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전을 읽어야 할까?
Why Read the Classics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할까요? 세상에는 흥미로운 책들이 매일 수만 권씩 쏟아져 나오고, 신문과 잡지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안에도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이렇게 많은데 말입니다. 대체 인공지능도 줄기세포도 모르던 기원전의 사람들이 인간과 우주에 대해 이야기했던 책들을 지금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는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보통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랜 시간의 시험을 이겨낸 책이자 인류 지혜의 정수를 담고 있으므로 읽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고전을 말하는 수많은 책을 찾아보며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만, 이미 저보다 훨씬 전에 칼비노가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책에 정리를 잘 해두었으니, 오늘은 그의 도움을 좀 받을까 합니다.
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소설가인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무리 청소년기부터 폭넓게 책을 읽어왔다고 해도, 읽지 못한 중요한 작품들이 항상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요. 그리고 우리를 안심시킵니다. 아무리 대단한 작가나 철학가라고 해도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 생시몽의 저작을 모두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프랑스의 소설가인 미셸 뷔토르는 미국에서 강의하는 수년 동안, 사람들이 자신이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에밀 졸라에 대해 질문하는 통에 지쳐서 결국 「루공마카르 총서」를 다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떤 책을 아직 못 읽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어서 이탈로 칼비노는 1번부터 14번까지 번호를 붙여가며 고전을 정의합니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해볼게요.
✔ 고전이란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이다.
✔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 고전이란 이전에 행해졌던 해석의 그림자와 함께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며, 그것이 한 문화 혹은 여러 다른 문화들에(더 단순하게는 언어나 관습에) 남긴 과거의 흔적들을 우리의 눈앞으로 다시 끌어오는 책들이다.
어떤 고전이든 처음 읽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전에 그 책에 대해 생각했던 이미지와 비교해 보면서 새삼 놀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작품에 대한 이차 서적이나 주석본, 해설서를 가능한 피하고, 원전을 직접 읽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다른 책을 해설하는 그 어떤 책도 해당 원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 못합니다. 원전의 의미를 원전 자체보다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고 떠벌리는 매개물이 없을 때야 비로소 원전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래서 칼비노는 이어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 고전이란 그것을 둘러싼 비평 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평의 구름은 언제나 스스로 소멸한다.
✔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칼비노가 말하듯, 작품을 대할 때 아무런 불꽃도 일지 않는다면 독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의무감이나 무조건적인 경외의 관점에서 고전을 읽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그 작품이 좋아서 읽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작품을 좋아하든 아니든 일정한 양의 고전을 습득하도록 가르치는데, 그건 나중에 우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틀을 가르쳐 줄 뿐, 정작 자신만의 고전을 선택하는 일은 나중에 일어납니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읽는 그때에야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는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자신을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위계 속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칼비노는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읽을지를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뒤를 돌아보거나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자신을 스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하나의 지점이 존재하니까요. 그는 고전을 읽으면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동시대에 쏟아지는 글들을 적절한 분량만큼 섭취해가면서 읽을 것을 권합니다. 칼비노는 고전 작품에서 울리는 이야기를 음악처럼 들으면서, 현재에 관한 모든 것은 창밖의 자동차 소음으로 들으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그 반대로 행동하기 일쑤입니다. 지금의 소식은 쩌렁쩌렁한 텔레비전 소리처럼 듣고, 고전은 저 멀리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쯤으로 인식하지요. 그래서 칼비노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 정의를 덧붙입니다.
✔ 고전이란 현실을 다루는 모든 글을 배경소음(잡음)으로 물러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이 이 소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고전이란 배경소음처럼 존속해서 남는 작품이며, 이는 고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재에 대한 글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칼비노는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고전으로 채운 서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은 읽은 책들과 의미 있는 책들로, 나머지 반은 읽을 책과 의미 있을 책들로 채워야 한다고요. 또한, 우연한 발견과 경이를 선사할 책들을 위해 빈 책장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칼비노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고전이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고 말입니다.
