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버킷리스트의 1순위는 아프리카의 사파리고, 다음은 러시아였다. 사파리는 이리저리 저울질하다가 시기를 놓쳤음을 깨닫고 에버랜드를 찾은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러시아는 반공방첩이 국시이던 초등시절에 동토의 나라로 각인되었다. 많이 변했다지만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 동행을 찾던 중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초등학교 동기와 안부 전화 중에 동참을 허용받았다. 러시아 일주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발트 3국을 포함하느냐로 고심하다가 4개국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사전지식이 없다시피 한 발트 3국은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그리고 아토피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청정국가였다. 구소련의 위성국가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유럽연합체다. 3개국을 합해야 한반도의 2/3 면적에다 인구는 겨우 630만, 복지혜택이 우리보다 좋다지만 매년 10만 정도가 북유럽 등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도로 양쪽으로 자작나무와 적송으로 숲을 이룬 침엽수는 내려갈수록 활엽수로 바뀌는 것 외에는 어디나 김제 평야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18m라 지평선만 보일 뿐이다. 러시아에서는 둑마다 민들레가 군락을 이루더니 아래쪽으로는 끝 간데없는 유채꽃이 봄이 왔음을 알렸다. 여행 동안 맑은 공기에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15~25도를 넘나드는 날씨로 반소매를 입은 날은 소름이 돋았지만, 현지인은 반소매 차림이 많았고 간혹 핫팬츠의 아가씨가 눈길을 잡았다.



뉴스라고는 일 년에 한 손에 셀 듯 그날이 그날인 나라들이라 특이하게 볼 것도 즐길 것도 없었지만,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자작나무 숲과 늪지대(어린 시절, ‘늪에 빠지면 서서히 사라져서 며칠 뒤에 시체가 되어 강으로 빠져나온다’고 겁을 주던 어른들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2천여 평의 야산에 10만 개 이상의 십자가들로 뒤덮인 언덕이 경이로웠고,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목각공원은 한 노인의 예술적 안목이 탁월함을 증명했다. 화장실의 샤워기 사용법이나 현관문을 여닫는 불편함으로 몇 번의 소동이 일어났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다가 개에게 물려서 병원을 찾아 응급처치를 받았다. 노인들이 깜박하는 탓으로 휴대전화 충전기를 가이드가 긴급 수배를 하고 고가의 짐을 놓고 나와서 이틀 만에 찾은 해프닝도 여행의 묘미를 돋우었다.



마지막 밤은 해변의 국경지대에서 보냈다. 수십 리에 펼쳐진 보드라운 모래사장이 탐이 났고, 수심이 얕은 데다 염도까지 낮아 짜지 않고 잔파도가 자주 몰려와서 형성된 좁은 간격의 모래층이 신기했다. 백야의 시작이라 10시에 지는 일몰을 사진기로 담느라 두어 시간을 해변에 머물렀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갈대와 모래층을 배경으로 한 붉은빛으로 수놓은 저녁노을을 담은 사진이 신비롭다. 러시아는 달랐다. 하늘과 공기는 우리의 일상과 비슷했고, 푸틴의 취임식을 치른 직후인 탓인지 거리는 활기에 차 있었다.


런던과 파리에 비견해도 될 법한 고대의 바로크, 로코코, 고딕식의 성당과 대형건물들이 상트페트로 부르크의 중심가를 점령하고 있어서 악소 국가에서 자란 우리들의 기를 죽여 놓았다. 여름궁전과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은 베르사유궁전과 런던박물관을 다시 한번 보는 착각을 가져왔다. 특히나 포트로 대제의 여름궁전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한 ‘페테르 드보레츠’는 1000헥트라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에다가 7개의 작은 정원에 설치된 144개의 분수가 여러 형태로 물을 뿜어내고 있어서, 가이드가 옆에 와서 모두가 기다린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아쉽게 자리를 떴다. 러시아가 초행인 발트 출신 기사와 경험이 일천한 가이드와의 의견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현지 가이드를 찾는다고 두 시간 반을 헤맸다. 이 바람에 현지 책임자가 나와서 사과하고 운하 유람이 취소되어 50유로를 반환받는 소동이 벌어진 게 이번 여행의 옥의 티였다.



