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만으로 괜찮습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고맙습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 본 적 있으세요? 누구나 그런 경험 한 번쯤 있잖아요. 실수로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하이힐을 신고 걷다가 삐끗하기도 하고, 무심코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꽈당 넘어지기도 해요. 그저 한바탕 실수일 뿐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발라당 넘어지고 나면, 넘어져서 아픈 건 둘째치고 넘어졌다는 사실이 민망해서 누가 볼 새라 벌떡 일어납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툭툭 털고 가던 길을 가면 그만일 뿐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도 말이에요.
누구나 길을 가다가 넘어질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건강하게 잘 살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혹은 뜻밖의 사고를 당해 아픔을 겪기도 하지요. 누구도 자신에게 큰 사고가 닥칠 거라고 예견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이 곧 난치병 환자가 되거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닥치면 절망에 빠져 삶을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암 환자들은 치료를 받고 나서도 합병증이나 재발, 전이를 걱정하며 우울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일반인 대비 자살률이 2배에 가깝습니다. 치료 후가 아니라 암 진단 직후에는 일반인 대비 자살률이 3.45배나 높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요.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건강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역설하는 말이지요.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진짜 다 잃은 것일까요? 우리는 건강을 잃고 나면 삶의 의미도 함께 잃어버리는 걸까요?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꽃다운 20대에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살 가망이 없다며 의료진도 치료를 포기한 상황에서 3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과 재활 치료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이지선의 에세이입니다. 사고 이후 자신의 삶을 ‘덤’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삶 자체가 선물’이라는 깨달음을 전합니다. 삶의 의미는 건강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있음을 증명합니다.
누군가가 살아남기 위해 애쓴 흔적은 살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됩니다. 누군가가 고난에 맞서 싸우며 인간의 존엄을 보일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일상에 감사하고, 작은 용기를 내며, 절망을 조금씩 희망으로 바꿉니다.
살아있음으로 괜찮다고,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책들이지요. 자신이 겪은 엄청난 고통을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에세이들을 소개합니다. 이 책들을 읽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봅니다. 건강을 잃더라도 우리는 다 잃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힘이 얼마나 엄청난 힘인지 새삼 느낍니다. 네, 살아있음으로 괜찮습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턴어라운드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나이가 많든 적든 병에 걸리면 누구나 아픈 법이지만, “너 그러다 6개월 안에 죽어”라는 말을 듣기에 19살은 너무하지 싶습니다. 저자는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난치병으로 6년 동안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써온 일기를 모아 책을 냈습니다. 일러스트도 직접 그렸습니다. 투병기인데도 유머 감각이 살아있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에 눈물이 찔끔 나다가도 상황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에 웃으며 눈물을 닦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루할 만큼 무난한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내고픈 아름다운 시간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김혜남 지음, 갤리온
파킨슨병은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어지는 병입니다. 보통 파킨슨병에 걸리고 15년이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고 해요. 불치병이라는 말입니다. 저자인 김혜남 선생은 의사여서 파킨슨병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그 병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것도 마흔세 살에 말입니다. 너무 억울해서 누워만 있다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깨닫고 나서 하루를 살고, 다음 날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18년을 살아오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아이를 키우고,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예상치 못한 불행,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친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 것인지 어른의 지혜를 엿봅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구작가 글·그림, 예담
구 작가는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에 소리를 잃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보여주곤 했습니다. 자신을 대신해 좋은 소리를 많이 들으라고 귀가 큰 토끼 캐릭터인 ‘베니’를 만들었습니다. 소리를 들을 수는 없어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소소한 행복에 감사했는데, 이번에는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병에 걸렸습니다. 장애에 더해 불치병까지 걸린 이후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한 과정을 베니의 일러스트와 함께 책에 담았습니다. 저자는 넘어질 것 같으면 그냥 넘어져도 괜찮다고, 안 넘어지려고 애쓰는 게 더 힘이 들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넘어지는 하루도 소중한 하루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베니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번역, 윌북
질 볼트 테일러는 하버드대 뇌과학자였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승승장구하던 37살, 아침에 눈을 떠 출근을 준비하던 저자는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낍니다. 갑자기 옷을 입기도, 목욕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전화번호도 전화기의 용도조차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중증 뇌출혈로 뇌가 서서히 정보처리 능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저자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은 후에 걷기, 말하기, 읽기, 숫자 세는 법부터 다시 배워나가며 8년 동안 뇌의 기능을 되찾는 회복기를 거칩니다. 좌뇌를 잃은 뇌과학자가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뇌의 기능이 얼마나 섬세한지, 인간의 의지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성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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