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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음악감상실] 종교(宗敎)와 함께 듣는 클래식

by 앰코인스토리.. 2026. 9. 23.

종교(宗敎)와 클래식 음악의 공통점은,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깊은 속마음의 감정을 만져준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3대 요소는 ‘신앙의 대상, 믿음을 가진 신도, 그리고 경전’입니다. 불확실성을 가진 그 무엇인가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나 학설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관념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일 것입니다. 눈 앞에 보이지 않고 실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불확실한 존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바흐 평균율 1권 중 다장조 프렐류드 J.S. Bach, Prelude No. 1, BWV 846

영상출처 : youtu.be/iWoI8vmE8bI?list=RDiWoI8vmE8bI

 

바흐는 ‘종교음악은 신에 대한 봉사’라고 말하면서, 매주 설교 내용에 맞추어 칸타타와 성악곡을 써야 했습니다. 종교에서 음악은 설교 내용의 배경이었으며 설교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도 본격적인 예배의 시작 전에는 찬양을 하고 경배를 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설교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방식은, 바흐의 시대와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종교라는 것에 의지하게 된 시작은 오히려 간단히 유추해 보면, 원시 시대에는 먹을 것을 찾고 맹수를 피해 숨을 곳이 필요했을 것이고 매번 구해지지 않는 식량을 구하기 위한 바람을 산이나 바위나 강에게 또는 하늘에게 의지했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먹을 것이 생겼다면 의지했던 그 대상에게 다시 바람을 말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의심해 봅니다. 이 의심이 맞다면, 종교는 결국 인간의 생존과 보존의 간접적인 도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발디, 모테트,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Vivaldi, Nulla in mundo pax sincera RV r630

영상출처 : youtu.be/SqCIbp3KBs4?list=RDSqCIbp3KBs4

 

종교의 기원이 원시적일지라도 종교를 통해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그 무엇인가를 숭배하기 위해 질서가 만들어졌으며, 그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석하고 풀이해주는 학문과 학자, 그리고 이를 이끄는 지도자가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는 집단을 이루고 집단은 국가로 발전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먹고 마시고 쉴 곳이 보장된 현대에서의 종교는 감정을 다스리고 잃어가는 이성을 찾아주고 공통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어원이 헬라어 에클레시아(Ekklesia)로 ‘부름을 받아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포레, 레퀴엠, 피에 예수 Fauré: "Pie Jesu" from Requiem op.48

영상출처 : youtu.be/gKRUNl5NCfY?list=RDgKRUNl5NCfY

 

클래식 음악은 숭배의 대상에 대한 인간의 감사의 표현이며 경배의 수단이었습니다. 대부분 중세 시대의 음악의 내용을 보면 성경의 이야기이거나 신에 대한 인간의 바람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후 종교개혁에 의해 인간 중심의 교회로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클래식 음악도 인간의 감정과 일상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낭만적이며 감성적인 음악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프랑크, 생명의 양식 Frank, Panis Angelicus

영상출처 : youtu.be/4tIsTmUOODo?list=RD4tIsTmUOODo

 

현대에서의 종교는 안타깝게도 국가 형성의 기초가 되어 갈등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기도 하고, 이념으로 자리잡고, 대립과 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원시적인 바람을 넘어선 탐욕의 대명사로 종교가 사용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의 클래식 음악은 중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작곡되고 연주됩니다. 현대음악이 대중에게 듣기 힘든 음악으로 치부되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아베마리아 Schubert, Ave Maria

영상출처 : youtu.be/yAJJqIrwrCc?list=RDyAJJqIrwrCc

 

다행인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신을 이해하고 신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구도자들과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있고 사찰도 있고 성당도 있고 사원도 있다는 것은, 인간은 여전히 생존하고자 하고 인간으로서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의 반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一柱門)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서 세상의 모든 업과 죄를 털어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 욕심과 번뇌로 물들어 버린 마음의 때를 씻어 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일주문을 만든 이유일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존재의 이유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처럼, 책 한 권 손에 쥐고 일주문의 문턱을 넘어 깨끗하고 정돈된 마음으로 새로운 가을을 만나봐야 겠습니다.

 

※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