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 직장인 80% 해외여행 시대!
지구별 여행자의 마음가짐
그랜드 투어를 아시나요?
그랜드 투어(Grand Tour)는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생겨난 귀족 자제들의 유럽 여행을 말합니다. 유럽의 귀족 자제들은 사회에 나가기 전에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에 걸쳐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돌아보았지요. 그랜드투어의 목적지는 로마였고요. 이탈리아에서 파리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가던지, 또는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귀국했습니다. 그랜드 투어는 18세기의 유럽 각국의 귀족 계급이 수준 높은 문물을 익히게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심미안을, 프랑스에서 교양을 얻고 돌아온 귀족들은 여러 나라와 도시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 융성에 힘을 쏟았지요. 물론, 순기능 대신 역기능도 있었습니다. 낮에는 관광을 하고, 저녁엔 파티에 참석하고, 사치품을 쇼핑하며 흥청망청 돈을 쓰다 귀국한 귀족들은 이탈리아의 문화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에 따라 상대방의 수준을 평가하고, 이탈리아에서 사 온 고가의 예술품이 있어야만 상류층으로 인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점점 더 늘어나는 해외여행
우리는 일 년에 몇 번씩 여행을 떠납니다. 주말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는 건 기본이고, 주말과 휴가를 합쳐서 가까운 해외 여행지에 다녀오기도 하지요. 해외의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사람도 무척 많아졌습니다. 유럽의 귀족 자제들의 전유물이었던 여행과 관광이 20세기의 항공 산업 발달로 대중화된 덕분입니다.
해외여행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익스피디아에서 우리나라의 2050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0% 이상이 2017년 한 해 동안 1~2회 이상의 여행을 가겠다고 대답했고, 이들 중에서 80% 이상이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태국과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지역의 선호도가 54% 정도로 가장 높았습니다.
불안이 큰 사회, 휴식만이 목적인 여행?
숨 돌릴 틈 없는 직장생활, 매일 이어지는 야근, 경쟁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갑갑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늘 여행을 꿈꿉니다. 이렇게 일상의 고단함을 떨쳐 버리기 위해 여행을 가게 되니, 휴식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여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한국 사회가 가진 불안의 크기가 우리의 여행 형태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특히나,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는 여행에서 고려할 중요한 항목 1순위로 편안함을 꼽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영장이 있는 넓고 쾌적한 리조트에 머물면서, 여행사가 제공하는 차량으로 편안하게 이동하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여행지를 섭렵합니다. 게다가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유명한 관광지에는 꼭 들러 사진을 찍고,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점에 가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옵니다. 이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 후에 남은 것들도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 여행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면서도, 우리는 정작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고민 없이 여행한다면, 현대판 그랜드 투어의 역기능이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경험이 아닌 소비가 중심이 되는 여행이지요. 이번에 유명하다는 어느 리조트에서 묵었는데 역시 좋더라, 이번에 여기서 이걸 먹고 왔는데 역시 비싼 집에 가서 먹으니까 맛있더라,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길래 잔뜩 사오려고 했는데 캐리어에 넣을 데가 없어서 이거 밖에 못 사 왔어, 이런 식의 비슷비슷한 후일담으로 여행을 정리하게 되겠지요.
지구별 여행자의 바람직한 자세
한 명의 여행자가 남기는 쓰레기가 하루에 3.5kg이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려면 세 그루의 나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고급스러운 호텔에서도 보송보송한 침구를 갈아주기 위해 온종일 서서 시트를 다림질하는 노동이 존재합니다. 리조트에서 프라이빗 비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바닷가에서 매일 첨벙거리며 고기를 잡던 현지 아이들을 쫓아내야 하지요. 경제력이 약한 나라일수록 관광서비스업에 미치는 외국 거대기업의 자본 지배력이 강합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소비하는 그 많은 돈은 현지인들의 삶에 보탬이 되지 못해요. 알고 나면 여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수많은 진실을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요. 특히나 요즘처럼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여행 산업이 점점 거대해지는 상황이라면 말이지요.
