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도착한 월간지를 펼치고서 채 가시지 않은 잉크와 종이 냄새를 맡는다. 향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기 말이 되면 다음 학기에 배울 책들이 교실 앞에 수북이 쌓이고, 우리들은 선생님의 호명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린다. 찢어지거나 끈으로 묶은 자욱이 있는 책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차례가 되어 국어, 셈본, 자연 등의 책을 들고 오면서 맡아보던 그 냄새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새 책만 보면 코를 들이민다. 어느 종이나 나름의 냄새를 보유하고 있지만, 새하얀 모조지에서 풍기는 것이 좀 더 진하고 오래 지속되어 미술책이 단연 인기 1위였다. 그런 연유로 고교 때까지 매년 적어내는 취미란의 단골이 독서였다.

요즘의 학생들이야 독서가 취미 축에나 드느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 시골 어린이에겐 자치기, 구멍에 돌 넣기, 술래잡기, 강 건너기, 땅따먹기 등을 제외하고는 놀이라고는 없었으니 고상한 게 독서였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떠돌이 책 장사의 「플루타아크 영웅전」을 돈이 부족하여 그냥 보냈다가 뒤늦게 시내를 다 뒤져서 구매한 적도 있다.

대학 때는 그 시절에 유행하던 전집류-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 사상전집, 수필전집 등-를 고가에 구매하고 탐독했다. 무장공비 습격사건으로 연장된 군 생활 34개월 18일은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세대가 다 그랬듯 토요일도 없다시피 한 30여 년의 직장생활 기간엔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직장을 나와서 무위도식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무료정보지에서 ‘도서 교환전’을 알리는 정보를 보게 되어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작년에도 집에서 잠자고 있는 중고서적을 가져가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70여 권의 새 책으로 교환하였다.

정보를 접하는 순간부터 어느 책과 교우하게 될까 상상하다가 전시장에 펼쳐놓은 책들이 모두 내 것인 것 같아 흥분에 휩싸인다. 교환한 책은 대다수가 신간이지만 헌책은 클리너로 닦고 지우개로 지우고 풀로 붙여서 새롭게 단장을 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을 서고에 드나들면서 포만감에 행복해한다.

실업자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독서가 최고임을 강조하고 싶다.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매일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책이란 가까이할수록 남는 게 있기 마련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독서 10년에 사보나 문예지에 실린 글들은 모아서 2권의 수필집도 냈다. 아직도 참고할 만한 어휘가 머리에 담겨서, 제목은 불문하고 1시간을 주면서 원고지 10매 분량의 수필을 지어내라고 하면 읽을 만한 글을 내놓을 자신도 생겼다. 또 하나의 보람은 보관해 왔던 500여 권 중에서 아들과 딸, 조카 2명에게 그들의 개성에 맞을 것 같은 책을 골라서 선물했다. 나머지는 봉사단체에서 비치해둔 전철역 서고와 두 곳의 동사무소가 운영하는 문고에 150여 권의 책을 알게 모르게 기증하니 표창장이 덤으로 따라왔다.

시력이 허락하는 한, 책을 가까이하면서 꾸준하게 글도 써서 기고하고, 보고 난 것은 여러 곳에 기증하련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과지만, 독서를 취미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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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가족이 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손자는 얼마나 더 컸을까? 손녀는 많이 자랐을까?’라고 상상하면서 마음이 설렌다. 아내의 칠순과 나의 생일이 한여름이어서 올해도 일찍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아내가 고생을 하니,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모른 채로 집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방으로 이주하고 오랜만이라 1박2일을 보낸다고 하니 고맙지만,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다는 손자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은근히 걱정이 뒤따른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여덟 명이 합창으로 생일 노래를 불렀다. 이쯤이면 손자손녀가 서로 먼저 촛불을 끄겠다고 다투곤 했는데, 며느리에게 사전 교육을 받았는지 뒤로 물러앉으면서 아내에게 양보하는 것이 기특하다. 며느리가 동영상을 찍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한마디 한다고 했더니 의아한 눈치들이다.

