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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잠은 보약

by 앰코인스토리 - 2020. 1. 13.

 

오늘도 이른 잠을 청한다. 남들은 9시가 잠자기엔 초저녁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꿀맛 같은 잠을 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불을 끄고 깜깜한 천장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하루동안 열심히 살아준 나의 몸들과 정신, 그리고 장기들에 아낌없는 휴식을 주고 싶은 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살게 해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의 기도 시간이기도 하다. 문득 얼마 전 보았던 글이 떠오른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EBS 고등학교 영어를 보게 되었다. 독해 지문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잠에 관한 글이었다. 지은이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지문의 내용이 너무 가슴에 와닿아 한동안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은이는 잠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예로 박쥐의 삶을 서술하고 있었다. 박쥐는 네 시간만 깨어 있고, 나머지 시간은 잠을 자면서 보낸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참 어리석은 생활 패턴이라 조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보면 고개를 끄덕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0여 시간을 부산하게 움직여 천적들에게 잡아먹히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꼼짝하지 않고 잠을 잔다는 것이다.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옛말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야 하는 게 불만족스러운 이들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같이해 보게 되었다.

 

지은이는 잠자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건강한 잠, 현명한 잠을 자는 데 주력해 보자고 하며 자기 생각을 마무리했다. “너는 잠을 너무 많이 자!”라고 핀잔을 주는 친구가 있는데, 기회가 되면 박쥐의 얘기를 꼭 해줘야겠다. 그러고 보니 잠이 참 없는 친구였다. 중학교 때 나의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는 나에게 ‘등대지기’란 별명까지 지어줬다. ‘등을 대면 하루해가 진다.’ 이런 뜻이었다.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웃음보를 터뜨리게 되었고,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던 친구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또자’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으니, 잠을 극복하는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는 꽤 힘든 숙제 중 하나였다.

 

잠으로 생겼던 군대 침상에서의 낙상사고, 버스를 타면 종착역까지 가고서 되돌아오는 버스를 한번 다 타야 했던 사건, 알람이 제때 울리지 않아서 슬리퍼를 신고 등교해야 했던 아찔한 순간 등은 잠이 나에게 안겨주었던 에피소드들이다. 그때 그 상황을 목격하는 이들은 아직도 술자리 안주처럼 생생한 기억담을 꺼내 놓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잠은 보약이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머리가 아프고 힘든 하루를 보냈어도 여덟 시간의 잠을 자고 나면 그 어떤 약을 먹은 것보다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고 맑은 정신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를 모두 마치고 깜깜해진 방안에 누워있는 내가 가장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