칼비노의 말처럼 고전은 내 손으로 직접 선택해서 원전으로 음미하며 읽어야 ‘나만의 고전’이 됩니다. 누군가 서른에는 「맹자」를 읽어야 하고, 마흔에는 「논어」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건 그의 기준일 뿐이지요.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 마음에 들어와 나의 삶을 바꾸는 책은 따로 있지 않나요?
권해드리는 책은 이렇게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제안 정도로 받아주세요. 서양의 고전과 동양의 고전 중에서 원전 그대로 번역한 책들을 골랐습니다. 몇 장 읽다가 졸음이 쏟아져도 걱정하지 마세요. 원전들의 묵직한 두께는 나른한 오후의 목침으로도 제격이니까요. (^_^) 게다가 책장에 꽂아두는 장식용으로도 좋고, 들고 다니면 호신용으로도 좋습니다. (^0^) 원전과의 은근한 밀당,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데이트를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할 때
「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소연 옮김, 민음사
이탈로 칼비노는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다시피 저자는 이 책에서 고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독창적인 정의를 내립니다. 사실 그 부분은 거의 서문에 불과하고, 이 책에는 자신이 써왔던 서평이나 서문과 같은 에세이 36편이 실려 있습니다. 호메로스와 오비디우스, 스탕달, 톨스토이, 헨리 제임스, 찰스 디킨스 같은 작가들에 대한 독서기입니다. 고전은 아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칼비노의 생각으로 읽어내린 고전들이 궁금하다면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500년을 이어 내려온 서양 사상의 원류
「국가」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라는 유명한 말도 있지요. 그러니 플라톤의 저서 한 권쯤 권해봅니다. 플라톤의 저술이 2천 년 이상 살아남은 이유는 그의 심오한 사상이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에 맞는 유효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에 더해 극적인 상황의 설정, 흥미로운 묘사, 소크라테스의 인간미가 대화체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고대 그리스의 원전을 꾸준히 번역하시는 천병희 선생님의 원역판 「국가」를 추천합니다. 국가란 무엇인지, 정체(政體)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토론하면서 서양의 정치철학, 형이상학, 윤리학에 줄기차게 영향을 끼친 책을 원전으로 읽는, 혹은 소장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시공을 초월한 역사서이자 인간학의 교과서
「완역 사기 본기1」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알마
서양의 고전을 읽을 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따라간다면, 동양의 고전은 공자의 「논어」에서 시작해야겠지요. 하지만 논어는 원문을 워낙 많이 접해 보셨을 것 같아서 「사기」를 골랐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인간학의 교과서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사마천은 황제 무고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중국 3천 년 통사의 저술을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럽다는 궁형(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을 자청해 죽음을 면합니다. 이 사건은 아마도 역사서인 「사기」의 저술방향을 바꾸지 않았을까요. 사마천은 울분과 수치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담은 역사서를 집필했습니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으로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민음사에서 김원중 역자가 전편을 모두 번역해 두었어요. 열전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민음사에서 출판한 「사기 열전1, 2」를 읽어보시고요. 사마천과 사기만을 30년 가까이 연구해 온 김영수 역자는 현재 알마 출판사에서 사기 본기만 2권 번역한 상태입니다. 총 15권으로 나올 계획이라니, 지금부터 읽기 시작해 볼까요?
때로는 비극이 고통스러운 삶을 구원한다
「그리스 비극 걸작선」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무려 기원전 8세기에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가 지금까지도 영화로 만들어지고,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한 번도 책을 들춰보지 않았을지언정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문화의 힘이자 고전의 힘이겠지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사유한 세 명의 유명한 비극 작가가 있었고,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리스 비극은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7편, 소포클레스의 작품 7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19편으로 모두 33편입니다. 비극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희극과 대조된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당시의 비극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였어요.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메데이아」같은 작품이 유명하지요. 「그리스 비극 걸작선」에는 세 명의 비극 작가들의 작품이 2편씩 실려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작가별로 읽고 싶다면 현암사에서 출판한 「그리스 비극」이 총 3권으로 나와 있으니 살펴보세요. 저는 김상봉이 쓴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쓴이 배나영은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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