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좋아지면 점차 괜찮은 와인을 만나고 싶어지면서, 그에 따른 지출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특히 한국에서의 와인 가격은 워낙 부풀려진 상태라 외국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세 배 이상은 보통이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만나고 싶은 와인을 기억해 뒀다가 백화점 와인 세일, 마트 와인 행사 때 구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몇 년 전, 코엑스 와인나라 장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분기마다 있는 할인 행사인데, 평소에 워낙 비싸서 만나기 힘든 와인들을 저렴한 가격에 가져올 수 있어서 좋다. 퇴근 후 와인 가게에 들러 진열된 와인을 쭉 한번 둘러보는데, 눈길을 사로잡는 와인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미국 여배우 마를린 먼로가 활짝 웃는 흑백 사진 레이블이 붙어있는데, 와인 이름도 ‘메릴린 메를로(Marilyn Merlot)’였다.
메를로(Merlot)는 적포도 품종으로 부드럽고 풍만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라벨에서 웃고 있는 배우도 바로 마를린 먼로가 아닌가! 정말 와인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 와인이 궁금해져서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이 메릴린 메를로를 언제 만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포천 명성산으로 팀 워크숍을 떠나게 되었다. 안 그래도 와인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와인을 소개해주고 싶던 차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역시 팀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아마도 떫지 않은 부드러운 맛과 레이블 속 활짝 웃고 있는 마를린 먼로의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묵직하고 강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메를로가 좀 밋밋한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막 와인을 알아가는 분들에게는 딱 맞는 품종임은 틀림없다.
메를로 (Merlot)
메를로는 ‘멀롯’으로 부르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카베르네 소비뇽’과 비교하면 훨씬 부르기 쉽고 뭔가 달콤해 보이는 이름이다. 이름처럼 맛도 부드러워 와인을 처음 시작한 분들이라면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적포도 품종이다. 메를로라는 이름은 조그만 검은 새 이름 ‘멜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새가 단맛이 나는 포도를 즐겨 먹어서 그 포도 이름도 비슷하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 작가이자 와인 평론가 레슬리 스보록은 메를로 품종을 부드러운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은 여인에 비유했다.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강 왼쪽인 메독 지역에서는 보통 카베르네 소비뇽 베이스에 부드러운 맛을 더해주기 위해 약간의 블랜딩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강 오른쪽인 포므롤, 생테밀리옹 지역에서는 메를로만으로 전설적인 와인을 만들어 낸다.
주요 생산지로는 프랑스 보르도, 미국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주, 칠레 등이 있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슈퍼투스칸도 유명하다.
메를로로 만든 유명한 와인으로는, 프랑스의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 샤토 르팽(Chateau Le Pin), 샤토 라플뢰르(Chateau Lafleur) 등이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으로는 마세토(Ornellaia Masetto), 레디가피(Tua Rita Redigaffi), 메쏘리오(Le Macchiole Messorio) 등이 있다.
특히 페트뤼스는 존 F. 케네디가에서 즐겨 마신 와인으로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와인이 되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잭팟이 터졌을 때 주문하는 최고급 와인이 바로 페트뤼스라고 한다. 그럼, 메를로로 만든 와인 중에서 몇 가지를 추천해 보겠다.
콘차 이 토로, 트리오 메를로 (Concha y Toro, Trio Reserva Merlot)
칠레 콘차 이 토로사의 와인으로 메를로 65%, 카르미네르 20%, 카베르네 소비뇽 15%를 블랜딩해 만든 와인이다. 자칫 부드럽기만 한 메를로 품종에 멋진 조연들을 넣어주면서 환상의 트리오로 재탄생했다. 세일 가격 1만 원 중반의 저가 와인이다.
콜롬비아 크레스트, H3 메를로 (Columbia Crest, H3 Merlot)
캘리포니아와 함께 미국 와인 산업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는 워싱턴주의 콜롬비아 크레스트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Horse Heaven Hills’라는 포도밭에서 생산되어 ‘H3’라고 이름 지었는데 작은 말 그림이 그려져 있어 청마의 해인 2014년에 선물하기 딱 좋다. 세일 가격 3만 원 중반의 중가 와인이다.
메릴린 메를로 (Marilyn Merlot)
메릴린 메를로는 미국 나파밸리 세인트 헬레나 지역의 몇몇 와인 메이커의 아이디어. 1985년 첫 빈티지 와인이 출시된 이후로 매년 마를린 먼로의 생일인 6월 1일에 새로운 빈티지 와인이 출시되고 각기 다른 레이블이 사용된다. 한 단계 낮은 급으로 노마진 메를로가 있는데, 그것은 마를린 먼로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세일 가격 5만 원 후반의 고가 와인이다.
아비뇨네지, 데시데리오 (Avinonesi, Desiderio)
이탈리아 슈퍼투스칸(Supertuscan) 와인으로, 라벨에 소가 그려져 있어서 포근한 느낌마저 든다. 처음에는 좀 개성 없이 밍밍한 것 같으나 두 시간 정도 지나면 스멀스멀 피어나는 다크 초컬릿 향이 인상 깊다. 세일 가격 10만 원 초반의 고가 와인이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뭔가 위로받고 싶을 때, 메를로 와인을 만나보자. 아마 푸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우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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