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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글레노리 노란 우체통] 팔월의 시인

by 앰코인스토리.. 2022. 8. 18.

사진출처 :freepik.com

나는 이 문장을 좋아한다는 서두로 그대의 안부를 묻기로 했다.

“모든 건축가는 반드시 훌륭한 시인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독창적인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한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두 직업 즉 건축가와 시인의 독창적인 해석이라는 연결고리를 발견해보려고 한다. 관심이 컸던 단어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건축가는 훌륭한 시인이어야 한다는 말을 뒤집어, 시인 역시 훌륭한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독창성에 한해서는 오십 보 백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시대와 더불어 남다른 글 집을 짓고 있는 시인이라면 거기에 많은 독자들이 세 들어 살아왔을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 지어 놓은 글 집에 거하며 자랐고 그늘과 휴식을 누렸으며 그것이 나의 거친 길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도 했다.

 

세상을 보는 관심이 다양해지면서 이상하게 건축에 대한 동경이 커져갔다. 건축 디자이너 대한 책도 사 모으면서 유명 건축가들의 배경을 찾아 읽는 기쁨이 쏠쏠했다. 젊은 시절부터 건축을 전업으로 삼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살 집을 짓는 것이나 글로 책을 짓는 일은 유사한 점이 많다. 잘 지어진 집의 맑은 유리창이나 달빛이 스며드는 창호 문을 열고 내다보는 바깥세상은 시인이나 건축가의 수많은 창고이자 꿈의 빈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 글의 처마를 너르게 내어준 선배 시인들의 발자국을 따라 나도 그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시인이나 건축가들은 작업을 위한 원재료를 주로 어디서 찾을까. 예를 들어 N 작가는 책을 읽을 때마다 좋은 단어나 문장을 발견하면 공책으로 옮겨와 자신의 생각을 덧입힌 문장 모음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신축한 글 창고인 셈이다.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흉내를 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난 그저 읽고 그 자리에 긁적거리거나 여기저기 던져 놓고 주워다 쓰는 작업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업 작가들의 글 창고는 훔쳐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컴퓨터나 노트에 저장해둔 재료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마음에 닿는 소재를 발견되면 얼룩진 등피를 조심스럽게 닦고 심지를 올려 불을 댕기는 것처럼 자판 위에서 조심스러운 작업을 했을 테니 말이다,

꿈에서도 시를 쓴다는 지인들이 더러 있다. 나 역시 자다가 번뜩 무엇이 스치면 머리맡 노트를 펼쳐 잽싸게 써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적으려고 하면 한 줄도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아 둔 메모 속에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재료도 있지만 수십 년이 지나 골동품이 된 기억도 있다. 잠시, 거풍을 시키듯 기억 속의 한 장면을 소환해보려고 한다.

 

내가 자란 곳은 작은 읍 소재지,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서너 정거장쯤 가서 산을 조금 오르면 작은 절이 있었다. 그곳에는 언제부터인지 스님들의 심부름을 하며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중이 있었다. 학교에 갈 때는 교복을 입고 도시락을 들고 버스로 통학을 했다. 엄마, 아버지 대신 스님과 나이 많은 보살님들이 계신 것이 나와 다를 뿐이었다.

그 절은 절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몹시 아담해서 예불을 드리는 법당 한 칸을 빼면 산속에 있는 여느 민가나 다름없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구조지만 절에 거주하는 식구들도 다섯 분 내외였던 것 같다. 스님들은 자주 읍내로 내려와 탁발을 해서 올라가곤 했는데 어린 소년은 늘 그 곁에 서 있었다. 엄마는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반색을 하며 쌀을 한 바가지씩 건네주는 인심 덕분에 스님들은 거르지 않고 우리 집에 들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고 그는 나보다 서너 살 많았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친해졌다. 왜 그랬는지 그때 나는 한적한 절에 자주 놀러 갔으며 절 마당이 너른 이웃집 마당처럼 편안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절에 올라간다고 하면 엄마는 보살님 갖다 드리라고 내 손에 뭔가를 들려주시곤 했다. 절에서 놀다가 내려갈 때도 내 손에는 보살님이 싸 주신 산채나 버섯이 늘 들려 있었다.

작은 절이다 보니 행사 때 외에는 인적이 드물어 좁은 툇마루에서 같이 숙제를 하거나 스님들이 버섯 따러 나서면 산길을 따라가기도 했다. 우거진 나무들로 그늘 깊은 절 마당에 고즈넉하게 앉아있으면 몇 그루 서 있는 진초록 감나무와 낮은 돌담 사이로 맑은 바람이 드나들었다. 서늘한 뒤란엔 귀퉁이가 나간 크고 작은 장독들이 시골 할머니 굽은 등처럼 들쑥날쑥 앉아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눈에 선하다.

노구의 보살님들은 사춘기에 눈을 뜨는 아이들이 그저 밤톨 같다 생각하셨는지 내버려 두셨다.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내려오는 날도 있었다. 방학이 되면 서로 성적표를 보여주거나 책을 바꿔가며 읽기도 하고 독후감을 써서 마루에 올려두고 바람에 날아갈까 봐 돌을 올려놓고 오기도 했다. 한두 해를 그렇게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글 어디엔가 절 마당이 가끔 묘사되는 건 그때의 따뜻하고 좋은 마음이 그 창고 벽에 훈훈하게 걸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흔하지 않은 기억이나 경험들이 노트북 앞에서 글을 풀어나가는 실 끝이 되기도 하며 글을 짓는 기둥이나 벽이 되기도 했다. 건축의 묘술이 독창적인 창고 덕분이라는 말을 하다 보니 개인적인 기억 하나를 인용하게 되었지만 선배 작가들의 대부분은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예전부터 여행하다 보면 문학 쪽보다는 폐허가 다 된 고대 건축에 더 관심이 갔다. 집에 돌아와 골똘히 사진 정리를 하다가 그 건축물이 성하게 빛나던 시간 속을 혼자서 밟기도 했다. 성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자가 되어 구석구석을 읽고 마음에 걸치면서 묘한 울림을 경험하곤 했다. 그러다 보면, 오래전 시간이 나의 내면에까지 닿아 어떤 기시감에 닿기도 했다. 왜 그 기둥이나 두툼한 벽들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미주 여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엔 어떤 현대 건축물과 인연이 될지 기대감은 있지만, 돌아와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나는 몇 안 되는 나의 독자를 위해 망치질과 끌질을 열심히 할 것이다. 구월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계절 모퉁이에서 그대에게 팔월의 안부를 간곡히 드린다. 이제 가방을 싸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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