“까다로운 나를 만나서 고생 많았소. 앞으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니 자네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갑시다. 사랑해.”하고는 ‘뽀뽀해야지.’하면서 얼굴을 돌리는데, 어느새 아내는 손사래를 치면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실패는 했지만, 소파 밑에 숨겨둔 봉투를 내밀었다. (그들이 떠난 다음 날, 아내가 내민 봉투에는 딸 부부가 손으로 적은 애모사가 적혀있었다. 3년 전 내 칠순 때와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나이 들어 무디어진 우리 부부의 가슴을 뭉클하고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뒤로는 손자의 간청에 의한 각종 놀이가 이어졌다.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오목두기에다 바둑 두기와 바둑알 내치기가 추가되었다. 손자를 상대하기엔 버거워서 모두가 곧 지쳐버리지만, 사위는 옆에서 보기에도 재미있게 게임을 한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게임은 정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사위의 이론인데, 노파심으로 보면 낯선 풍경이지만 이게 오래가는 비결이다. 거기다가 어느 게임이나 이기고 지는 비율이 비슷한 게 신기하다.

손자가 다른 게임을 원하는 눈치인 것 같아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할아버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동영상이 있는데 같이 볼까?” ‘상트페트로부르크와 발트 3국’에서 아마추어 사진사인 친구가 세 대의 사진기로 번갈아 찍어서 1시간 12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보내왔다. 장면에 맡게 글도 넣고 적절한 배경음악도 깔아서 여러 번을 보아도 재미가 있었지만, 손자가 보기에는 지루하리란 생각은 했다. 3분쯤 보더니 “심심해!”를 연발해서 필름을 빨리 돌려서 ‘아비와 아들‘이 벌거벗고 나오는 동상 장면을 보여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야하잖아.’하면서 자리를 뜬다. 따라쟁이인 손녀가 같이 가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다.

큰방에서 몇 번이나 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에는 '아주 큰 소리구나.'하는데 손녀가 눈물을 닦으며 달려 나온다. “왜 동생 쪽으로 공을 차서 울리냐.”며 아들이 방으로 향하는데, 손녀가 양팔을 벌리며 앞을 막는다. 울먹이면서 “오빠가 잘못한 게 아니란 말이야. 장롱이 잘못해서 맞았거든. 어린이를 봐주어야지.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그게 헷갈린다.’


평소처럼 9시가 조금 넘어서 방에 들어가니 장롱에 ‘장농이 잘못해서’라고 삐뚤삐뚤하게 쓴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있다. 침대에 누워있는 10여 분 동안, 손자손녀의 티 없고 해말간 웃음보따리가 연거푸 터진다. ‘내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시나브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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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를 내놓기 위해 밖으로 나섰는데, 때마침 옆집에 사는 동생과 마주쳤다. 동생은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하는데 퇴근하면서 나와 마주친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동생은 나를 불렀다. “형님, 옥수수를 시장에서 샀는데요. 맛이 좋아서 몇 개 더 샀습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하며 옥수수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갓 지어낸 옥수수인 양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잘 먹을게. 다음에 술 한잔 살게. 시간 좀 내.” “알겠습니다.”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들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출출해진 터에 좋은 간식거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봉지를 뜯어 보니, 안에는 옥수수 2개가 들어있었다. 옥수수 2개를 한 묶음으로 파는 곳에서 산 모양이다. 하나는 내가 먹고, 또 다른 하나는 TV를 열심히 보고 계신 어머니께 나누어 드렸다. 오랜만에 보는 노란 옥수수에 어머니도 기쁜 표정을 지으셨다.

