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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 책VS책] 일상에 머무는 여행의 기술 VS 경계를 넘어설 여행의 권리

일상에 머무는 여행의 기술
VS 경계를 넘어설 여행의 권리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여행도, 장거리 이동도 어려운 요즘 우리가 얼마나 여행을 그리워하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출퇴근을 꼭 해야 하는 직장인이 아니라면 재택근무에서부터 탄력근무제, 유급 무급 휴가까지 사용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학생들은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등교가 두 달 가까이 미뤄지고 있지요. 반강제적으로 멀리 못 나가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여행에 대한 욕구가 솟구칩니다.

 

신기하지요. 우리는 왜 이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 걸까요?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집에 있는 것보다 더욱 편안한 것도 아니고, 여행지에서의 모든 경험이 평범한 일상보다 더욱 특별하거나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거든요. 여행은 어떤 면에선 참 불친절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불안함이 감도는 시간, 낯선 사람들을 감내해야 하는 건 기본이지요. 숙소는 생각보다 좁고, 콘센트의 위치나 화장실의 위치도 마음에 안 들고, 골목길의 냄새도 이상합니다. 길을 잃을까 봐 걱정, 바가지를 쓸까 봐 전전긍긍, 남겨두고 온 할 일에 대한 부담까지 모두 여행에 포함되는 옵션입니다. 오죽하면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광고의 카피가 전국을 휩쓸었겠어요. 불편할 거라는 걸, 고생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감수할 만큼 여행이 주는 특별한 장점이 뭐길래 우리는 그렇게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할까요?

 

 

아마 늘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떠나기 전과 다녀온 후에 달라지는 내 자신의 미묘한 변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요. 김영하 작가가 「여행의 이유」에서 이야기했듯이 독자나 여행자 모두 낯선 세계로 출발했다가 돌아오면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되잖아요. 그 변화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일상이 생경해지는 느낌이 들지요. 살던 동네가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 전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 불쾌해졌다가도, 한강의 풍경이 의외로 괜찮아 보여 마음을 놓습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살아나면서 어지러운 일상을 살아갈 힘이 생겨요. 여행이 주는 선물이겠지요.

 

여행을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는 요즘, 방구석에 틀어박혀서도 여행을 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반영하는 ‘방구석 여행’이 최근의 트렌드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왜 이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 책 속으로 방구석 여행을 떠나봅니다.
“직접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집에서 항공사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 먼저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김연수의 여행 에세이 「여행할 권리」를 함께 읽어볼게요.

 

 

 

여행을 떠나지 않고 여행하는 기술까지 알려주는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영목 옮김 | 청미래

“일상성의 발명가”라는 칭호를 가진 알랭 드 보통은 세심하게 골라낸 수식어로 적확한 상황을 꼬집는 데 능숙합니다. 가끔은 굉장히 서늘하고 시니컬하기도 하지요. 사소한 것, 별것 아닌 것에서도 새로운 발견을 해냅니다. 오죽하면 ‘공항’에 관해서만 책을 한 권 썼겠어요.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은 뭐랄까, 여행에 관한 에세이는 맞는데, 오히려 여행지와 예술, 철학과 미학을 엮은 인문학 서적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이라는 챕터의 제목을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지요.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땐 푸른 바다와 환한 모래사장, 근사한 리조트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여행을 계획합니다. 알랭 드 보통은 그렇게 떠난 바베이도스 여행에서 예상치 않았던 이미지들을 보게 됩니다. 석유 보관시설, 작은 합판 초소, 럼주 광고, 택시 운전사, 재떨이 위에서 춤을 추는 파리 두 마리 같은 것들 말이지요. 섬에 가기까지는 9시간 30분이 걸렸지만 기억 속에서는 기내식, 입국 심사대 같은 몇 가지 장면만 남아있기도 하고요.
여행을 떠나지 못해서 우울한 줄 알았는데, 막상 여행지에 왔는데도 우울합니다. 감기 기운, 동료 걱정, 압박감, 화장실을 찾는 욕구, 방값에 점심이 포함된 건지 아닌지, 세금 포함인지 아닌지 같은 은근히 신경 쓰이는 자질구레한 문제가 여행을 방해합니다. 집에서나 여행지에서나 다르지 않은 우울한 자아의 연속성을 목격하지요. 심지어 같이 여행을 떠난 사람과 다투기라도 하면, 화려한 열대의 정원도 호사스러운 바비큐 파티도 하찮고 의미 없는 것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묻게 되지요. 행복의 핵심적인 요소는 물질적이나 미학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요.
우리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이 에세이를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정말 여행을 떠나는 것만이 더 나은 선택인가 하고요. 특별한 목적이 없이 집 앞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평소처럼 파자마를 입고 뒹굴거리며 소파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굳이 떠나지 않고, 여행 에세이를 읽기만 해도 배울 수 있는 사실이지요.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을 다시 돌아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겐 오직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이
「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책의 시작에 ‘”겨우 이것뿐인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라고 쓰였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여행할 권리는 문학할 권리이자 경계를 넘어설 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은 견고한 세계의 틀을 넘어설 권리이고, 여행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갈 권리이니까요.
책 속에는 여행할 권리를 주장하는 12개의 글이 빼곡하게 실렸습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글들입니다. 첫 문장부터 “오래전부터 나는 국경을 꿈꿨다. 왜냐하면 나는 국경이 없는 존재니까.”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인생을 결정짓는 국경이라던가, 경계를 넘는 언어들을 말합니다.
중국,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을 넘나드는 여행기에는 공간과 시간, 심리를 가로지르는 선이 등장합니다. 중-러 국경을 넘어갈 때도, 신화와 동방신기의 ‘바깥’을 넘나들 때도, 봉쇄선 150리 너머를 상상할 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쓰는 문학을 말할 때도 경계를 드러내는 선은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선이 있어야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고, 그 선을 넘을 권리를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게는 국경이 필요했다. 국경에 가서 아무런 사상의 전환 없이도,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내 다리로 월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고백을 곱씹게 됩니다.
그는 책 말미에서 매혹적인 공간으로 역, 휴게소, 공항이라는 세 개의 공간을 꼽았습니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이라면 선 위에 놓였다는 점이겠지요. 경계선 위에 놓여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공간, 타지 사람이 되어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경계의 이쪽이나 저쪽이 아닌 그 선 위에 있을 때 나는 다른 존재가 됩니다. 경계의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는 경계에 서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겠지요. 경계의 너머를 향해 가는 것이 여행이라면, 맞습니다. 우리에겐 늘 여행할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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