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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물

by 앰코인스토리.. 2025. 9. 15.

사진출처 : freepic.com

조용한 산중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시원함을 넘어 상쾌함마저 준다. 맑디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물은 모든 동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며 없어서 안될 고마운 존재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물이 우리의 몸에도 큰 역할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비빌 틈도 없이 정수기로 향한다. 머그컵을 하나 들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두세 번 씻은 머그컵을 더운 물에 먼저 데우고 다시 찬물을 받는다. 그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이 된다. 한모금을 마시고 나면 온몸으로 물이 금세 흡수되는 느낌이 든다. 모터를 달고 물 속을 재빠르게 헤엄쳐 다니는 잠수함처럼 혈관 곳곳을 재빠르게 누비는 것이다. 다시 한 모금을 입 안에 담고 잘근잘근 씹어본다. 액체인 물이 부서질 게 뭐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서너 번 물을 꼭꼭 씹어서 넘기고 나면 물이 더 빨리 흡수될 것만 같다. 이렇게 한번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밤새 붙어 있었던 노폐물이 한꺼번에 씻어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아침을 먹기 한 시간 전에 물을 먹는 것이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있다. 진짜 맞는 말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침에 물을 먹고 나면 아침식사를 할 때 식욕을 돋우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요즘은 식사를 하면서 국과 물을 치웠다. 급하게 한끼를 해결해야 할 때는 국에 밥을 말아 숟가락으로 허겁지겁 떠먹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기억이 없다.

 

언제였을까. 그때도 출근시간에 쫓겨 허기를 해결하고자 뜨거운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먹기 시작했다. 채 5분이 되지 않아 한 그릇을 비우고 뛰어나갔다. 그런데 무언가 속이 얹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명치를 몇 번 때리면 나아지려나 싶어 주먹을 가볍게 쥐고 서너 번 퉁퉁 때렸다. 하지만 더부룩함은 계속되었다. 약국에서 활명수를 한 병 사 먹고 나서야 꽉 막힌 속을 뚫어낼 수 있었다. 국이나 물에 말아 밥을 먹는 습관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호되게 혼나고 나서는 식사 전후에 입을 헹구기 위해 먹었던 물컵을 없앴다. 그리고 나서 생긴 습관이 식사 한시간 전 물을 먹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들은 물을 꾸준히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과일주스나 커피, 녹차, 탄산음료도 물이 들어간 것인데 맛이 없는 물을 먹는 것과 비슷하지 않는지 우기는 사람들에게는 순수한 물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꺾지 않는다. 몸에 좋은 것은 물이지, 거기에 내용물이 첨가되면 물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리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맑디맑은 시냇물이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이 잘 자라는 것처럼, 우리 몸에도 순수한 물이 혈관을 타고 옮겨 다녀야 혈관을 깨끗하게 만들고 혈관 속에 사는 각종 성분들이 차분히 제 기능을 올바르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맛과 색은 없지만 우리 몸에는 휠씬 이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이 몸에 좋다기에 많이 마셔 본 적도 있었다. 하루 2L는 마셔야 핏속에 떠다니는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다는 말에 생수병을 가지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마시곤 했다. 하지만 지나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많은 물을 마시다 보니 시도때도 없이 화장실을 찾는 것이 단점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의사 선생님의 조언은 2L라는 목표치를 꼭 채우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너무 많은 양의 물 섭취는 오히려 우리 몸을 해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서너 번 나누어 적당량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맹목적으로 무언가 좋다는 말에 그쪽으로 휩쓸리는 것도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에게 끊임없이 제공되는 게 공기와 물이라 한다. 물은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옛말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저렴하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갈수록 오염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과 공기를 더욱 사랑하면서 아끼고 보호하는 일을 하나하나 작게나마 실천해 봐야 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