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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운동화

by 앰코인스토리.. 2026. 4. 29.

사진출처 : freepic.com

운동화를 신고 산으로 행했다.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등산화를 빨아서 널어 놓은 상태라 부득이하게 운동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금방 산 운동화라면 무리해서 산을 오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에 오를 때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운동화가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를 테면, 다소 가파른 길에 들어서면 미끄러질 수도 있고 바위와 돌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발목이며 발가락에 무리를 줄 수도 있어서다. 그런 상황임을 알고 있음에도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 것은, 자주 신어서 편해진 것일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다소 시일이 지나다 보니 운동화에 대한 애착이 무디어진 것일 수 있다.

 

1년 정도 지나다 보니 운동화 여기저기 마모가 있고 발뒤꿈치 부분은 닳아 있어서 운동화를 처음 샀을 때의 마음이 변해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돈을 주고 처음 구입했을 때는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것을 감안해 보면, 1년 사이 운동화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나을지 점원에게 두서 번은 물어보고 안팎을 살펴보면서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게 좋겠네요.”라며 마지막으로 추천했던 신발이기도 했다.

 

사실 그 당시에도 색상만큼은 쏙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회색 계열이서다. 보통 하얀색이면 하얀색, 검은색이면 검은색으로 확실히 정해지는 것을 좋아했는데, 모호한 색으로 운동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런 류의 운동화가 요즈음 잘 가나요?”라는 말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점원은 은근슬쩍 부추겼다.

 

가격 대는 원하는 범위에 있어서 바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색상을 문제삼아 “다른 색은 없나요?”라고 점원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점원의 단호한 태도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 제품은 이 색만 나옵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돌아보고 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열고 나왔다. 바로 선택하기엔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다른 집에는 좀더 나은 운동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가까운 점포 두서 곳을 둘러보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시험시간에 아리송한 문제를 풀 때는 가장 먼저 선택한 번호가 정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왜 그리 머릿속에 맴돌았었는지! 다시 돌아온 점포에 들어서자마자 회색 운동화를 무작정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이 운동화는 나의 운명이다.’라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다.

 

산 정상과 함께 한 운동화는 여전히 발에 대한 편안함을 준다. 운동을 할 때는 불편함을 한 번도 주지 않았던 것처럼, 거친 산길을 올랐는데도 발이 아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수만 시간을 같이 했는데 이제야 그 고마움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왠지 부끄러워졌다. 좀 더 관리하고 세탁을 자주 했다면 좀더 오랜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다. 언제까지 이 운동화와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겉만 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신발 안은 여기저기 닳고 밑창은 마모가 되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돈을 좀 더 모아 운동화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질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빨리 당기고 싶지는 않다. 운동화와 함께한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