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경로석에 앉은 노인들의 새끼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굽은 여성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아마도 손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골절이 된 결과일 거라며 무심코 넘겼다. 그런데 최근에 내 왼쪽 새끼손가락이 15도 정도 굽게 되니 이야기는 달라진다.
며칠간을 그대로 지켜보다가 살이 뭉쳐서 부푼 부분을 주물기도 하고 반대쪽으로 굽혔다 폈다를 여러 번 반복하니 5도 정도로 회복되는 것 같았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원상태로 변하면서 신경이 쓰인다. 좀 심하게 만지면 통증도 느끼게 되어 같이 헬스 하는 여성 분에게 보여줬더니 자기도 10년 전에 그런 현상이 있어 쑥 찜질을 하고 침을 맞았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한의사와 상의하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한의원을 찾으려니 침이 두렵고, 외과를 가자니 저번처럼 퇴행성이라고 할까 봐 망설여진다. 3년 전이었을 거다. 한여름인데도 오른쪽 팔의 윗부분이 시려서 동네 의원을 찾았더니, 팔다리 운동을 여러 번 시키고는 퇴행성이라며 그 정도는 친구 삼아 지내란다. 어쩔 수 없이 여름에도 잠자리에 들 때는 긴 팔 셔츠를 걸치거나 수건으로 동여매기를 계속했지만, 새벽이면 그 부분이 쓰리고 아려서 잠은 고사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두 시간 정도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으니 신기하다면 신기한 이런 것이 퇴행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자칭 종합병원을 달고 산다는 아내가 머리와 목이 아팠다가 팔다리가 쑤신다는 말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아서, 내가 동네의사처럼 말을 하면 ‘도와줄 생각은 하질 않고 스트레스만 주는 몹쓸 사람’이라는 원망만 돌아온다. 말이야 쉽지, 통증을 동반하는데도 그게 위로라고 건넸으니 ‘잠든 마누라 코털 뽑기’ 아닌가.
미루고 미루다가 생전 처음으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손을 만져보고 굽혀보고 하더니 두꺼운 원서를 펼쳐 보이면서 백인에게 많이 찾아오는 ‘듀피트렌 구축’이 생소한 병명과 함께, 국내에는 치료제가 없으니 심하면 뭉친 살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하므로 대학병원을 소개해주겠지만, 심하지 않으니 당분간을 지켜보잔다. 그런데도 엑스레이 두 장에다 주사 주고 물리치료하고 처방전까지 내미니 문제가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따랐지만, 골절에는 이상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단골 약제사는 별것 아닌 약이라고 위로하면서, 주사에다 처방전까지는 과다하다는 반응을 보이므로 과잉진료라는 느낌도 들게 하는 묘한 병이다.
인터넷에서 뒤졌더니 ‘이 병은 손바닥의 피부밑 건막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서 손의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는 병이다. 대부분 50~60대의 남자에게 많이 발생하며, 당뇨•음주와 관련이 있고 유전적 영향도 10명 중 1명꼴로 나타나며 주로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백인에게 많다.’라고 되어있다. 치료제로는 2013년 말 FDA 승인을 받은 ‘지아플렉스(Xiaflex)’가 서양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 페니스가 구부러지는 일명 바나나 페니스라고도 하는 병을 얻어서 이 약으로 치료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친구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내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영원할 것처럼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주위 분들의 별세나 병세를 알게 되면 내게도 예고 없이 닥쳐올 병이고 불행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60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으니 늙기는 늙었나 보다. 다음 달 중순,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손자가 제 어미와 미국의 이모한테 놀러 간다는데, 손자 간식비에 치료제 구매할 돈까지 생각해 넣은 봉투를 건네야 할까 보다.
이 녀석이 2년 전에는 싱가포르를 여행하고 와서 “할아버지! 그곳에는 길에도 종이 한 장 없고 코도 안 커다란 사람들이 영어를 엄청 잘해!”라고 했었다. 그때부터 외국에 대해 궁금해하기에 지구의를 사주었더니, 지난 월드컵에 참여한 32개국의 나라와 수도를 거침없이 기억해서 가족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 뒤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벌써 흥미가 간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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