나를 위한 여행, 우리를 위한 여행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아봅니다. 여행지에서 머무는 동안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 대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접할 수 있었는지, 여행지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마주할 기회가 있었는지, 여행지의 문화와 예술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존중했는지, 같은 곳을 여행하는 다른 여행자의 생각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여행지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공부해 보았는지 말입니다.
어떻게 소비해야 현지인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돌아가는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을지, 그동안 여행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으니, 남들 눈치 안 보고 쓸 것 쓰면서 편안한 여행을 하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착한 여행, 공정여행을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여행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해지고, 그동안 몰랐던 넓은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바로 그랜드 투어의 순기능이었지요. 지금껏 어떤 여행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공정 여행, 당신의 휴가는 정의로운가?」
패멀리 노위카 지음, 양진비 역, 이후
발리나 다낭, 몰디브나 방비엥에서 우리는 선크림을 바르고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에서 현지인의 시중을 받으며, 야시장에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그러나 정작 여행지의 현실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합니다. 여행 산업은 석유와 마약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2020년이면 해외 관광객이 16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여행지의 현지인들은 관광 수입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역경제를 살찌운다는 관광산업은 현지의 환경과 삶과 문화를 파괴하고, 현지인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땅까지 가로채는 폭력적인 개발 과정을 동반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아무 고민 없이 휴가를 즐기기만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동참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현지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책임감 있는 여행을 하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살펴봅니다.
「착한 성장 여행」
박선아 지음, 낭만판다
지은이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합니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작은 도시와 오지 마을을 찾고, 현지인과 마주할 수 있는 대중교통과 민박, 게스트 하우스를 즐겨 이용하지요. 현지인들과 마음을 나누고, 서로 소통합니다. 방문하는 지역의 문화와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여행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착한 여행을 지속합니다. 가급적이면 여행지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고, 그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먹거리를 사 먹고, 재래시장에서 특산품을 구매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나 음식점을 이용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공정 여행이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이렇게 여행을 한다면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 여행 이후의 일상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2」
이케다 가요코 엮음, 한성례 역, 국일출판사
익숙한 제목이지요? 한참 이메일로 돌아다니던 내용입니다. 원래는 환경학자 도넬라 메도스 박사가 쓴 글에서 유래되었어요. 도넬라 메도스 박사는 1990년에 세계의 인구를 1000으로 가정하여 성별과 나이, 종교, 식량과 부, 에너지와 물 배분 등의 문제를 정리해서 <마을의 현황 보고 : 세계가 만일 10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지요. 이 짤막한 보고서는 전 세계의 네티즌과 이메일을 통해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저자가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으로 정리했어요. 1권에서는 마을 인구를 100명으로 정리하면서 소수의 데이터가 사라졌지만, 2권에서는 다시 1,000명을 기준으로 한 원래 보고서에 충실한 데이터를 보여줍니다. 데이터를 뒷받침하는 관련 글들도 풍성합니다. 10년도 더 된 책이어서 현재는 수치가 달라졌겠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결코 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역, 갈라파고스
저 멀리 아프리카의 소말리아나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 같은 생소한 나라를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필리핀의 세부나 보라카이에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다녀오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유적을 둘러봅니다. 필리핀 마닐라에도 도시의 부자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 산인 ‘스모키 마운틴’을 뒤지는 굶주린 아이들이 있고,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Siem Reap)에도 1달러를 구걸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한데 말입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 풍족한데,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쟁으로 구호 조치는 무색해지고, 소는 배불리 먹는데 사람은 굶고 있지요. 이 책은 국가 간의 정치, 경제적 관계가 어떻게 가난한 나라의 굶주림을 야기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지난 2007년 출간된 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이 책은 2016년에 개정판을 내며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휴양지로 포장된 특정 지역에서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서로 얽혀 있는 전 지구적인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웁니다.
글쓴이 배나영은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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