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문화로 배우다

[음악 감상실] 이기적인 클래식 음악

by 앰코인스토리.. 2023. 2. 23.

‘클래식’ 하면 다소 무겁고 지루한 음악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클래식은 그다지 어려운 음악도 아니고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악입니다. 광고는 물론이고 영화나 게임의 배경 음악으로 귀에 익은 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참으로 ‘이기적인’ 장르입니다. 이기(利己)적이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자기의 이익만을 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이기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그중에서 최고는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쟁이라면 나라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땅과 목숨을 빼앗습니다. 이보다 이기적인 것이 있을까요? 클래식 음악에서도 이러한 전쟁을 미화시키거나 혐오하는 등으로 표현한 음악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참으로 많은 전쟁을 겪었습니다. 승리도 있고 패배도 있는 나라 중 하나이지요. 1812년 프랑스가 러시아를 침공하여 모스크바를 점령합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는 러시아 국민들이 피난을 한 상황이었고, 때는 겨울이라 프랑스 군인들이 러시아의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모스크바에서 퇴각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이러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12년 서곡을 작곡하고 연주를 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만든 승리에 대한 축하 연주입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연주에서 실제 대포와 종소리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영상 중 피날레 부분에서 실제로 대포와 교회 탑의 종을 사용해서 연주합니다)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1812 overture op.49

영상출처 : https://youtu.be/QUpuAvQQrC0

 

외국의 침략에 대응하여 온 국민이 저항하면서 승리를 거머쥔 역사를 가진 러시아가 이기적인 욕심으로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유럽의 평화를 깨는 의도치 않은 주인공이자, 자연은 축복받았지만 역사는 저주받았다는 우크라이나는 수많은 침략과 지배, 그리고 갈등과 대립을 고스란히 받아낸 ‘유럽의 문’이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전쟁 기사 속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Kyiv)에는 ‘유럽의 관문’이라는 별명답게 ‘키이우의 문(The Golden Gate in Kyiv, Ukraine, 키예프 대공국 시대 건설된 황금문)’이 있습니다. 구소련의 영토가 되기 전 키예프 대공국 시절(1024년) 완공된 성문입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르그스키가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중 제10곡 <키이우의 대문>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무소르그스키가 절친인 화가 가르트만(하르크만)의 전시회를 방문하고 친구를 그리워하며 그의 그림 중 10가지를 가지고 음악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친구끼리 애틋해하며 먼저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결단이 이러한 슬픈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종식되어 키이우 대문 앞 광장에서 무소르그스키의 <키이우 문>이 연주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무소르그스키 표제음악 전람회의 그림 중 <키이우의 대문(La Grande Porte de Kiev)>

영상출처 : https://youtu.be/vw7OM_Q810k

 

현대의 역사 안에서 전쟁하면 미국과 베트남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베트남 전쟁은 모든 세대를 아울러 전쟁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억지스럽고 이기적인 전쟁이었다고 봅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헬기 부대가 마을을 공격하고자 출격할 때 미군 킬고어 대장이 공격 개시의 신호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 <발퀴레의 비행>을 틉니다. 이를 신호로 마을은 공격당하기 시작합니다. 음악의 제목에 있는 ‘발퀴레’는 전쟁터를 날아다니며 싸우는 호전적인 여신을 말합니다. 전쟁과 음악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전장의 긴장감과 광기를 부각하는 선곡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이기적이게 음악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무서움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 니벨룽겐의 반지 중 <발퀴레의 비행>

영상출처 : https://youtu.be/1lGM5SOYzc0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 장교가 적국이었던 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게르만족의 신화 바탕의 음악을 주제로 작곡한 곡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이 참으로 이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만의 자부심을 가진 음악도 많은데, 하필 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사용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1937)의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를 사용했다면 전쟁의 공격성보다는 헬기를 타고 있는 미군들의 향수를 자극해 전쟁의 잔혹함은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에서는 공격성과 광기를 일깨우는 방법이 승리의 요건입니다. 죽은 이의 입장에서는 전쟁 안에서 승자도 패자도 아닌 것입니다. 다만 누가 더 이기적인가에 의해 승패가 판가름 난다고 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다른 대상인 베트남을 돌아보면, 강대국의 무덤이라 할 만큼 외세에 대한 침략을 모두 막아온 역사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태국과 크메르와 패권 다툼을 통해 국력이 쇠약해지고, 프랑스는 베트남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지속적인 투쟁을 하게 되고, 마침내 현재의 독립 국가 베트남이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1950년대의 베트남의 생활을 그린 영화로, <그린 파파야의 향기(The Scent of Green Papayas)>(1993)를 보면 베트남의 음식과 생활 시골 풍경을 마치 종합선물 세트처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중 드뷔시의 <달빛(Debussy, Clair de Lune [Suite de Bergamasque])>은 이때의 베트남을 잘 대변한 음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고요히 나 홀로 온몸으로 습하고 축축한 밀림 안에서 달빛 샤워를 하는 느낌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끈적거리는 투쟁과 질척거리는 혼란 속에 있지만, 달빛의 청명함으로 개운하게 씻겨 내려가는 상쾌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린 파파야의 향기, 드뷔시 <달빛>

영상출처 : https://youtu.be/2deOSlCRMv0

 

비록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영화감독이 이기적인 관점으로 전쟁 안에 음악을 사용하여 음악다움보다 전쟁다움을 피력하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이 전쟁과 혼돈, 광기 안에 녹아들어 음악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마치 진흙 펄에서 피어난 연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지요.

 

다음에는 평화적인 클래식 음악에 대해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