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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밥상머리와 무릎교육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식사문화는 낯부끄러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떠들거나 어지럽게 뛰어다녀도 나무라는 부모를 찾아보기 드물다. 간혹 누군가 아이를 제지하기라도 하면 부모가 나서 아이 편을 들기 일쑤다. 부모는 ‘내 아이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녀의 식당활보를 방치하고, 종업원은 손님을 자극하면 매상이 떨어질까 봐 못 본 척한다. 그 사이에 아이는 점점 더 무례해지고 거칠어져 가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예절 중에서도 식사예절을 중시했다. ‘밥상머리교육’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나의 삶 깊숙이 식사예절이 자리 잡고 있다. 식사마다 할아버지와 맏손자인 내가 겸상을 했으며, 나머지 식구들이 둥근 상에 둘러앉고 머슴은 윗목에 자리 잡았다. 어머니는 부족한 밥이나 찬을 챙기고 숭늉을 준비하기 위하여 보통은 부엌에서 홀로 식사를 하셨다.

수저는 할아버지가 들기 전에 들어선 안 되고, 밥알과 국을 흘려서도 안 되지만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야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식사 중에는 말을 삼가고 반찬은 투정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 했으며 간혹 올라오는 조기 같이 귀한 것은 어른이 주기 전에는 넘보아서는 안 되었다.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친 사람이 숭늉을 배달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이중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기는 날에는 “버르장머리 없는 상놈!”이라고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른에 대한 공경과 자녀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게 된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경쟁적인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과 횟수가 줄어들고 특히 식사를 함께할 여유가 줄어든 것이 사회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밥상머리교육을 중시했던 우리가 한국에 온 외국인들 입에서 “저렇게 공공예절이 없는 아이를 내버려두는 한국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닐까.

주로 외할머니와 식사를 같이 하는 여섯 살 손자는 밥상머리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식사한다고 상을 펴면 행주로 골고루 훔치고 수저를 사람 수에 맞추어 가지런히 놓고는 자기자리를 물어서 식사하기를 기다린다. 먼저 먹으면 물을 마시고 소리 없이 일어나서 소파로 간다.


밥상머리교육 못지않게 중요시했던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들려줬던 ‘무릎교육’이다. 우리 형제들은 잠들기 전에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옛날이야기’를 할머니한테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할아버지로부터는 ‘마당에 늘어놓은 벼가 비에 떠내려가도 공부에만 전념하여 급제했다’는 선비의 이야기를 배웠다. 나는 손자 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훗날 이들에게 전해 줄 이야깃감으로 「이솝우화」와 「어린왕자」, 「노란 손수건」과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같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들을 소중하게 보관해 왔으나, 이제 이 물건들이 소용이 없게 된 것이 못내 서운하다. 핵가족화로 손자 손녀와 떨어져 산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어린이집이나 TV와 전자기기가 더 재미있고 실제처럼 학습시키고 있기에 내가 담당할 분야가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나는 ‘밥상머리와 무릎교육’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회상하곤 하는데, 내 손자손녀는 먼 훗날 이 할아버지를 어떤 사연으로 기억해 줄 것인가.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