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분식집

by 앰코인스토리.. 2026. 9. 28.

사진출처 : AI 생성 이미지

예전과 같은 하늘과 돌, 그리고 바람이 그 자리에 있고 10년 전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에 변함없이 서 있다면 과거를 기억하기 안성맞춤일 것이다. 비록 많은 세월이 흘러서 한 쪽 가지가 볼품이 없어졌다고 해도 진한 향수를 느끼기엔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친숙한 길이 있다. 보도블록은 과거와 다르더라도 길을 따라 서 있는 건물들의 형태는 똑같고, 우측으로 보이는 고가도로도 그대로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건물마다 달려 있는 상호 간판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업종은 같지만 다른 상호를 달고 비슷한 영업을 하는 집도 있었다. 그런 가 하면, 간판 자체를 큼지막하게 만들어 새로운 사업을 하는 가게도 보였다.

 

과거와 구조와 큰 형태는 변한 것이 없지만 낯선 이름의 가게들로 인해 서먹서먹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빛 바랜 간판이 2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분식집’이라는 글자만 선명하다.

 

분식집이라곤 하지만 떡볶이며 어묵, 튀김을 주로 파는 여느 분식점과는 달랐다.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통유리에서 보듯 수제만두를 주로 파는 가게였다. 가게 앞에는 커다란 솥이 수시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미각을 자극시켰다. 만두를 빚는 부부와 주방이모, 그렇게 셋이서 10평 남짓한 가게 안에서 바삐 움직이며 이런 저런 음식을 만들어 낸다. 어떻게 보면 만두집이라는 상호가 더 어울릴 만한 집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사서 집으로 향하면 더없이 행복했었다. 만두는 주인장이 주로 빚었는데, 솜씨가 얼마나 좋던지 만두피를 하나 집어 들면 거의 2초 안에 만두 하나씩을 뚝딱 만들어냈다. 나중에는 커다란 왕만두까지 만들었고, 그 왕만두는 보통 만두의 세 배는 커서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방에는 안주인이 점심 장사로 분주했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건넨 주인장은 만두 빚기에 여념이 없다. 이곳에 예전에 자주 왔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주문을 했다. 이사를 가면서 3년만에 찾은 곳이지만 네 개의 테이블과 내부의 풍경은 10년 전 그때와 같았다.

 

물은 셀프 서비스란 문구에 컵을 꺼내 들고 정수기로 향할 때, 안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말 한 마디에 흠칫 놀랐다.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는 표정에 긴장감과 어색함이 확 풀렸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을 텐데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말에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이후로도 과거에 대한 몇 마디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12시가 넘어서자 비좁은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쌓은 신뢰의 산물 같았다. 반찬을 한 번 더 가져다 먹는 수고를 덜기 위해 비빔밥을 선택했다.

 

과거에 좋은 기억이 있었던 이유가, “반찬 조금 더 주세요.”라고 반찬 그릇을 주방으로 건네면 안주인은 다섯 개 반찬 그릇을 모두 가지고 가서 넉넉하게 담아주었고, 나는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라서 참 눈치가 보여 반찬 걱정이 없는 비빔밥을 선택한 것이다. 음식 솜씨 좋았던 안주인이셨기에 비빔밥에 들어가는 나물마다 짜지도 맵지도 않고 간이 딱 좋았다.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가게 문을 나서며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어 가고 1년에도 두세 번 새로운 간판으로 바뀌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는 요즘인데,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이 살아가는 주인장 내외가 참 한 그루 소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