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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요리와 친해지기

[와인과 친해지기] 와인 보관 방법

by 앰코인스토리 - 2016. 10. 27.


[와인과 친해지기] 와인 보관 방법


몇 년 전, 직장 선배에게서 와인 감별을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선물 받은 와인인데 귀한 와인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라벨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였다. 사진을 확인하니 처음 보는 와인이었고 빈티지가 10년 이상 지난 보르도 와인이었다. “선배님, 이 와인 어떻게 보관하셨어요?” 라고 물어보니 몇 년 동안 진열장에 세워져 있던 와인이라고 하였다. “와인은 오래 묵혀야 맛있어진다던데 이거 먹어도 되는지 몰라.” 라고 얼버무리는 말에  “아, 가능하면 빨리 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식초가 되었어도 실망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답을 해드렸다.

와인 보관에 대한 지식이 조금 더 있었어도 좋은 자리에서 여러 사람을 더 기쁘게 했을 와인인데 보관 방법이 잘못되어 세상 구경도 못 해보고 답답한 병 속에서 팍 늙어버렸을 그 와인을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프랑스에서 배를 타고 한국까지 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와인을 흔히 ‘살아있는 음료’라고 한다. 이것은 와인이 병 속에서 숨을 쉬면서 숙성되는 과정을 잘 거치면 더욱 훌륭한 와인으로 거듭나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쉽게 변하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을 것이다. 살아있는 음료인 와인 보관의 특성을 알아보고 와인을 어떻게 보관하면 좋을 것인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다.



와인의 보관 기간은 포도의 특성과 양조 방법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보졸레 누보처럼 병입 후 바로 먹어야 좋은 와인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처럼 오래 묵혀야 더 좋아지는 와인이 있다. 참고로, 가벼운 레드와인이나 화이트와인은 2~4년, 구조감이 좋거나 타닌이 강한 레드와인은 5~10년, 잘 만들어진 위대한 레드와인은 10~50년 동안이 시음 적기라고 한다.

물론, 최적의 상태에서 보관하였을 때 해당하는 얘기다. 집에 와인셀러(와인 전용 냉장고)가 있다면 보관에 대한 걱정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와인 보관의 특성을 조금만 알고 있어도 보관 실패로 인한 낭패를 줄일 수 있다. 와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빛, 온도, 습도, 진동이다.


: 빛은 와인에 해롭다고 한다. 특히 직사광선이 드는 창가나 베란다에 오랜 기간 와인을 둘 경우에는 와인에 산화가 일어나 맛이 꺾이고 색은 옅어진다. 와인샵을 가서 보면 햇빛이 드는 창가 쪽에 진열된 와인이 있는데 병에 먼지가 쌓여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겠다.

온도 : 와인 보관에 가장 적정한 온도는 12도에서 14도 사이라고 한다. 와인을 너무 차갑게 보관해도 숙성에 방해가 되고, 너무 높아도 와인을 빨리 숙성시킨다. 와인을 오래 보관하고자 한다면 적정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온도가 너무 높게 되면 와인이 끓을 수도 있으므로 여름철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잦은 온도 변화도 와인에게는 치명적이다.

습도 : 건조하면 코르크가 말라 그 틈으로 공기가 비집고 들어와 쉽게 산화가 일어나므로 건조한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습도가 무조건 높아서도 안 된다. 높은 습도에서는 라벨에 곰팡이가 피고, 코르크에도 곰팡이가 생겨 와인이 변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 습도는 75% 정도다.

진동 : 와인은 진동에도 민감하다. 잠을 자야 하는데 계속 몸이 떨리면 푹 자지 못하는 것처럼 와인도 편히 쉬어야 잘 숙성될 수 있다. 일반 냉장고에 장기간 와인 보관을 권하지 않는 이유도 냉장고 모터의 진동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어떻게 와인을 보관하는 것이 좋을까? 사계절이 뚜렷하고 주로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우리나라는 와인을 보관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여름은 덥고 겨울에도 따뜻하게 난방을 하여 와인이 쉽게 손상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와인 전용 냉장고가 최고의 선택이겠지만 와인셀러가 없는 때 가장 쉽게 보관 가능한 곳이 바로 냉장고나 김치 냉장고다. 3개월 정도 보관할 와인은 냉장고 냉장실에 두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화이트와인은 꺼내서 바로 마시고, 레드와인은 여름철에는 꺼낸 지 30분 정도 후에, 겨울이라 집이 좀 차가운 경우에는 2시간 정도 있다가 마시면 좋겠다. 하지만 3개월 이상 보관이 필요하다면 냉장고보다는 온도의 변화가 크지 않고 조금 따뜻하지만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곳을 찾는 것이 좋다.



필자는 와인을 신문지에 싸서 현관에 있는 신발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거나, 싱크대 아래 난방 선이 지나가지 않는 차가운 곳에 와인을 보관하였다. 이런 곳들은 여름이나 겨울에도 온도 변화가 심하지 않고 빛도 들어오지 않으며 진동도 없어서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다만 습도 조절이 어려우므로 와인은 반드시 눕혀서 코르크가 건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와인을 몇 년 동안 보관하기는 힘들다. 온도가 평균적으로 높아서 아주 강건한 와인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쉽게 노화가 진행된다.

필자가 처음 와인을 알았을 때 착한 가격에 샀던 첫사랑 와인, 2005년 빈티지 샤또 딸보. 약 5년 동안 필자만의 비밀공간(?)에 모셔두다가 필리핀으로 오기 전에 모임에 가지고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실망이 컸다. 좋은 빈티지였고 그랑크뤼 등급이라 험하게 보관했어도 살아있을 줄 알았는데 그 모습은 이미 꺾일 대로 꺾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집안에 방치된 와인이 있다면 필자처럼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재빨리 적절한 조처를 하시기를 권한다. 좋은 와인을 만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좋은 와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WRITTEN BY 정형근

우연히 만난 프랑스 그랑크뤼 와인 한 잔으로 와인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주위에 와인 애호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사보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으며, ‘와인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와인을 신중히 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