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엄마와 옛날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게 디지털로 통하는 시대라 사진은 구시대의 유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가끔 꺼내 보면, 오늘을 사는 동력이며 내일을 위해 뛸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곤 한다.
젊은 시절 참으로 고왔던 엄마는 어느새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어 있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카락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온화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 온통 처녀 시절은 흑백사진으로만 채워져 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사진첩에 남아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나는 사진 찍는 게 많이 어색한 나머지, 어린 시절 사진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하도 이상해서 “왜 내 어린 시절 사진은 조금 남아 있어요?“라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을 찍기 위해 표정을 짓고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영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커다란 사진첩에 반은 흑백사진이라면, 또 다른 반은 컬러사진이다. 컬러사진이 막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거금을 들여 유명 브랜드의 사진기를 사 오셨는데,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가족 모두 둘러앉아 사진기라는 것을 구경하면서 기뻐했었다. 필름을 집어넣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사진 한 장이 뚝딱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밤새 설레었다.
필름 한 통에 24장 혹은 36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야 필름을 현상소에 맡길 수 있었던 터라, 하루라도 더 빨리 어떤 모습의 사진이 나왔을까? 궁금해서 보이는 대로 이곳저곳을 찍으러 다녔다. 필름을 맡기고 사진을 찾으러 가던 날, 아침부터 긴장을 했다. 사진관을 운영하시는 주인아저씨는 투명색 비닐 봉투에 현상되어 나온 사진들과 현상된 필름을 같이 넣어 주시곤 했었다. 사진기 다루는 게 서툴렀던 초창기에는 소위 햇빛이 들어가 못 쓰는 사진이 많아서, 애초 예상했던 사진의 장수가 모자라기 일쑤였다.
그렇게 모이고 모인 사진들이 사진첩에 한 장 한 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카가 태어나면서는 조카에게 뭔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매년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를 취한 사진을 찍어주던 생각이 난다. 조카의 초등학교 전까지의 모습이 연속된 파노라마처럼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주위를 둘러봐도 사진관을 찾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사진을 현상해서 한 장 한 장 사진을 사진첩에 꽂는 풍경도 이제는 보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사진첩을 열면 사진 한 장 한 장 속에 담겨있던 추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이사를 해도 장롱 밑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첩을 가장 먼저 꺼내어 두 겹 세 겹으로 포장하는 엄마의 수고를 이제는 이해할 것만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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