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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fun한 과학] 과학으로 인류애를 깨닫게 해준 인문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

과학으로 인류애를 깨닫게 해준 인문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
과학, 너는 내 운명

사진출처 : https://ko.wikipedia.org


지난 <fun한 과학>에서는 영국에서 매년 열리는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 강연은 1826년, ‘크리스마스 강연회’로 열려 지금까지 런던 왕립 협회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대중을 위한 과학강연의 효시로 불리는 이 강연회를 창시한 사람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 영국 왕립과학연구소의 초대 풀러 화학 석좌교수(Fullerian Professor of Chemistry)입니다.

 

중·고교 물리 시간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전류와 자기장의 흐름을 배울 때 등장하는 과학자가 바로 마이클 패러데이지요. 그는 자기장이 감소하는 쪽으로 전류가 흐른다는 점, 즉 전기에너지를 얻는 원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의 20파운드짜리 지폐 도안에 아이작 뉴턴이나 찰스 다윈보다 앞서 등장했을 만큼 영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그의 과학적 업적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진출처 : https://www.leftovercurrency.com

 

마이클 패러데이는 1791년 9월 22일, 영국 뉴잉턴에서 대장장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읽기, 쓰기, 산수 등 기초적인 정도의 정식 교육을 받고, 13살 때 조지 리보가 운영하는 서점의 견습생이 되어 7년간 함께 지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제본한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는데, 그중 제인 마르켓의 유명한 화학 입문서인 「화학의 대화」, 제임스 타이틀러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3판 등은 그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갖도록 해주었습니다. 개방적인 사고와 호기심이 많았던 그를 좋게 본 스승 조지 리보는 그가 화학과 전기에 관련된 작은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는 신문과 잡지에서 예술과 과학에 대한 글을 읽고 노트에 정리하였고, 저녁에는 런던의 철학협회가 개최하는 과학강의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패러데이는 그렇게 혼자 전기에 대해 독학하며 점차 과학 지식을 쌓아갔고, 그가 정리한 노트도 네 권이나 되었습니다. 스승 리보는 자신의 직원이 과학에 실력을 쌓아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노트를 거래처에 보여주곤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왕립연구소 회원이자 음악가인 윌리엄 댄스의 아들이었지요. 그가 그 정리 노트에 감명을 받아 아버지에게도 보여주자, 윌리엄 댄스 역시 이에 감동해 당시 왕립연구소의 인기 강사였던 험프리 데이비의 화학 강연 티켓을 마이클 패러데이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cornwalls.co.uk

 

마이클 패러데이는 인상 깊었던 험프리 데이비의 염소의 특성에 관한 강연에 참여 후 그림과 함께 이를 기록하여 책으로 묶어 험프리 데이비에게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데이비는 실험 중 폭발 사고로 눈에 부상을 입어 치료 기간에 자신의 실험을 기록해줄 조교를 구했는데, 이때 추천된 사람이 바로 마이클 패러데이였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왕립연구소에 취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화학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립 협회 꼭대기 작은 옥탑방에서 생활하며 주급을 받고, 실험실의 장비를 관리하면서 왕립 협회 회원들의 분석업무, 기타 과학적 업무들을 맡았습니다. 실험실과 조수, 숙소, 도서관이 모두 제공된다는 점에 그저 만족했다고 합니다. 왕립학회의 의뢰를 받아 망원경에 쓰일 광학 유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전자기력에 의한 회전(Electromagnetic rotation)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는 훗날에 전동기의 핵심 기술이 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

 

자기와 빛의 관계, 자성체의 성질, 자기력선과 자기장 등의 연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패러데이는 런던의 과학계는 물론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부와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강연 출판을 거부하고 왕립학회의 회장직을 거절하였으며 기사 작위 수여도 거절하였지요. 그저 자신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실험실, 조수, 자료가 있는 협회 숙소면 충분했던 그는 그곳에서 40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1858년 빅토리아 여왕이 마련해준 런던 템스강 변의 햄프턴 코트 근처의 저택으로 옮겨 그의 말년을 지냈지요.

 

초등 과정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던 그가 영국 왕립과학연구소의 초대 풀러 화학 석좌교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과학에 대한 열정 덕분이었고, 그 열정에 불을 지펴준 것은 우연히 얻게 된 험프리 데이비 강연의 티켓 한 장 덕분이었다는 것을 그는 늘 기억했습니다. 왕립연구소에서 개최해오던 과학강연을 보다 대중화하여 아이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쉽고 흥미로운 주제로 확장한 것은, 자신이 유년 시절 경험했던 과학에 대한 흥미를 함께 다른 사람과도 함께 나누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1826년 그는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회’를 만들었고, 해마다 흥미로운 주제들로 큰 사랑을 받게 된 이 과학강연회에 마이클 패러데이 자신도 열아홉 차례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그의 양초 강연은 유명합니다. 양초를 통해서 화학적 토대를 이루는 물질의 특성과 상호작용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풀어주었습니다. 그의 이 강연은 「양초의 화학사(The Chemical History of a Candle)」라는 책으로 발간돼 지금까지도 과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amazon.com/Chemical-History-Candle-Michael-Faraday/dp/0486425428


그는 강연에서 자신을 태워 빛을 내 주위를 환히 밝히는 양초를 빗대어 더불어 사는 삶, 조화로운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강연은 과학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지요. 과학기술을 자국의 이기적인 무기로 활용하는 지금의 시대를 살며 1861년, 그가 마지막 강연에서 남긴 메시지를 곱씹어 봅니다.

 

“번쩍이는 금과 은, 다이아몬드나 루비, 그 밖의 어떤 보석이 양초의 불꽃만큼 빛을 낼 수 있습니까? 다이아몬드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도 이 불꽃 덕분입니다. 불꽃의 빛이 다이아몬드를 빛나게 하는 것이지요. 불꽃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불꽃이 없으면 빛날 수 없습니다. 양초는 자신을 태워 빛을 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빛을 냅니다. 저는 이 강연의 마지막 말로서 여러분의 생명이 양초처럼 오래 계속되어 이웃을 위한 밝은 빛으로 빛나고, 여러분의 모든 행동이 양초의 불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여러분이 인류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 전 생명을 바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