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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장마 속 해변 산책

여행은 때로는 삶을 교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슴 답답함에서 한 발짝 물러나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일, 그저 집 밖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된다. 버겁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보려 했다.
안압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연꽃 구경부터 했다. 거대한 연못에는 물은 보이지 않고 흰색과 연분홍색을 자랑하는 연꽃이 만발했다. 집 앞 도랑에 몇 포기의 연잎이 있었다. 조막손으로 물을 떠 연잎에 부으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쪼르르 흐르는 모습이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어린 시절이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안압지 경내의 동궁과 연못을 바라보면서, 신라 때도 백성들은 많이 힘들었을 텐데 왕과 고관대작들은 춤과 노래를 들으며 풍류를 즐겼겠네 싶었다.
가까운 거리에 양남 주상절리가 있었다. 4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부채꼴 모양과 수평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해 있는 것이 보인다. 꼭 원목을 포개어 놓은 것 같은 형상으로 누워있다. 실물을 보면서도 주상절리라는 단어가 바로 이해되지 않아 인터넷을 보았더니 ‘마그마의 냉각과 응고에 따른 부피 수축에 의해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이라고 하나 여전히 아리송하다. 푸짐한 활어회로 포식하고 몽돌해수욕장을 찾았다. 조약돌이 지천으로 깔린 해변을 걷자니 사각사각 부딪치는 돌의 소리가 신비롭다. 주변 어느 곳이나 완만한 곡선으로 아기자기한 카페와 횟집과 펜션 등이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다.
젊은이라면 우중 산책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가 오는 듯 마는 듯했고 바람이 약해 우산을 쓰고 해변을 거닐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걷다 피곤하면 카페의 야외 자리에서 카페라테를 마시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비가 그치면 대형매트를 깔아놓고 과일을 먹거나 반듯이 누워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심신을 맡겼다. 오히려 사람이 거의 없으니 한적하고 교통이 원활한 데다 무덥지 않아 제대로 구경을 했다.
어느 곳이나 산책객은 열 명도 채 되질 않았다. 어쩌다 본 이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은 낚싯대로 고기를 잡고 있어 이채로웠다. 마지막 날엔 10리 대숲과 대왕암을 보기로 했다. 한 시간가량 대나무 숲 사이를 걸으니 자연과 함께인지라 청둥오리와 새들도 많았고, 맑은 공기에 가슴속이 뻥 뚫리는 듯 맑아졌다.
7년 전에는 꼿꼿했던 대나무들의 휘어진 모습을 보자니 세월은 인간만 아니라 나무에게도 예외가 없음을 새삼 확인한다. 대왕암 공원은 두 다리로 걷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를 가진 곳이다. 해풍을 이겨낸 큰 소나무들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전망대 끝에 서니 크루즈 뱃머리에 선 듯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여기에 황갈색 기괴한 모습을 간직한 대왕암과 울기바위 등 각종 바위의 수직 절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되돌아오면서 아찔하게 걸린 출렁다리와 만났다. 303m의 다리는 개통을 앞두고 사전 무료 체험을 한다지만 비 때문에 출입구가 폐쇄되어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아쉽다. 오래간만에 4일간의 휴식을 보냈다. 그동안 30년 이상을 한 대기업에서만 근무했었다. 이제는 좀 더 여유로운 삶을 보내고자 약속해본다.

 

글 / 사외독자 정재왕 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