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전화가 왔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형님의 전화였다. “동생아, 형이 며칠간 머리 좀 식히러 가야겠다. 잠시 가게 좀 봐주라.” 한다. 안 한다는 대답도 하기 전에 형님은 다시 “좋은 횟감 잡아 올게.” 라며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을 먼저 내놓으셨다. 낚시광 본능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그러지요.” 짧게 대꾸를 했다.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기쁨의 환호성이 제법 크게 들렸다.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며칠 후에 형님을 보내고, 고시원 사무실을 지키게 되었다. 깔끔하다고 자부하던 형님이었지만, 책상에 쌓인 먼지 하며,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것 같은 쓰레기통은 자신의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냥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된다고 말했지만, 한 번 손을 대기 시작하자 해야 할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나왔다. 주방까지 청소를 다 마칠 때쯤, 식사를 하기 위해 냄비를 하나 들고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몇 마디를 건네게 되었다. 한국말이 서툰 조선족 아저씨였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자신이 하는 일을 얘기해주었다. 사무실을 오래 비워 둘 수 없었기에 긴 시간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는 말까지 해주고는 주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6시가 막 넘었을 때쯤,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자, 전날 주방에서 마주쳤던 아저씨가 일을 마치고 귀가한 모양이었다. 한 손에 들린 까만 봉지를 통째로 내밀었다. “드세요!” 하시면서. “이게 뭐예요?” “공사장에서 새참으로 나왔던 빵을 모아 온 겁니다. 나는 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먹는 이들이 없으면 다 버려지는 거라 아까워서 내가 다 가지고 왔습니다.” 아저씨의 손이 부끄러울까 싶어서 서둘러 봉지를 받아들었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어제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운 마음에 보답이나 한다는 생각에 챙겨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봉지 안에는 초코파이, 반달케이크, 보름달 빵 등 서너 가지의 빵들이 담겨있었다. 저녁 전 출출했었던 터라 초코파이를 하나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봉지 안에서 뒤섞여 있던 탓이었을까. 부스러기가 많이 생겨나있었다. 내가 그분에게 해준 것은 보잘것없는 친절이었다. 몇 마디 말을 건네고 잠시 들어준 것이 다였다. 하지만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던 그분에게는 큰 친절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비록 생채기 난 빵들이었지만 모아서 가져다주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모양이다. 전혀 꿈꾸지 않았던 일상의 작은 감동이었다. 고시원 형님이 고시원을 잠시만 봐줘! 할 때마다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랴. 그날 저녁은, 마음이 담뿍 담긴 빵을 먹고 또 먹으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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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생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기웃거리다가 ‘아프리카 30일 배낭여행’을 발견하고, 수많은 동물사진을 보면서 미지의 세계에 동참하게 되었다. 70대에 아프리카라. 드넓은 초원에 기린과 얼룩말들이 무리 지어 거닐고, 사자의 표독스러운 모습 옆에 반바지 차림의 친구가 못내 부럽다. 가끔 1박 2일 모임 때도 새벽에 1,111m의 황악산을 단숨에 다녀오던 그였다. ‘대단하다. 몇 년 전부터 생각만 했지, 건강이 걱정되어 나서지를 못했는데…. 신념과 건강이 부럽다.’고 댓글을 달았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제일 앞자리에 들어갔을 아프리카 여행. 그중에서도 사파리 투어는 두고두고 여한이 남는다. 이참에 에버랜드라도 다녀올까. 무료입장권도 있는 데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음날 부부가 나들이에 나섰다. 여행주간이 끝난 지가 며칠 되지 않았고, 평일이라 그런지 입구는 한산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거나 유치원 이하의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와 연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서 1시간가량을 기다리고서야 사파리 월드를 위한 백호버스에 탑승했다. 여행은 날씨와 가이드의 말솜씨에 따라 기분이 엄청 달라지는 법인데,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미세먼지도 비껴간 날에 따뜻한 데다 구수한 설명 덕에 웃으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뛰어난 소화력을 가져서 죽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하이에나는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힘 좋게 생겼다. 왠지 야윈 것 같은 수컷사자는 사파리 생활이 무료한지 고민이 많아 보인다. 초원을 달리지도 못하고 먹이사냥을 해본 적도 없을 테니 긴장감이 없어서인가. 몸길이가 무려 2m 80cm라는 곰의 덩치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래도 운전기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냉큼 받아먹을 때는 날렵하기만 하다.



