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와이너리 방문을 꿈꾼다. 특히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 오래된 샤토 같은 곳에서 하루 숙박을 하며, 낮에는 와이너리 투어를 하고 저녁에는 그 와이너리에서 만든 오래된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는 일정은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 와인을 위해 이틀이나 시간을 내어야 하니, 웬만한 마니아 아니고서는 여행 경로로 넣기에 참 모호하긴 하다.
올해 여름, 유럽으로의 가족여행을 계획하면서 반나절 정도는 나를 위한 여행을 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이나 부르고뉴 지역을 들르고 싶었는데, 여행 경로 상 많이 벗어난 곳이어서 포기해야 했다. 대신 이태리 일정 중에 하루는 토스카나 지방을 들르기로 했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중간에 토스카나 지역이 있기 때문에 렌트 카를 빌려 하루 들르기에는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다음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는 바로 이태리. 토스카나 지역은 요즘 힐링 여행지로 주목받는다. 특히 몬탈치노 마을은 중세시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태리 3대 와인 중 하나인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근처 발 도르차(Val d'Orcia) 지역의 구릉 지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봄에 새싹이 돋을 때 보면 마치 윈도 바탕화면과 같은 평온한 구릉 지대가 곳곳에 널려있고, 하늘을 향해 춤추듯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길도 참 인상적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에서 막시무스가 살았던 저택으로 나오는 집 입구는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와이너리 구경도 하고 숙박도 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몬탈치노 마을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il cocco’라는 농가 민박집인 아그리투리스모가 있는 것을 알았다. Booking.com에서 보는 평점은 10점 만점에 7점대 초반. 별로 좋은 곳이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방문객 후기를 확인하니 브라질에서 왔던 두 팀이 아주 혹독한 점수(3점대)를 줘서 평균점이 내려가 있었다. 10점을 주었던 사람들도 있어서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었다. 사진으로 보아도 좀 허름해 보이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많이 망설였지만, 이태리 농가에서 하룻밤 묵는 추억에 비하면 그것쯤은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으로 결정했다. 게다가 유기농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었고 자기네 밭에서 수확한 음식 재료로 저녁 준비가 가능하다고 하니, 허름한 것은 더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 <사진 1> llCoco 농가민박의 모습
저녁 8시가 다 되어 농가 민박에 도착했다. 이태리 주인장은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다른 투숙객들도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셰프 출신인 안주인이 만들어준 이태리 가정식 코스 요리와 주인장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포도로 만든 와인 BDM 와인과 곁들여서 먹으니 정말 서로 잘 어울렸다.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가족 모두 행복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주인장이 와인 셀러로 데려가 와인 만드는 방법 등을 알려주어 와인에 대한 지식도 한층 더 쌓게 되었다.
▲ <사진 2> 숙소의 분위기 있는 큰 방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600년 전에 지어진 돌집이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깔끔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방 두 개에 거실도 너무 커서 으리으리하기까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농장에서 포도밭을 일구고, 그 포도로 와인을 만들며 농가 민박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오는 여행자들과 만나는 삶이란.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듯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생활과는 너무 대조되어 무척 부러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민박집에 며칠 머물며 주위 와인 마을도 더 구경하고 사이프러스가 춤추는 길을 걷고 싶다. il cocco BDM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말이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Brunello di Montalcino)
이태리 최고의 와인을 꼽으라면, 피에몬테 지역의 ‘바롤로’, ‘바바레스코’, 토스카나 지역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부르넬로는 산지오베제의 변종으로 몬탈치노 마을에서 재배되어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라는 긴 이름을 갖는 와인이 되었다. 최고 유명한 와인들로는 ‘비온디 산티’와 ‘카스텔로 반피’가 있으며, ‘안티노리’, ‘가야’, ‘프레스코발디’ 같은 와이너리에서도 BDM와인을 만든다. BDM와인은 강하게 들이대지 않고 벨벳처럼 부드러워 우아한 느낌마저 드는 맛이 특징이다.
▲ <사진 3>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Brunello di Montalcino)
몬탈치노를 떠나는 길에 와인샵에 들러 와인 2병을 사왔는데 좋은 날 먹으려고 아껴두는 중이다. 사온 와인은 모두 리제르바 급으로, ‘리지니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Lisini Brunello di Montalcino)’와 ‘안티노리 피안 델레 비네(Antinori Pian delle Vigne)’인데 둘 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와인이다.
▲ <사진 4> 필자가 구매한 안티노리 피안 델레 비네 (Antinori Pian delle Vigne)와
리지니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Lisini Brunello di Montalc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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