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저온의 세계에서 발견된 것들,
액체헬륨과 초전도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계절은 더욱 추운 겨울로 깊숙이 접어들고 있습니다. 코끝이 아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맹추위에 정신이 바짝 드는 날도 있지만, 또 이것이 겨울의 참맛이니 두껍게 껴입고 꽁꽁 싸매며 추위를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바로 이런 ‘추위’와 ‘새로움’에 대한 키워드를 가지고 ‘발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물질은 온도가 극단적으로 낮아지면 어떤 모습을 드러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극저온의 세계로 가장 먼저 들어간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하이케 카메를링 오네스(Heike Kamerlingh Onnes), 저온에서의 물질 성질 연구, 특히 액체헬륨을 만들어낸 공로로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온이란 어느 정도의 온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대략 -10°C 정도로 요즘의 겨울 날씨를 떠올려볼 수 있겠네요. 이를 절대온도로 환산하면 약 263K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체감하는 추위로는 꽤 낮은 온도지요. 더 극단적인 예로는, 여러 유튜버가 다녀온 곳으로도 유명한 러시아 시베리아의 오이먀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70°C, 즉 약 203K에 달하는 맹추위를 기록한 곳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는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노벨 물리학에 등장하는 ‘액체헬륨’의 생산환경은 어마어마합니다. 액체헬륨의 온도는 4.2K, 섭씨로 환산하면 -268.95°C에 해당합니다. 이제 물리학에서는 ‘저온’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극단적인 의미를 갖는지 조금은 감이 오시나요?
물리학에서 저온은 단순히 더 차가운 환경을 만드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도가 극단적으로 낮아질수록 열 운동은 급격히 억제되고, 상온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물질의 성질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극저온의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지요. 그런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액체헬륨입니다. 그렇다면 액체헬륨은 어떻게 발견되었을까요?

당시 과학계의 상황을 한번 살펴볼까요? 당시는 뉴턴의 고전역학, 맥스웰의 전자기학, 그리고 열역학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거의 모든 현상을 이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해 보였습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많은 과학자 사이에는 물리학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실험 물리학자 앨버트 미켈슨(Albert A. Michelson)은 1894년 시카고 대학 라이어슨 물리학 연구소(Ryerson Physical Laboratory) 개소 강연에서 물리학의 근본 원리들이 이미 확고히 정립되었으며, 앞으로의 발전은 이 원리들을 보다 정밀하게 적용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남기기도 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 확신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실험들이 축적되면서 고전 물리학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현상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상 현상 중 상당수는 온도가 낮아질수록 더욱 뚜렷하게 관측되었습니다. 고온에서는 열 운동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효과들이 온도가 내려가자 비로소 전면에 등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극저온은 과학자들에게 단순히 ‘차가운 환경’이 아니라,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험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했습니다. 이론이 요구하는 극한의 조건, 즉 절대영도에 가까운 온도까지 내려가기에는 당시의 냉각 기술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기술적 한계 앞에서 극저온을 향한 헤이커 카메를링 오네스의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이 극저온의 영역에 오네스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오네스가 극저온에 접근한 방식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한 번에 온도를 확 떨어뜨리는 ‘비밀 기술’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전략은 매우 현실적인 것으로, 이미 액화할 수 있는 기체들을 하나씩 차례로 이용해 더 낮은 온도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었지요.
기체를 액화해 얻은 액체는 다시 기체로 변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합니다. 이 때문에 주변 온도가 내려가는 냉각 효과가 나타나지요. 냉장고나 에어컨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오네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액체 메틸클로라이드는 에틸렌을 냉각하는 데 쓰였고, 에틸렌은 산소를, 산소는 공기를, 그리고 공기는 수소를 액화시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각 단계에서 얻어진 액체들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내려가기 위한 냉각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오네스는 증발한 기체를 다시 압축해 액화시키는 폐회로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액체 기체를 장시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요. 그는 얼마나 차갑게 만들 수 있는가 뿐만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그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집중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수소의 영역까지 내려와도 여전히 끝은 아니었습니다. 액체 수소의 온도는 이미 극한에 가까웠지만, 이 상태에서도 고전 물리학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현상들을 관측하기에 아직 부족했습니다. 오네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지막으로 남은 기체, 헬륨으로 향했습니다. 문제는 헬륨이 너무 ‘말을 듣지 않는’ 물질이었지요. 다른 기체들에 효과적이던 방식이 헬륨에는 쉽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오네스는 마지막 카드로 줄–톰슨 팽창(Joule–Thomson expansion), 즉 고압 기체를 밸브를 통해 한꺼번에 팽창시키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헬륨은 충분히 차갑지 않으면, 팽창 과정에서 오히려 더 뜨거워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결국 오네스는 액체 수소를 이용해 헬륨을 최대한 냉각한 뒤에야 이 팽창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1908년 7월 10일, 종일토록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헬륨은 액체가 되었습니다. 그 액체는 눈에 띄게 흐르지도 않았고, 들어오는 순간조차 알아차리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채워진 뒤에는 마치 칼로 자른 듯 또렷한 액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처음으로 4K 근처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물리학에서 액체헬륨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지요. 액체헬륨은 다른 물질들을 더 낮은 온도로 데려가기 위한 필수적 도구였습니다. 액체헬륨 덕분에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온도 영역에서 금속의 전기저항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상식에 따르면, 온도가 내려가면 격자의 열진동이 줄어들면서 저항 역시 함께 감소하겠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불순물이나 결함과 같은 요인이 끝내 전자의 흐름을 방해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극저온에서 수행된 수은 실험은 이 기대를 정면으로 뒤집었지요. 액체헬륨 속에서 냉각된 수은의 저항은 서서히 줄어들다가 약 4.2K 부근에서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저항이 연속적으로 떨어지며 0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측정 한계 아래로 급격히 떨어졌고, 더는 전압 강하를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오네스는 이 현상을 우연한 사고나 오차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은이 이 온도에 다다르면 일반적인 도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확인 과정을 거친 후 그는 이를 이렇게 명했지요. ‘초전도 상태’, 현대 물리학의 거대한 줄기가 된 놀라운 발견입니다.

이 발견의 충격은 단지 ‘저항이 0이 되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았는데요. 저항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은 전자의 흐름을 방해하던 모든 메커니즘이 어떤 임계 온도에서 한꺼번에 무력화된다는 뜻이었고, 이는 기존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석과 납에서도 유사한 전이가 발견되면서 초전도는 수은만의 특이한 성질이 아니라 저온에서 금속이 보일 수 있는 보편적인 새로운 물질 상태임이 드러났지요. 액체헬륨은 그동안 열에 가려져 있던 물질의 이런 본성을 드러내 준 도구였던 셈입니다.
이것은 단번에 이뤄진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오네스는 액체헬륨이라는 목표를 마음에 품고,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습니다. 기체를 액화하는 기술을 쌓고,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실패와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단계가 다음 단계를 가능하게 했고, 그렇게 쌓아올린 사다리의 끝에서 비로소 새로운 물리학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새해를 맞아 세우는 계획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나 극적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한 걸음을 차분히 내딛는 것, 그 과정들이 언젠가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으로 우리를 밀어 힘껏 올려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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