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성냥

by 앰코인스토리 - 2019. 3. 22.


인천 동구에서는 성냥을 테마로 한 박물관을 개관할 거란 기사를 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2000년이 오기 전, 아니 그 이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냥이 집마다 필수품이었던 적이 있었다. 불을 켜기 위해서는 동그랗던 육각형이든 커다란 통에 담긴 성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라이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성냥이 대장이었던 것이다. 담배를 자주 피우시던 아버지의 주머니는 요술램프 같았었다. 오늘은 무슨 무슨 다방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성냥갑, 어제는 어디 어디 복덕방이라 쓰인 빨간색의 작은 성냥갑이 등장하곤 했다. 성냥갑을 밀면 10개가 채 되지 않는 성냥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빨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 몰래 성냥 한 개비를 꺼내 성냥갑 옆면에 문지르면 신기하게 성냥을 빨간 불꽃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곤 했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하시면 빗자루를 들고나와 “불나면 어쩌려고 장난하니?”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성냥은 부엌 선반 맨 꼭대기에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작은 꼬마였던 우리 사 남매가 전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성냥은 설렘과 같다. 암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이면 사방이 금세 환해졌다. 그래서 불이 붙는 그 순간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흥분의 도가니였던 것 같다.
한참 야광이 유명했던 적이 있었다. 야광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두 손안에 넣고 손을 모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이 만들어지곤 했다. 그게 무척 신기해서 더 어두운 곳을 찾으려고 두꺼운 담요를 찾게 되었고, 완전한 어둠이 만들어졌을 때 야광으로 만들어진 작은 곰 모양을 꺼내면 더욱더 환한 빛을 발산했다. 그 연둣빛은 여름밤을 수놓았던 미리내 도깨비불로 오인했던 반딧불이를 보았던 때의 가슴 떨림을 고스란히 가질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빛들은 그 모양과 형태, 그리고 이름은 달라도 설렘을 주기는 충분했다.
성냥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잠자고 있었던 모든 것이 깨어나 바삐 돌아가고 움직였다. 아궁이에 장작불은 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우기 시작했고 가마솥에서는 하얀 쌀이 고슬고슬한 밥으로 변신했으며 까맣게 그을린 석유풍로에서는 저녁상에 오를 김치찌개가 맛있게 익어갔다. 덩달아 엄마의 손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어설 때쯤 되면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도 숨고르기에 들어 갔고 찌개며 국이며 전천후 역할을 하던 풍로의 불도 일과를 마치고 취침에 들어갔다. 작은 성냥 한 개비가 참 많은 일을 했다.
라이터가 등장에 밀려 성냥은 점점 우리와 멀어졌고, 성냥을 한번 보고 싶어 발품을 팔아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성냥 하면 그 이름만으로도 설렘이고, 잊고 있었던 추억을 하나하나 꺼낼 수 있는 요술쟁이이기도 하다. 성냥 테마박물관이 문을 여는 때가 된다면, 성냥에 대한 추억이 있는 친구 서너 명을 불러내어 같이 가봐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