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to(렌토)는 ‘느리게’ 또는 ‘길게 끌면서 느리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보에서 이런 지시어가 있다면 곡을 느리게 연주하며 길게 끌고가는 느낌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Lento는 Adagio(아다지오) 보다 느리고, Largo(라르고)보다는 약간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것입니다. 음악들이 대체적으로 느리고 차분하지만, 길게 늘어지는 선율이 때로는 끈적거리는 늦여름 밤의 열대야에 놓인 기분을 들게도 합니다.
쇼팽 녹턴 (야상곡) 6번 Op.15
Frédéric Chopin: Nocturne No. 6 in G Minor, Op. 15, No. 3
영상출처 : youtu.be/aE3xh6xICxw?list=RDaE3xh6xICxw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을 이탈리아어로 쓰는 이유는,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처음으로 그들의 악보에 빠르기를 적어 연주를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유럽의 다른 나라 작곡가들도 이를 따라 사용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이탈리아 용어 그대로 옮겨 사용했습니다. 음악의 역사에서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가 유럽의 예술 중심지가 되었기에 음악 용어에 있어서도 중심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케이팝(K-Pop)이 세계 음악의 흐름에 한 획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지요.
생상스 클라리넷 소나타 E단조 Op.167
Saint-Sans Clarinet Sonata in E-Flat Major, Op. 167: III. Lento
영상출처 : youtu.be/q7Z-LQMElaA?list=RDq7Z-LQMElaA
9월은 늦여름과 가을의 중간으로, 마치 형제 중에 둘째 형님이나 둘째 누님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옆에서 봐주며 지켜주고 있고, 그러면서 둘러보면 항상 거기 꼭 있는 9월이 둘째 형님과 비슷한 느낌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아직은 찌는 듯한 여름이지만, 언뜻언뜻 살랑거리는 바람은 가을 냄새를 살짝 풍겨주면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9월이지만, 뜨거웠던 여름을 강한 저항으로 빠져나가려는 의지를 가을 태풍으로 보여줍니다. 1년 12달 중에서 성질이 다소 거친 달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화나면 무서운 둘째 형님과 닮아 있습니다.
이런 거친 저항은 드디어 성공하게 되고, 마침내 9월의 가을은 느슨함과 여유로움을 선사합니다. Lento의 뜻에 맞게, 느리지만 여유로운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이 과일의 단맛을 채워주고 서늘한 아침이슬이 농작물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는 가을의 마중물인 9월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Pogo lento e grazios’의 뜻은 ‘조금은 느리고 우아하게’ 연주하라는 지시어로 거친 날씨가 지난 후 초가을의 기분을 춤곡풍으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드보르작 유모레스크 중 7번
Dvorak 8 Humoresques, Op. 101, B. 187: No. 7, Poco lento e grazios
영상출처 : youtu.be/R_qvTNTKFVY?list=RDR_qvTNTKFVY
Lento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는 가을꽃 중에 하나가 해바라기입니다.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느리지만 우아하게 햇살을 쫓아 방향을 바꾸면서 얼굴 가득 씨앗을 맺는 것이 사랑하는 이를 향하는 사랑꾼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조급함으로 사랑하는 이를 따라다니기보다는, 느긋하지만 조바심 없이 우아하게 나를 사랑해주는 이를 바라보는 화사한 해바라기의 모습은 에릭 사티의 짐노페티 3번과 걸맞는 9월의 Lento라 할 수 있습니다.
에릭 사티 짐노페디 3번
Erik Satie , Gymnopedie No.3, Lent et grave
영상출처 : youtu.be/vo2ezRVhtng
풍요로운 풍년을 기대하는 농부의 막바지 노력이 필요한 계절이 바로 9월입니다. 늦여름의 햇살을 가득 품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일과 황금색으로 터지기 직전의 벼 이삭들이 낯선 외부의 환경으로 인해 갉아 먹히고 태풍의 거친 바람에 쓰러질 수 있기에 농부들의 조바심은 흙바람에 거칠어진 손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런 조바심과 걱정을 농부들은 음악으로 극복합니다. 농악은 한국 고유의 노동요이자 하늘에 기도하는 제례음악입니다. 농부의 노력으로만 풍년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었기에 하늘의 도움을 또한 구하는 것과 결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 판굿
NATIONAL GUGAK CENTER FOLK MUSIC GROUP - Pan-gut
영상출처 : youtu.be/vN9iwqTEz3w
9월의 거친 성격은 풍요를 시샘하는 자연의 반항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에게 사춘기가 있어 성장통을 겪듯이, 진정한 가을로 성장하기 위한 통증과 상처가 9월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쓰러지고 채이고 긁혀진 상처를 가지고 가을을 만드느라 수고한 9월에게 반창고라도 붙여줘야겠습니다.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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