다음은 로스트밸리. 이곳은 수륙으로 이동이 가능한 버스가 땅 위를 운행하다 물속에서는 모터로 움직인다. 육지를 달리던 차가 배로 바뀌는 순간, 나와 아내는 몹시 시시해했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며 엄마아빠들은 아이들을 위해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프리카 사슴은 가슴팍의 털이 멋있게 보였는데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과시용이 아니라 체온 조절용이란다. 생후 5개월 된 코끼리는 하루에 100kg이 넘는 먹이를 먹는 먹보다. 차가 다가가자 기린은 차 안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큰 혀를 내밀며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게 귀엽기도 하다.



두 곳을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이 30분이고 말만 사파리지, 사육하는 동물들이라 대부분이 잠을 자거나 무기력한 게 섭섭했지만, 이렇게라도 체험하지 못하면 늘 사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테니 그만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저곳에 높이 설치된 어트랙션 구조물에서 커다란 함성까지 들리지만, 나이든 이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후크선장의 해적선을 타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피터 팬’으로 막혔던 스트레스를 풀려고 아이들과 젊은이 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도 순방향으로 2분 역방향으로 2분이 다였으니 여전히 2%가 부족하다.



세계 최고의 낙하 각도에서 즐기는 스릴 롤러코스터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도 한창때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두 번이나 입장해서 저보다 더한 스릴도 체험했다는 추억을 되살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8시 45분에 집을 나서서 돌아오니 오후 6시 45분, 직장시절의 일과를 보낸 셈이다. 에버랜드에서 보낸 4시간 반을 제하면 5시간 반을 차를 타고 버텨서 피곤할 듯도 하지만, 깨끗한 환경에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 탓인지 평소보다 더 가뿐한 하루였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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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힐링하세요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데

회사 잔디밭 위로 안개가 솜사탕처럼 내려앉은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지친 마음에 힐링이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여러분도 저처럼 마음에 힐링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과 사진 / K4 제조5팀 강춘환 책임

촬영지 / 앰코코리아 K4공장 잔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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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아침 햇살이 주는 힘


새벽 출근길이 피곤하고 힘들지만

아침 햇살이 붉게 타오르면서

나에게 힘내라고 방긋 웃어주네요.

앰코 생활이 나에게 주는 기쁨입니다.


글 / K4 제조1팀 송정란 사원

촬영지 / 앰코코리아 광주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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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책을 가까이


큰아이 문제집 사려고 서점에 갔는데

막내아이가 책 두 권을 사고 장난감 산 것보다 더 흐뭇해합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게 해주려고 노력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에

저도 같이 흐뭇한 미소가 번집니다.


글과 사진 / K4 제조5팀 강춘환 책임

촬영지 / 1월 17일 수완지구 세종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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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지 중에서 오지인 첩첩산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10리 길로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한 신작로를 걸어서 다녔다. 할머니는 멀리서도 손자 모습이 보이는 모실방우까지 자주 마중 나오셨다. 손자가 할머니를 발견하고 뛰어오면, 자세를 낮추어서 껴안고는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아이고! 내 강생이가 핵교 다녀왔구나!” 하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내게는 초등학교 2학년인 손자와 그보다 네 살이 어린 손녀가 있다. 손자가 태어나던 날, 병원에서 아이를 유리창 너머로 보았다. ‘생명의 탄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자녀가 낳은, 나의 대를 이을 나의 분신이라는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손자(손녀)가 태어나면, 보고 싶을 때 보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사람마다 집집이 손자(손녀) 키우는 방법이 다를 줄 안다만, 아들 내외가 맞벌이하느라 처가댁 가까이 살면서 외가에서 키우고 돌보고 있는 처지라 그건 언감생심이었다. 2~3주에 한 번꼴로 데리고 온다지만, 그게 성에 찰 리 없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손자에게는 식사를 같이하는 외조부모는 가족이 되어있었고 우리 내외는 타인이었다. 위로해주는 사돈 말씀, “사돈, 걱정 말아요. 애들이 크면 자기 핏줄 찾아 간대요. 외조부모는 나중에는 허당이래요.” ‘글쎄 그럴까’ 뭔가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누군가 말하듯 ‘이 시대는 새로운 모계사회로 돌아간다.’라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손자가 초등학생이 되고부터는 한 달에 한번 보기도 어려워졌고,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 가끔 전화를 하면 “할아버지, 지금 숙제 중이거든. 내가 시간 나면 전화할게요.”라고는 끊어버린다. 아쉬움과 서운함이 남아있었는데, 사돈 내외가 12일간 유럽여행을 떠나면서 우리 부부가 돌보게 되어 실상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5일간(1박 2일이 두 번), 내게도 이틀이 배정되었다. 손자가 보여주는 일과표에는 학교에서 학원으로 잠시 집에 들렀다가 다시 학원으로 가는 시간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과외가 다섯 개나 되어서 토요일까지도 짬이 없었고, 5시쯤 집에 도착하면 어린이 프로를 보거나 숙제하기에 바쁘다. 손자(손녀)는 언제 어디에 있는 간식을 몇 개나 먹어야 할지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왜 그렇게 많은 학원엘 보내나?” 하니 아들 말로는 “애가 좋아하고 다른 애들도 그러니까….”라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손자에게 전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손자는 제일 먼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봐야 한다며 8시 20분에 집을 나가고 손녀와 둘이 남았다.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한번 볼까?” 양팔을 까짓것 벌리고는 “안 돼, 내 거야!” 한다. “할아버지 물건은 마음대로 만지고 고장도 냈잖아.” 하니,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알았어. 마음껏 하세요.” “아니야, 남의 물건을 만지려면 허락을 받고 만져야 한다. 알았지?”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런다. “알았어요.”