문득, 옥수수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한 손에 옥수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컴퓨터 속에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원산지는 남미, 페루, 멕시코 등으로 되어있었다. 참 낯설었다. 옥수수 원산지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남미라는 말에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4월 하순에서 5월 파종을 해서, 7월 중순에서 8월경 수확이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이 목장을 했을 때 4~5월에는 참 바빴다. 우리만큼이나 소들도 옥수수를 참 좋아했기 때문이다. 주식은 사료였지만, 옥수수는 부사료로서 한몫을 톡톡히 했다. 물론 사람은 옥수수를 키워서 알맹이를, 소들은 야들야들한 줄기와 잎사귀를 먹는다. 그렇다 보니 참 많은 옥수수를 심을 수밖에 없었다. 잘 고른 밭 위로 옥수수 싹이 올라오고 비가 오면 한 뼘 높이로 자랐고, 한밤 자고 나면 커다란 밭은 온통 녹색 물결이 되어버렸다. 강렬한 햇볕 아래 대지가 축축 늘어질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옥수수 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자연교향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노란 옥수수 알맹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르면, 어머니는 노란 옥수수를 한 솥 가득 쪄내곤 하셨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옥수수를 하나 들고 이 손 저 손 바꿔 가면서 한입한입 베어 물 때 정말 행복했다. 적당한 단맛이 한번 두번 씹을 때마다 변함이 없었다. 옥수수 하나를 후다닥 해치우고 나서는 말랑말랑한 옥수수 껍질을 들고 외양간으로 들어서면 소들이 참 기쁜 얼굴로 반겨주었다. 줄기나 잎사귀만큼이나 옥수수 껍질도 소들이 참 좋아했다. 한 소쿠리 가득 담긴 옥수수수염을 가지고 “하얀 머리카락 만들어 줄게!” 하면서 동생 머리에 듬뿍 얹어주며 장난을 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보면 그때는 옥수수는 참 버릴 게 없는 만능 효자 상품이었다. 이제 곧 노란 옥수수가 한창 나올 때다. 시장 곳곳에 노란 옥수수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모양은 달라도 맛은 기가 막혔던 옥수수를 올해는 간식으로 종종 이용해 보려 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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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버킷리스트의 1순위는 아프리카의 사파리고, 다음은 러시아였다. 사파리는 이리저리 저울질하다가 시기를 놓쳤음을 깨닫고 에버랜드를 찾은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러시아는 반공방첩이 국시이던 초등시절에 동토의 나라로 각인되었다. 많이 변했다지만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 동행을 찾던 중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초등학교 동기와 안부 전화 중에 동참을 허용받았다. 러시아 일주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발트 3국을 포함하느냐로 고심하다가 4개국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사전지식이 없다시피 한 발트 3국은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그리고 아토피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청정국가였다. 구소련의 위성국가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유럽연합체다. 3개국을 합해야 한반도의 2/3 면적에다 인구는 겨우 630만, 복지혜택이 우리보다 좋다지만 매년 10만 정도가 북유럽 등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도로 양쪽으로 자작나무와 적송으로 숲을 이룬 침엽수는 내려갈수록 활엽수로 바뀌는 것 외에는 어디나 김제 평야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18m라 지평선만 보일 뿐이다. 러시아에서는 둑마다 민들레가 군락을 이루더니 아래쪽으로는 끝 간데없는 유채꽃이 봄이 왔음을 알렸다. 여행 동안 맑은 공기에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15~25도를 넘나드는 날씨로 반소매를 입은 날은 소름이 돋았지만, 현지인은 반소매 차림이 많았고 간혹 핫팬츠의 아가씨가 눈길을 잡았다.



뉴스라고는 일 년에 한 손에 셀 듯 그날이 그날인 나라들이라 특이하게 볼 것도 즐길 것도 없었지만,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자작나무 숲과 늪지대(어린 시절, ‘늪에 빠지면 서서히 사라져서 며칠 뒤에 시체가 되어 강으로 빠져나온다’고 겁을 주던 어른들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2천여 평의 야산에 10만 개 이상의 십자가들로 뒤덮인 언덕이 경이로웠고,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목각공원은 한 노인의 예술적 안목이 탁월함을 증명했다. 화장실의 샤워기 사용법이나 현관문을 여닫는 불편함으로 몇 번의 소동이 일어났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다가 개에게 물려서 병원을 찾아 응급처치를 받았다. 노인들이 깜박하는 탓으로 휴대전화 충전기를 가이드가 긴급 수배를 하고 고가의 짐을 놓고 나와서 이틀 만에 찾은 해프닝도 여행의 묘미를 돋우었다.



