 만들어서 재원을 마련해야 했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대신 성실하고 미각이 출중했던 수도사 페리뇽은 아이디어와 실험정신으로 정성을 다해 맛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가 만든 와인은 멀리 베르시이유 궁전에까지 알려져서 루이 14세와 루이 15의 식탁에도 올랐다고 한다. 그런 유명세 덕분에 페리뇽은 그 당시 팔리던 고가의 와인들보다 훨씬 좋은 값으로 와인을 판매할 수 있었고, 수도원 재건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성직자의 최고등급인 도미누스(Dominus)에 오를 수 있었다. 훗날 그는 돔(Dom, 도미누스를 줄여서 부르는 말) 페리뇽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날의 럭셔리 샴페인의 대명사인 돔 페리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약 47년 동안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피에르 페리뇽은 1715년에 눈을 감았으며 오늘날에도 미사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에 가면 그의 동상과 비문을 볼 수 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
피에르 페리뇽은 왜 샴페인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을까?
피에르 페리뇽은 샴페인의 보관과 숙성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새로운 병 디자인을 고안해내었으며, 여러 포도 품종을 섞으면 맛이 좋아진다는 블렌딩의 비밀과 적포도 품종으로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여 오늘날 샴페인이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 돔 페리뇽의 로고와 문양 (로제, 빈티지, P2)
✔ 가스 압력에 터지지 않는 샴페인 병을 개발하다
피에르 페리뇽이 수도사로 와인 담당 일을 맡고 있을 때, 봄이 오면 지하 저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와인에 기포가 발생하였고 그 기포로 인해 병이 터져버리는 일이 발생하곤 하였다. 악마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여 모두 지하저장고에 들어가길 꺼렸던 그 시대에 페리뇽은 터진 후 병에 남아있던 와인의 맛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터지지 않는 병의 디자인을 발명해 내기에 이르렀다. 강하고 튼튼한 유리병을 만들고 철실로 코르크 마개를 병에 고정하도록 한 것이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 당시에는 병이 터지는 현상 때문에 샴페인을 큰 통에 담아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와인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산소와의 접촉이 활발하여 숙성을 오래 시키기 힘든 문제점이 있었다. 피에르 페리뇽이 고안해낸 새로운 디자인의 병을 사용함으로써 샴페인을 병째로 판매할 수 있었으며 외부로부터의 불순물 및 산소의 유입을 차단함으로써 샴페인의 신선도와 숙성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 적포도로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다
샴페인의 주요 품종 중 하나인 피노 누아(Pinot Noir)는 대표적인 적포도 품종으로 보통의 압착기를 이용해서 포도알을 짜면 껍질에서 붉은색이 흘러나와 화이트와인으로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피에르 페리뇽은 포도즙을 약하게 천천히 짜내면 포도의 껍질에 있는 색소가 과즙을 물들이지 않아 무색의 포도즙을 채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서 오늘날의 맑고 투명한 샴페인을 적포도로부터 만들게 된 것이다.
✔ 맛있는 샴페인을 만드는 방법을 창조하다
피에르 페리뇽은 그의 뛰어난 미각으로 한 가지 포도보다는 여러 품종의 포도즙을 섞어서 만드는 샴페인이 더욱 깊은 맛을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발전시켜서 뛰어난 샴페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방법은 지금도 샴페인을 만드는 제조 방식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
사실 현재의 돔 페리뇽이라는 브랜드를 키워내고 가꿔온 것은,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인 모엣&샹동(Moet & Chandon)이다. 최고급 샴페인 라인이 필요했던 모엣&샹동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서 돔 페리뇽을 인수했다. 인후 후 시간은 좀 흘렀지만 돔 페리뇽은 1936년 이후 독립된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대관식,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축하 샴페인으로 선정됨으로써 각국의 공식 만찬과 행사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였다. 샹파뉴 지방의 날씨는 들쑥날쑥하여 대부분 샴페인 업체들은 여러 해 재배된 포도즙을 섞는 방식으로 샴페인을 제조하지만 (NonVintage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돔 페리뇽은 100% 빈티지 샴페인(해당 연도의 포도만을 사용)만을 고집하여 매해 새로운 샴페인을 창조해내고 있다. 또한 1987년 명품 업체인 루이뷔통과 합병하여 LVMH그룹(루이뷔통 모엣 헤네시 그룹)이 된 후에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라벨에 패션을 입히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고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매 버전)등을 내놓아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돔 페리뇽의 다양한 라벨들
사진출처 : https://www.domperignon.com/
▲ Special edition(한정판)
Jeff Koons x Dom Perignon
Dom Pérignon Balloon Venus
polyurethane resin
사진출처 : http://www.jeffkoons.com/
참고로 Jeff Koons는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가’, ‘앤디 워홀 이후 가장 성공한 미술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친숙한 Balloon dog은 최근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전시되기도 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
몇 년 전, 와인 동호회 송년회에서 BYOB(Bring your own bottle)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각자 와인을 한 병씩 들고 와 회원들과 나누는 모임이었는데, 어떤 분이 돔 페리뇽을 가져오셔서 운 좋게 접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궁금해하던 샴페인이었는데 깔끔한 맛과 꼬들한 바게트에서 느껴지는 이스트 향이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언제 돔 페리뇽을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만난다면 그 자리가 필자의 인생에 있어서 기억할만한 축하 자리였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서는 샴페인의 어머니 클리코 퐁사르당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WRITTEN BY 정형근
우연히 만난 프랑스 그랑크뤼 와인 한 잔으로 와인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주위에 와인 애호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사보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으며, ‘와인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와인을 신중히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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