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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나도 몸짱이야!

by 앰코인스토리 - 2016. 8. 19.


베란다 화초에 물을 주다, 문득 이웃에 사는 동네 아줌마의 넋두리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에 최종 학력을 적고 나니, 더는 적을 게 없더라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덧 마흔을 훌쩍 뛰어넘은, 인정하기 싫은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대학생 남매를 둔 결혼 25년 차의 가정 주부. 이것이 이력서에 적어 낼 신상명세서의 전부다. 다른 사람은 공인중개사다, 조리사다, 뭐다 하여 각종 자격증으로 중무장해서 사회로 들어서는데, 나는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는 정말 대책 없는 ‘아줌마’다.


두 아이와 남편 치다꺼리에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낯선 내 모습에 쓴 미소만 나온다. 펑퍼짐해진 엉덩이, 늘어진 뱃살, 숏다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바디라인. 아, 정말 서글픈 현실이다. 평소에는 조금 살찌우는 게 좋겠다던 남편이었는데, 정도를 넘어섰는지 이젠 오히려 살 빼라고 잔소리까지 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뭔가 변화가 필요해!’


항상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생활과 자꾸 우울해지는 나 자신에게 뭔가 변화가 절실했다. 거기에다 “뭐라도 좀 해봐. 요즘 다들 경쟁력 갖추기에 바쁜데, 당신 나 없으면 어떡할래?” 딴에는 내가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는지 자꾸만 보채는 남편. ‘뭘 할까? 뭘 해야 할까?’ 생각이 까마득해진다. 이런 질문 앞에 무기력한 나는 성격 탓인지 오히려 더 만사태평 느슨해진다.


눈치를 챈 걸까? 남편이 우선 살부터 빼 보라고 한다. ‘쳇! 자기 뱃살은 어떻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매사에 긍정적이 되고…. 언론 매체들도 온갖 미사여구를 들이대며 몸짱 아줌마 열풍을 일으켜 놓았다. 운동을 해볼까? 사실 몸도 자주 아파 앓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었다. “그래. 운동해서 남 주는 것도 아닌데….”

체력은 국력이라는 사명 아래, 체력장 이후 푸욱 쉬었던 온몸의 자잘한 근육들을 깨우고자 지난해부터 시작한 것이 바로 ‘걷기’다.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아주 쉽게 하는 거라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래도 워낙 운동을 싫어하는 나에겐 생각한 대로 곧장 실천에 옮긴 몇 안 되는 기특한 일 중 하나다.


집 앞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15바퀴 돌다가 이제는 동네 주변과 나지막한 뒷산을 매일 6~8km씩 걷고 있다. 처음엔 70분 걸리더니, 3개월 뒤에는 60분, 이제는 50분이면 가능하여 나름대로 꽤 만족하고 있다. 점점 몸도 좋아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듯하고, 짜증도 덜 내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몸짱 아줌마가 된 것은 아니지만 걷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생겼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헬스클럽에 가려고 6개월 전에 덜렁 가입한 것이다. 매일 오전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오후에는 걷기를 반복한다. 두 개의 운동을 병행했더니 7kg 정도 체중이 줄었다. 어쨌든 오늘도 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이젠 조금은 뻔뻔해진 얼굴을 들고 걸음을 옮긴다. 어느덧 몸짱이 된 나를 그려보며 즐거운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본다.


글 / 사외독자 이수현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