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의 정의를 인용하면, ‘양안관계(兩岸關係)’는 국공내전을 통해 통일한 중화인민공화국과 망명된 중화민국 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쉽게는 타이완 해협을 두고 서쪽인 대륙으로 표현되는 중국과 동쪽인 대만 해협을 사이로 마주 보는 관계라 합니다. 우리나라 남북관계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육지로 연결이 아닌,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기에 양안으로 표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만 뉴스에서는 크게 보도되진 않지만 여러 채널을 통해서 이러한 양안관계에 대한 뉴스를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남북의 평화모드와 달리, 특히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의 정부가 들어선 후 갈등을 담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곤 합니다.
7월 22일 자 자유시보(自由時報)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사를 다루었습니다.
출처 : http://news.ltn.com.tw
중국-중공동해함대소속 052C/052D [중화이지스구축함], 대형 함정과 대형 보급함 등 남하하여 대만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합니다. 남하의 원인으로 태풍의 북상에 따른 함정의 경로 이동의 상황이라고 보고 있으나, 일부는 태풍 핑계로 대만 해협을 통과하는 시위라는 관측도 있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7월 20일 자 연합신문(聯合新聞) 에서는 이렇게 다루었습니다.
출처 : https://udn.com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청년 단체 FETN(From Ethnos To Nation, 蠻番島嶼社, 만판다오위셔) 회원들이 타이베이 중정기념당의 장세스 동상에 빨간 페인트를 던져 훼손하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대만은 작년 12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법안으로 정의 촉진법이 입법원을 통과한 상태라고 합니다. 즉, 역사적 동상을 훼손시키는 것에 대한 부분을 행정원은 “대만의 과거 청산이 부족한 탓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권위주의 시대 상징물을 존치하는 것을 반성하고 잔재를 청산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실현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옹호하는 기사도 있습니다.
왜 대만의 경제기반을 갖추게 된 장제스에 대해, 그리고 그의 동상을 훼손시키면서까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지, 아래 사전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제스에게 대만은 꺼림칙한 땅이었다. 국공내전을 진행하던 1947년, 일본의 지배를 대신한 국민당 정부의 차별대우와 착취를 견디다 못한 대만 원주민(本省人)들이 들고 일어나자 이를 무자비한 유혈진압으로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약 3만 명이 살육당한 “2.28 사건”의 발포 명령자는 다름 아닌 장제스였음이 최근의 조사로 밝혀졌다. 2년쯤 뒤에 대만으로 건너온 장제스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정부 활동을 엄금하며(1960년까지 약 14만 명이 반정부 혐의로 투옥되었다), 국민당 외의 정당 활동을 금지하는 등 철권통치로 27년을 집권했다(국민 차원의 총통 선거는 실시되지 않았고, 장제스는 6년마다 국회에서 요식행위를 거쳐 재집권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대만 통치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본토에서는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사회개혁의 부재와 지도부의 심각한 부정부패로 대륙을 잃었다고 자책한 그는 1953년에 토지개혁을 실시해 민중의 생활 안정과 자연스러운 공업화 토대 마련을 달성했고, 세법을 개정해서 산업자본과 복지예산을 확보했습니다. 공교육 강화에도 힘을 쏟아,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 국민이 9년간 의무교육을 받는 체제를 일찌감치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부정부패를 엄히 단속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인척까지 가차 없이 처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만이 이후 순조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네 마리의 작은 용들”의 하나로 불리게 된 데는 장제스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출처 : 네이버 사전 ‘장제스(蔣介石)‘
그는 중국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대만에서는 공포와 자비를 실천할 수 있었고, 이는 대만의 경제 성장에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희생되어야 했던 부분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어쩌면 대만의 특정 단체는 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아픈 기억들을 지우고 싶어 할 수는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의 지리적 배경, 역사적 배경이 같을 수는 없지만, 다 같이 뜨거운 여름 안에서 좀 더 밝은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만은 같기를 바라면서.
WRITTEN BY 유민
강자에 대한 겸손은 의무, 동등한 사람에 대한 겸손은 예의, 약자에 대한 겸손은 숭고함이다. - 李小龍 / 겸손하게 대만문화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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