전에나 지금이나 손자(손녀)가 집에 온다면, 만사 제쳐 두고 마루를 쓸고 닦고 난리를 친다. 애들이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아파트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다가 현관을 들어서면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아이고! 내 손자(손녀) 왔구나.” 하고 끌어안는다. 마치 내 할머니가 나를 끌어안고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가족의 내리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세대는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닌가! 손자(손녀)를 안을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할머니의 손자사랑이 고스란히 내 손자에게 전해지는 것 같고, 그때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글 / 사외독자 이성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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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매달 발행된 연재만화를 사보기 위해 엄마가 주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도 했다. 만화책이 서점에 놓이는 날이면, 학교 끝나기 무섭게 만화책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갔다. 두툼한 만화책에는 10여 가지 이상의 만화가 연재되곤 했다. 집에까지 가서 보는 것을 참지 못해, 집으로 가는 길에 손에 들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가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러 가지 만화가 함께 있다 보니, 재미있을 만하면 꼭 끊어서 다음 편을 사도록 만들었다.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이 설렘 뒤에는 꼭 남았다.


보물섬을 다 보고 나면, 남은 한 달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시험 없는 주말이면 친구를 따라 만화방에 갔다. 처음 만화방에 들어서던 날, 수많은 만화책으로 빼곡하게 차 있는 그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작가 이름별로 정돈된 만화책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데,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가는 시간이 아쉬워 10여 권을 서둘러 뽑아서 친구와 정신없이 읽었다. 책이란 것에 그렇게 몰두했던 적은 태어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서너 시간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배가 출출할 때쯤 되자, 친구는 라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자고로 만화방에 오면 꼭 해봐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게 라면이라 했다. 뜨거운 물을 붓고 한 젓가락 떠먹는 라면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방학이면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는 옷 버린다고 눈밭에 나가서 뒹구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았다. 그러면 TV를 보다가 잠을 자다가 한참을 방바닥을 박박 긁다가 보는 것이 다 본 만화책이었다. 연재만화는 부피가 큰 나머지, 1년 치 정도 되면 책꽂이 위아래로 다 채울 정도였다. 그러면, 그 1년 치를 다 꺼내 처음부터 다 읽곤 했다. 교과서만 예습, 복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책도 복습을 하게 된 것이었다. 까끌까끌한 재질의 만화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재미를 새삼 다시 보면서 찾았다.


요즈음은 만화방 찾기가 쉽지 않다. 예전만큼 성업을 하지 못해서인지 시내를 한참 돌아다녀도 만화방이라는 간판을 찾기가 어렵다. 더불어, 매월 만화만을 연재하는 만화책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가끔 TV 채널에서 방영해주는 만화를 보면서 그때의 일을 회상할 뿐이다. 학창시절, 만화는 친구가 되었고, 친구가 만화와 함께했던 그 시간은 추억의 사진 속에 남아있다. 언젠가 친구는 자신의 소장품 1호는 만화책이 될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난다면 쌀쌀한 봄 밤에 읽을 만화책을 얻어 와야 할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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