마지막 밤은 해변의 국경지대에서 보냈다. 수십 리에 펼쳐진 보드라운 모래사장이 탐이 났고, 수심이 얕은 데다 염도까지 낮아 짜지 않고 잔파도가 자주 몰려와서 형성된 좁은 간격의 모래층이 신기했다. 백야의 시작이라 10시에 지는 일몰을 사진기로 담느라 두어 시간을 해변에 머물렀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갈대와 모래층을 배경으로 한 붉은빛으로 수놓은 저녁노을을 담은 사진이 신비롭다. 러시아는 달랐다. 하늘과 공기는 우리의 일상과 비슷했고, 푸틴의 취임식을 치른 직후인 탓인지 거리는 활기에 차 있었다.


런던과 파리에 비견해도 될 법한 고대의 바로크, 로코코, 고딕식의 성당과 대형건물들이 상트페트로 부르크의 중심가를 점령하고 있어서 악소 국가에서 자란 우리들의 기를 죽여 놓았다. 여름궁전과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은 베르사유궁전과 런던박물관을 다시 한번 보는 착각을 가져왔다. 특히나 포트로 대제의 여름궁전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한 ‘페테르 드보레츠’는 1000헥트라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에다가 7개의 작은 정원에 설치된 144개의 분수가 여러 형태로 물을 뿜어내고 있어서, 가이드가 옆에 와서 모두가 기다린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아쉽게 자리를 떴다. 러시아가 초행인 발트 출신 기사와 경험이 일천한 가이드와의 의견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현지 가이드를 찾는다고 두 시간 반을 헤맸다. 이 바람에 현지 책임자가 나와서 사과하고 운하 유람이 취소되어 50유로를 반환받는 소동이 벌어진 게 이번 여행의 옥의 티였다.



동심으로 돌아가서 친구와 나눈 수많은 이야기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리라. 고맙다. 친구야!



글 / 사외독자 이성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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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꽃들의 속삭임


꽃들에게 가까이 다가서 보아요

두런두런 수런수런 속삭임이 들리네요

해야 고마워

노랑 보라 빨강 예쁜 색 만들어 주어서

바람아 고마워

내 향기 멀리멀리 실어다 주어서

비야 고마워

내 몸과 맘 깨끗이 씻겨 주어서


꽃들이 서로 볼을 맞대며 방글방글 웃음 짓네요



글과 사진 / K4 고객만족2팀 박춘남 사원

촬영지 / 광주 과학 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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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장인어른을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고 올라오는 길에 자동차를 타고서 ○○정부종합청사를 휘둘러보았다. 청사는 완공되었다지만, 주변에는 띄엄띄엄 공사 중인 건물들이 대다수라 삭막했다. 주말부부로 이곳에 살던 아들은 구내식당 말고는 밥 한 끼 먹기도 어렵고 병원, 의원이나 슈퍼를 가려고 해도 차를 가져가야 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지난 어린이날에 ○○시로 이사한 아들이 집들이를 한다고 하여 사위가 운전대를 잡았다. 특별한 날인지라 내비게이션이 원하는 대로 운전을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꼬박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엉덩이가 아프고 화장실이 그리운데도 휴게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과천에서 공무원을 상대로 한식집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음식점은 반찬 수도 많고 맛깔스럽다.

아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고층 아파트 숲 사이로 빈 곳도 보이지 않고, 대도시를 목표로 기반 시설도 갖추고 생활 밀착형 점포도 들어서서 더는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아파트는 청사까지 걸어서도 10여 분 거리고, 3년 된 새집이었다. 전에 살던 30년이 넘은 아파트에 비하면 따뜻하고 수납공간도 많고 베란다를 확장해서 훨씬 넓게 보였다.

더구나 손자가 3학년으로 전학한 학교가 3분 거리고, 창문으로 보면 학교 가는 모습도 다 볼 수 있어 안심이다. 매입한 줄로 알았는데 2년 계약한 전세라는 것이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긴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손자가 “나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어요. 2학기에는 꼭 반장을 할 거예요.” “오빠, 꼴등은 누구야?” “….” “오빠구나!” 발로 동생을 걷어차면서 전쟁의 시작이다.

