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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이 되기 위하여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이 되기 위하여

필자는 여행작가로 일합니다. 남들은 여행작가로 일하면 참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모든 직업에는 나름의 고충이 있어요. 너무나 근사한 휴양지에서도 바닷물에 발가락 한 번 담그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카메라를 들쳐메고 돌아다니거나, 먹고 싶은 음식 대신에 원고에 소개할 음식을 하루에 다섯 끼 정도 먹을 때도 있거든요. 대부분의 여행이 순수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일 때문에 가는 출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출장 겸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도 필자만의 여행을 꿈꿉니다. 말하자면, 완벽하게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진짜 여행을 소망합니다. 음, 재미있지요. 매달 여행하는 여행작가가 꿈꾸는 진짜 여행이라니, ‘진짜 여행’이란 게 뭘까요?
그런데 진짜 여행에 대한 고민은 필자만 하는 게 아니었더군요. 어느 날 SNS에 여행 사진을 올렸더니 이러한 댓글이 달렸어요. 출장을 무척 자주 다니시는 분인 듯한데, “그동안 직업상 60여 개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진정한 여행을 해보지 못했다.”고요. 또 한 번 궁금해졌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내과 의사이자 세계적인 대체의학 전문가인 래리 도시는 현대인들이 ‘시간병(time-sickness)’에 걸려있다고 지적합니다. 시간병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강박적인 믿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우리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고, 항상 촉박함을 느끼고, 밤낮없이 일하고 공부합니다. 그러다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서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립니다. 여행을 가서도 돌아가서 해야 할 업무를 걱정하거나, 못다 한 업무를 보기도 해요. 일할 때와 똑같은 강도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강행군을 펼칩니다. 짧은 시간 안에 갈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으니 일할 때 보다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때도 있지요. 평소보다 더 잠을 못 자는 경우도 많아요.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리에겐 여행에 대한 뿌듯한 기억이 남을까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한 것 같지만 남는 것은 피곤함과 잡다한 기념품과 넘쳐나는 사진들일 때가 많지요.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을 찍어오지만, 말 그대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는 건 아닐까요?
미국의 비평가인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여행지의 사진 촬영에 대해 지적합니다. 여행을 가서 사진찍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노동 윤리가 냉혹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요. 온종일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휴가를 가거나 일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데, 사진 촬영을 함으로써 일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안심한다는 거예요.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 선생님도 이 부분을 지적합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놀이와 휴식을 비생산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에 불안을 넘어 죄의식을 느낀다고요. 불안에 대한 가장 흔한 방어는 과잉 활동인데, 휴식할 때 느끼는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로 여행을 가서 일을 하는 것처럼 돌아다니고, 바쁘게 사진을 찍는다는 거지요.

 

 

아마도 ‘진짜 여행’이란 여행하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여행 이후의 삶에 행복한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이 아닐까 합니다. 사진 좀 덜 찍으면 어때요. 남들 다 가는 관광지에 몰려가는 대신 숙소 앞의 공원을 잠깐 산책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바라보는 법, 필요에 따라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요. 여행의 시간 동안 나에게 집중하면서 한 뼘쯤 스스로 성장하는 일,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겠지요. 여행이 나를 성장시키는 삶의 일부라는 걸, 우리의 삶이 긴 여행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될 겁니다.

 

어김없이 여름 휴가 시즌이 돌아왔네요. 여행지에서 읽으면 좋겠다 싶은 여행책들을 소개합니다. 「여행하는 인간」은 여행의 경험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고, 「여행의 이유」와 「언젠가, 아마도」는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여행 산문집입니다.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는 어떻게 하면 여행하는 기분으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팁이 쏠쏠합니다. 이 책들을 읽는 시간이 진정한 휴식을 위한 시간, 진짜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행의 여행자
「여행하는 인간」

 

문요한 지음, 해냄

문요한 선생님은 정신과 의사로 20여 년을 바쁘게 일했어요.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행복을 고민하며 살아왔는데 정작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계속 미뤄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스스로 안식년을 선포하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통해 온몸의 세포를 재생하듯 몸과 마음의 모든 감각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문요한 선생님의 여행 경험을 녹여낸 수많은 에피소드와 여행의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된 심리학적, 인문학적 사유들이 들어있습니다. 여행과 인문학을 접목한 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책입니다.  

 

 

 

 

여행의 감각을 일깨우는 책
「여행의 이유」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김영하 작가는 인간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독자가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말합니다. 여행 중에 우리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정신은 한껏 고양되지요.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에 복귀하면,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됩니다. 수려한 문장으로 쓰인 아홉 가지의 여행 이야기와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면 작가에게 무척이나 환대를 받은 느낌입니다. 설령 우리가 계획한 대로 여행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여행이라는 것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언젠가, 아마도 우리를 길 위로 이끌 이야기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지음, 컬쳐그라퍼

이 책은 김연수 작가가 《론리 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라는 잡지에 4년 반에 걸쳐 연재했던 원고에 새로운 글을 덧붙여 엮은 책입니다. 총 58편의 짧은 에세이 속에 몽골,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실크로드를 넘나들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여행의 순간에 스쳐 간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가끔은 순천, 여수, 부산 등지의 여행을 풀어놓습니다. ‘언젠가, 아마도’라고 시작되는 여행의 짧은 이야기들은 매번 ‘역시 김연수 작가야!’라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때로는 웃음이 터져 나오게, 때로는 아련하게 스미는 글을 읽다 보면 나의 여행을, 나의 일상을 조금 더 깊은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오늘 당장 퇴근 후에 떠나는 작은 여행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최재원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자기만의 방

1년에 한 번 있는 휴가만 기다리고 있기엔 일상이 너무나 지루할 때, 이 책의 저자는 기다리지 말고 떠나라고 말합니다.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리 멀리 갈 필요가 없다면서 이번 주말에, 오늘 퇴근 후에 떠나는 작은 여행을 권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이 낯선 나라로 여행을 온 첫날 밤이라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시간은 조금 늦었고, 긴 비행으로 피곤하지만 그래도 숙소 근처의 동네를 혼자 한 바퀴 돌아보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 그냥 잠들긴 아쉬우니까요.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우리는 매일 여행하는 기분 정도가 아니라 두근거리는 여행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여행의 끝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어떻게 여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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