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서인지, 시골 그것도 오지 중의 오지에서 태어나서 자란 어린 시절의 여름이 가끔 꿈속에 나타난다. 당시만 해도 농촌은 농사일로 분주해서 피서나 휴가라는 단어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여름철이 되면 피서 못지않은 우리만의 힐링은 분명히 있었다.
이때는 방학이라 유일한 숙제인 일기는 날씨만 기록해 놓고 (방학을 하루 이틀 남겨놓으면, 아침 먹고 세수하고 심부름한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한꺼번에 작성했다) 부모님께 잡히면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으므로 아이들은 약속이나 하듯, 저마다 아침만 먹으면 일찌감치 집을 벗어나곤 했다. 장난감이나 휴대전화가 없어도 주위는 온통 놀 거리였다. 나무마다 손만으로도 잡을 수 있는 매미가 지천으로 노래 부르며 우리를 반겼고, 이 놀이에도 지쳐서 땀이 흐르면 어머니가 광목으로 만들어 준 팬티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 뛰어들 냇물도 여러 곳이었다.
냇가에는 어디에나 물고기들이 바글거렸다. 그래서 입에 초고추장을 넣고 머리부터 물속으로 뛰어들면 그 자리에서 물고기를 한 입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아다녔다. 어린 우리는 도랑을 작은 돌들로 막아 족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거나, 여뀌줄기와 잎을 바위에 놓고 돌로 콩콩 찧어서 물에 넣어서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 떠오르는 것을 손으로 잡아서 풀 줄기에 매달고 집으로 향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 마을 농부들이 가장 한가한 철은 겨울이다. 그러나 정작 이때가 되면 물이 얼고 바람이 매서워서 선뜻 개울로 발을 들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연히 대부분 한창 바쁜 여름철에 몇 번 겨우 짬을 내서 고기잡이에 나선다. 때로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순경의 눈을 피해 싸이나를 푸는 날엔 온 동네에 매운탕 냄새가 진동했다. 매운탕 한 뚝배기를 팔팔 끓여 살짝 얼린 막걸리를 곁들여 먹으면 더위가 금세 사라졌다.
밤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동네에서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작로를 따라 새로 생긴 다섯 가족은 신작로 한 쪽(그 당시에는 차라고는 육발이, 사발이가 산판을 일주일에 한두 번 다녔다)에 각자 집에서 가지고 나온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워놓고 옥수수를 삶고 매운 고추와 호박을 섞어서 부친 부침개를 먹으면서 요샛말로 힐링을 취했다.
멍석에 멍하니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수많은 별을 헤아리다 지치기도 하고, 저 많은 별 중 과연 내 별은 어디에 있나 찾아보면서 까르륵~까르륵~웃음보를 터트렸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름은 견디기 힘든 계절임은 틀림없나 보다. 지금이야 에어컨이나 선풍기, 팥빙수로 더위를 식힐 수 있고, 전기 모기향으로 모기 물릴 걱정도 덜 수 있지만, 그래도 눈물 찔끔거리게 하는 모깃불 피워놓고 부채질하면서 가족끼리 이웃끼리 속삭이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해수욕장이나 계곡, 강, 국립공원 등 어디를 가도 피서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을 즈음이면 휴가를 얻어 피서여행을 떠나는 이웃도 늘어난다. 출발부터 교통체증으로 짜증 내고 피서지에 가도 마음 편히 발 뻗을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충전을 위한 힐링이 아니라 돈 들여 사서하는 고생 아닌가 싶다. 차라리 옛날처럼 온 가족이 집에서 수박에 얼음 띄운 물 마시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면서 보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는 것이 더 나은 힐링이라 느끼는 건 나만의 감상일까. 이래저래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으랴’는 옛 선인의 목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글 / 사외독자 이성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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