동심으로 돌아가서 친구와 나눈 수많은 이야기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리라. 고맙다. 친구야!



글 / 사외독자 이성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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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꽃들의 속삭임


꽃들에게 가까이 다가서 보아요

두런두런 수런수런 속삭임이 들리네요

해야 고마워

노랑 보라 빨강 예쁜 색 만들어 주어서

바람아 고마워

내 향기 멀리멀리 실어다 주어서

비야 고마워

내 몸과 맘 깨끗이 씻겨 주어서


꽃들이 서로 볼을 맞대며 방글방글 웃음 짓네요



글과 사진 / K4 고객만족2팀 박춘남 사원

촬영지 / 광주 과학 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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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장인어른을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고 올라오는 길에 자동차를 타고서 ○○정부종합청사를 휘둘러보았다. 청사는 완공되었다지만, 주변에는 띄엄띄엄 공사 중인 건물들이 대다수라 삭막했다. 주말부부로 이곳에 살던 아들은 구내식당 말고는 밥 한 끼 먹기도 어렵고 병원, 의원이나 슈퍼를 가려고 해도 차를 가져가야 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지난 어린이날에 ○○시로 이사한 아들이 집들이를 한다고 하여 사위가 운전대를 잡았다. 특별한 날인지라 내비게이션이 원하는 대로 운전을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꼬박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엉덩이가 아프고 화장실이 그리운데도 휴게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과천에서 공무원을 상대로 한식집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음식점은 반찬 수도 많고 맛깔스럽다.

아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고층 아파트 숲 사이로 빈 곳도 보이지 않고, 대도시를 목표로 기반 시설도 갖추고 생활 밀착형 점포도 들어서서 더는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아파트는 청사까지 걸어서도 10여 분 거리고, 3년 된 새집이었다. 전에 살던 30년이 넘은 아파트에 비하면 따뜻하고 수납공간도 많고 베란다를 확장해서 훨씬 넓게 보였다.

더구나 손자가 3학년으로 전학한 학교가 3분 거리고, 창문으로 보면 학교 가는 모습도 다 볼 수 있어 안심이다. 매입한 줄로 알았는데 2년 계약한 전세라는 것이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긴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손자가 “나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어요. 2학기에는 꼭 반장을 할 거예요.” “오빠, 꼴등은 누구야?” “….” “오빠구나!” 발로 동생을 걷어차면서 전쟁의 시작이다.

나와 아들과는 달리 모든 일에 열성적인 손자가 대견스럽다. 지난 학교에서는 1~2학년 때 축구대표팀에 합류했고 전교생 앞에서 둘이서 하는 줄넘기에도 손을 번쩍 들어 참여했다. “아는 친구도 하나 없는데 떨어진 게 당연하지. ○○은 착하고 똑똑해서 친구도 많이 사귈 것이고 공부도 잘할 것이니 2학기에는 원하는 대로 될 거야.”

전세로 얻은 이유는 예상대로 손자 손녀의 교육문제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지방으로 이주하기로 하고 회사를 옮긴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식들의 교육문제로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고 아내가 동조해서 좋은 조건도 마다하고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과거가 불현듯 떠오른다. “너희가 심사숙고해서 현명한 대책을 세우리라 생각한다.”

다과를 마치고 차로 5분 거리에 있다는 호수공원을 찾았다. 다음 주에 고양에서 열리는 꽃 축제를 해외여행 때문에 못 가게 된 것이 아쉬웠는데, 기분 전환이 된 셈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 인공호수로 어린이날을 맞아 수많은 볼거리와 놀 거리로 시끌벅적하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손자 손녀는 바이킹을 타겠다고 사라지고 우리는 구름다리를 오가면서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늘로 오르는 바이킹을 타고 온 손녀는 “오빠는 15단계인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나는 10단계까지 올라갔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그런다. 저녁으로 좋아하는 추어탕을 먹고 올라오는 길이 너무나 상쾌하다.


