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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원두막

by 앰코인스토리 - 2016. 8. 12.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 엄마의 승낙을 얻어,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난생처음 가보는 길 위 버스 안에서 나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한 시간여 달린 버스는 무사히 친구가 나와 있는 정류장에 섰고,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그때야 진정되었다. 서너 개의 초등학교가 하나의 중학교로 모이는 탓에, 장시간 버스를 타야 먼 곳에 있는 친구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친구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친구네 집은 굉장히 넓은 밭에 참외와 수박을 재배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였다. 뜨거운 햇살 아래 파란 이파리 사이사이로 보이는 노란색의 참외는 빛깔이 고왔고, 수박의 파란, 검정 줄무늬는 윤기가 잘 흐를 정도였다. 많은 양의 농사를 짓다 보니, 한 사람의 일손도 아쉬울 때라 가방 안에 공책과 연필을 꺼낼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친구를 따라나서게 되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하나 둘러메고, 친구 부모님이 일하시는 밭으로 향했다.


잘 정돈한 밭 사이로 커다란 원두막이 위풍당당해 보였다. 견실하게 지어진 원두막을 둘러 보다 보니 손끝이 야무진 그 친구 아버지의 솜씨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뙤약볕 아래 허리를 숙여 참외를 따는 것은, 이랑을 따라 빨간 고추를 따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다만, 참외에서 풍겨 나오는 맛 나는 냄새로 인해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제법 큰놈들이라 그런지 하나하나 잡을 때마다 속이 꽉 찬 느낌이 절로 들었다. “공부하러 왔는데 일만 시켜서 어쩌냐?” 미안함이 담뿍 담긴 친구 엄마 말씀. 비록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하루 농사일 마무리에 들어갔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꽤 열심히 일했다. 친구는 고마움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고, 저녁 밥상은 많은 기대를 해도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친구는 나를 이끌고 원두막으로 향했다. 원두막은 해가 넘어가고 나서야 더 운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았다. 보름달이 뜨자, 원두막 위에서 보인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한 손에는 온종일 땄었던 참외를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수박 한 조각을 들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방을 둘러 보자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원두막은 사방을 관찰하기 위해 평지보다 높은 곳에 있다 보니 평지에서 부는 바람보다 더 시원한 듯 느껴졌다. 모기를 쫓기 위해 피어 놓은 모기향은 바람을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고 있었고, 한여름 태양 아래 축축 늘어졌던 참외와 수박 잎들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그것들은 바람을 맞으며 사각사각 소리를 내었다. 밖에서만 보았던 원두막과 원두막에서 보이는 밖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다른 듯 보였다. 시원한 바람과 원두막을 벗 삼아, 그 날밤 늦게까지 친구와 나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차를 움직여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갈 때마다 원두막이 많이 사라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혹시 가다가 원두막이 보이기라도 하면 그 원두막이 생각난다. 그 위에서 먹던 수박과 참외의 맛을 잊을 수 없고, 원두막에서 펼쳐지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친구의 마음도 다시 떠오르곤 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