나와 아들과는 달리 모든 일에 열성적인 손자가 대견스럽다. 지난 학교에서는 1~2학년 때 축구대표팀에 합류했고 전교생 앞에서 둘이서 하는 줄넘기에도 손을 번쩍 들어 참여했다. “아는 친구도 하나 없는데 떨어진 게 당연하지. ○○은 착하고 똑똑해서 친구도 많이 사귈 것이고 공부도 잘할 것이니 2학기에는 원하는 대로 될 거야.”

전세로 얻은 이유는 예상대로 손자 손녀의 교육문제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지방으로 이주하기로 하고 회사를 옮긴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식들의 교육문제로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고 아내가 동조해서 좋은 조건도 마다하고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과거가 불현듯 떠오른다. “너희가 심사숙고해서 현명한 대책을 세우리라 생각한다.”

다과를 마치고 차로 5분 거리에 있다는 호수공원을 찾았다. 다음 주에 고양에서 열리는 꽃 축제를 해외여행 때문에 못 가게 된 것이 아쉬웠는데, 기분 전환이 된 셈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 인공호수로 어린이날을 맞아 수많은 볼거리와 놀 거리로 시끌벅적하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손자 손녀는 바이킹을 타겠다고 사라지고 우리는 구름다리를 오가면서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늘로 오르는 바이킹을 타고 온 손녀는 “오빠는 15단계인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나는 10단계까지 올라갔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그런다. 저녁으로 좋아하는 추어탕을 먹고 올라오는 길이 너무나 상쾌하다.


글 / 사외독자 이수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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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다가오면 기대하는 선물이 한 가지 있었다. 혹은 서울에서 누군가 온다고 전화를 받고 나면 내심 설레었던 때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친지나 지인의 얼굴이 반가운 것도 있었지만, 사실 더 기다렸던 것은 그분들 손에 쥐어진 선물이었다. 약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성향을 맞춘다고 비싼 술을 들고 들어오면 우리 형제들은 눈썹을 아래로 깔고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고,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쌓인 네모난 상자를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했다. 손뼉을 치며 환호를 했다.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선물, ‘종합선물세트’였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마법 램프가 부럽지 않았다. 껌, 사탕, 비스킷, 캐러멜, 초콜릿, 스낵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게 총 망라되어 있었다. 꼬마였던 우리는 기쁨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네모난 상자 안에 각가지 먹을거리가 가득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분배의 시간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종합선물세트를 가지고 한바탕 싸웠던 기억이 있었기에, 손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엄마가 심판으로 나서곤 하셨다. 네 명을 모두 불러모았다. 둥그렇게 앉게 하고는 종합선물세트를 가운데 두고 분배를 시작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공정히 하려고 엄마는 참 많이 노력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초콜릿을 꺼내셨다. 모두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나만 조금 주는 건 아니실까? 내가 형인데 나한테 조금 더 주겠지? 서로 자신 멋대로 상상하면서 나한테 조금 많은 몫의 초콜릿이 나누어지길 바랐을 것이리라.

엄마는 현명하셨다. 자식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라는 것에 겉표지를 뜯고 초콜릿을 둘러싼 속표지도 뜯은 후 조각조각 자르셨다.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뭘 하시려고 저러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개수로 나누어 주기 시작하셨다. 불평의 말이 나올 수 없었다. “손에 오래 두면 초콜릿 녹는다. 봉지에 넣어둬!”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사탕도 캐러멜도 커다란 봉투를 뜯어서 모두 같은 개수로 나눠주셨다. 종합선물세트에 가득 찼던 먹거리가 거의 바닥을 보이자,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봉투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종류별로 풍성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과자를 잡고는 한마디를 하셨다. “이건 엄마 거다.” 우리에게 크게 인기 없는 과자였기에 우리 네 명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팽팽했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누구 하나 불만이 없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었다.

명절이면 가게마다 명절 대목을 보기 위해 종합선물세트를 어른 키 높이까지 쌓아 올렸던 풍경이 기억난다. 그때는 종합선물세트가 참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그 종합선물세트가 다른 품목으로 바뀌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참치나 기름 세트는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값비싼 선물세트를 가지고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은 설렘은 일지 않는다. 이게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는 것일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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