글 / 사외독자 이수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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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다가오면 기대하는 선물이 한 가지 있었다. 혹은 서울에서 누군가 온다고 전화를 받고 나면 내심 설레었던 때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친지나 지인의 얼굴이 반가운 것도 있었지만, 사실 더 기다렸던 것은 그분들 손에 쥐어진 선물이었다. 약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성향을 맞춘다고 비싼 술을 들고 들어오면 우리 형제들은 눈썹을 아래로 깔고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고,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쌓인 네모난 상자를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했다. 손뼉을 치며 환호를 했다.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선물, ‘종합선물세트’였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마법 램프가 부럽지 않았다. 껌, 사탕, 비스킷, 캐러멜, 초콜릿, 스낵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게 총 망라되어 있었다. 꼬마였던 우리는 기쁨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네모난 상자 안에 각가지 먹을거리가 가득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분배의 시간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종합선물세트를 가지고 한바탕 싸웠던 기억이 있었기에, 손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엄마가 심판으로 나서곤 하셨다. 네 명을 모두 불러모았다. 둥그렇게 앉게 하고는 종합선물세트를 가운데 두고 분배를 시작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공정히 하려고 엄마는 참 많이 노력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초콜릿을 꺼내셨다. 모두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나만 조금 주는 건 아니실까? 내가 형인데 나한테 조금 더 주겠지? 서로 자신 멋대로 상상하면서 나한테 조금 많은 몫의 초콜릿이 나누어지길 바랐을 것이리라.

엄마는 현명하셨다. 자식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라는 것에 겉표지를 뜯고 초콜릿을 둘러싼 속표지도 뜯은 후 조각조각 자르셨다.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뭘 하시려고 저러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개수로 나누어 주기 시작하셨다. 불평의 말이 나올 수 없었다. “손에 오래 두면 초콜릿 녹는다. 봉지에 넣어둬!”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사탕도 캐러멜도 커다란 봉투를 뜯어서 모두 같은 개수로 나눠주셨다. 종합선물세트에 가득 찼던 먹거리가 거의 바닥을 보이자,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봉투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종류별로 풍성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과자를 잡고는 한마디를 하셨다. “이건 엄마 거다.” 우리에게 크게 인기 없는 과자였기에 우리 네 명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팽팽했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누구 하나 불만이 없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었다.

명절이면 가게마다 명절 대목을 보기 위해 종합선물세트를 어른 키 높이까지 쌓아 올렸던 풍경이 기억난다. 그때는 종합선물세트가 참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그 종합선물세트가 다른 품목으로 바뀌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참치나 기름 세트는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값비싼 선물세트를 가지고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은 설렘은 일지 않는다. 이게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는 것일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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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포항 호미곶 일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장인어른 칠순 기념 여행의 시작을

포항 호미곶에서의 일출 감상으로 멋지게 시작하며.


촬영지 / 포항 호미곶 해맞이 광장

글과 사진 / K4 제조3팀 정민성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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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가 이 나이가 되었지만, 오늘도 그러다가 10분 늦게 63빌딩의 프런트에 도착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승강기 앞에서 중견 탤런트 임○○ 씨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80대 부부를 에스코트하여 57층으로 오르던 그분은 깔끔하게 생긴 외모답게 친절하게도 58층을 눌러주고 축하 인사도 해주었다.

사돈과 인사를 나누기도 바쁘게 사회자는 잃어버린 10분을 되찾으려는 듯 단상의 의자로 몰아세웠다. 우리 앞으로는 회갑연이나 돌잔치에서 익히 보아왔던 과일과 케이크 등 장식품이 사진발을 좋게 받도록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머리와 옷매무새를 챙길 시간도 없이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소리는 요란하고, 난생처음으로 권총처럼 생긴 것으로 불을 붙이고 끄느라 여러 번을 반복했다. 축하 노래를 듣고 자식들의 삼 배도 받았다.

손주 차례가 되니 그새 지루했던지 머리를 숙이고 몸을 꼬면서 “절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며 며느리 주위를 맴돈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한 번의 절을 받았다. 사회자가 말하는 삼 배는 ‘일 배는 낳아주어서 고맙다는 뜻이고, 이 배는 키워주신 데 대한 보답이며, 마지막은 효도하며 모시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절한 후에 받은 축하인사 답례로 아들 부부에게는 “100살이 아니라 120살까지는 사시라고 해야지.”하고, 딸 부부에게는 “손주 하나 안겨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가끔 아내에게 “오늘 밤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는데, 120살이라니.” 앞으로 두고두고 책잡힐 생각을 하니 후회막급이다.

올 초에 며느리가 “아버님, 칠순 준비를 어떻게 할까요?” 묻기에 “여행 경비는 한 푼도 안 받을 것이니 잔치는 30명을 생각하고 호텔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100시대라고 해서 그런지 칠순 잔치를 하는 분들이 적어서 사돈 부부만 초청한 조촐한 행사가 되었으나, 태생이 음주와 가무에는 끼도 흥도 없는 몸이라 나쁘지는 않다. 아들은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피곤한 몸이라 행사를 준비하기에는 무리고, 며느리도 직장과 애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도 명소를 골랐으니 고맙고 사랑스럽다. 사돈께서 “칠순을 축하하며, 건강과 장수를 위하여!”를 외치면서 와인 잔을 부딪치며 중식을 시작했다. 주식으로는 스테이크와 바닷가재가 나왔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 연회를 즐기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비친 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손자손녀와 태권도 겨루기를 끝으로 추억으로 남을 한 페이지를 접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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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주머니 안에서 백 원짜리들이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고 있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듯 울리는 소리는 꽤 상쾌하다. 지금은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동전이지만, 주머니 가득 100원, 500원짜리가 있으면 행복감이 절로 생길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100원짜리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버스를 한번 타려고 해도 100원짜리 가지고는 엄두를 낼 수 없고,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를 집으려 해도 100원짜리 한 주먹 가득 계산대 점원에서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100원짜리도 한때 참 귀하신 몸일 때가 있었다. 1원, 5원짜리 동전이 있을 때는 더더욱 큰 형님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어린 꼬마들에게 100원짜리 서너 개면 종일 오락실에서 진을 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심부름을 하고 받은 몇 개의 100원짜리는 문방구에 가면 많은 것을 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야 할지 사방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면, 조바심 난 문방구 주인아주머니는 “요즈음 인기 있는 로봇이다.” 은근슬쩍 들이밀었고 그 짧은 순간 갈등과 고민이 반복되었다. ‘과연 뭘 사지?’ 미적거리는 것이 미안해서 더 미루지 못하고 주인아주머니가 골라준 장난감을 집고 나서 100원짜리 몇 개를 건넬 때면 끝없이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내 돈 100원짜리….’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학년이 올라가면 엄마는 우리 사 남매에게 연초에 선물을 주셨다. 빨간색 돼지저금통. 큰 돼지저금통은 꽉 채우는 게 지루할 수 있다는 소신이 있으신 엄마 덕분에 중간 크기의 돼지저금통을 선물로 받곤 했다. 가장 먼저 돼지저금통을 꽉 채운 사람에게는 100원짜리 몇 개의 보너스도 있을 것이라 하셨다. 지폐가 귀했던 때라 대부분이 100원짜리 동전이 주를 이루었다. 처음 100원짜리가 돼지저금통 바닥에 떨어지면 참 큰소리를 냈다. “땡그랑! 땡그랑!”

언제 저 넓고 깊은 저금통 안을 꽉 채우지!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명절 때 받은 용돈을 넣고, 심부름으로 받은 100원짜리 넣고, 참고서 사고 남은 동전을 넣다 보니 돼지저금통도 점점 배가 불러 올랐다. 돼지저금통을 반 정도 채우고 나서는 흔들어 보면서 참 기뻤던 때도 있었다. 동생 몰래 동생 돼지저금통을 보며 어느 정도 채워졌나? 눈대중을 해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쯤 가득 찬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르게 되었을 때 벅차오르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동전들을 보며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참 열심히 노력했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사 남매의 가득 쌓인 동전들을 보면서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셨던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선하다.

이제는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편의점에서도 남은 동전은 포인트로 적립되고, 모바일 페이가 일상화되면서 동전을 딱히 지니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면 뭔가 쥘 수 없는 허전함은 남아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땡그랑 울리던 그 동전들의 소리는 자꾸만 그리워진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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