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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영화 속 음악] 플래툰, 전쟁이라는 극한의 리얼리즘의 정석

by 앰코인스토리 - 2015. 6. 16.

필자의 대학 시절, 동기 및 선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벌어진 토론 중 늘 단골 소재로 등장한 것이 바로 ‘예술과 현실의 상관관계’라는 등식이었습니다. 필자는 당시 늘 양측, 즉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상관관계에서 고민하길 일쑤였으나 한편으로는 예술의 사회 참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리얼리즘의 태도를 견지하는 작가나 아티스트들에게 좀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사실주의 형태의 예술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테제로 토론이 자연스레 옮겨 갈 때쯤이면, 늘상 이런 쟁점에 도달하곤 했습니다. ‘사실주의 예술에서의 표현 중 가장 어려운 것은 현실이 인간의 상상력의 범위를 뛰어넘었을 때’의 경우라는 점입니다.


▲ 영화 《플래툰(Platoon)》 속 장면


그렇다면 가깝게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일상 또는 멀게는 세계사적 역사의 견지에서 앞서 언급한 ‘현실이 인간의 상상력의 범위를 뛰어넘었을 때’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라면 단연 ‘전쟁’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들은 거의 없으시라고 봅니다.


역사상 가장 극한의 종말론적인 세계의 말로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대학살인 홀로코스트(Holocaust), 1960년대 미ㆍ소로 상징되는 좌우 대립과 미국의 아시아 팽창에 대한 과욕의 결정판인 베트남전, 20세기 말엽인 1990년대 ‘인종 청소’라는 최악의 비극이 자행된 보스니아 세르비아 내전, 그리고 21세기 초엽, 미국의 패권주의의 과욕이 극에 달한 사건이라고 평가되는 이라크 전쟁까지. 그중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이라는 정서 및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가장 피부로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전쟁은 바로 베트남전일 것입니다.


한국으로서는 최초의 해외파병이었고, 당시 ‘용병의 민족(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에서도 묘사된 어휘)’이라는 부정적 어감과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 본토 수호도 아닌 먼 이국땅에서의 명분 없는 전쟁에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담보한 달러들이 한국 현대화의 밑거름이 되었고, 전후에도 나타난 수많은 이들의 전쟁 후유증 또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가슴 아픈 현대사이니까요.


▲ 영화 《플래툰(Platoon)》 포스터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현실을 앞서 언급한 ‘현실이 상상력의 범위를 뛰어넘는 경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예술상의 난제를 적절히 잘 표현한 작품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베트남전이라는 현대사의 굴곡의 상징을 기존의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들과는 너무나 다른 코페르니쿠스적인, 즉 기존의 베트남 전쟁 영화의 관습을 뒤집은 관점에서 고찰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1987)의 경우처럼 위력적인 영화를 아직은 많이 보지는 못한 듯합니다.


사실, 《플래툰》 이전의 베트남전을 다룬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 시리즈나, 척 노리스 주연의 액션 영화에서 묘사된 베트콩들의 초상은 단연 기존 존 웨인이 등장했던 수정주의 서부극 이전의 작품들 속의 인디언들처럼 또 다른 미국의 가증스러운 적들로 묘사되기 일쑤였고, 영화 속 주변 인물들조차도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공식에 따라 실제 전장 속의 인물들과 유린당하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인물들로 묘사되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 《플래툰》은 올리버 스톤 감독, 그 자신 또한 명문 예일대를 중퇴하고 베트남전으로 홀연히 떠났던 그의 20대의 초상이 그대로 투영된 자신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극 중의 주인공인 크리스(찰리 쉰 분)의 눈을 통해 비친 전쟁의 실상과 참상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영화 속 미군 내부의 선과 악의 상징이었던 엘라이어스 중사(윌리엄 대포 분)와 반즈 중사(톰 베린저 분)의 갈등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여러모로 기존의 베트남전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작품으로 승격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영화 《플래툰》 이후 베트남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다룬 영화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플래툰》의 이른바 ‘수정주의 전쟁미학’을 두고 ‘플래툰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까요.


Platoon - Tracks Of My Tears (Smokey Robinson and The Miracles)

영상 출처 : 유투브(https://youtu.be/tGKtr278QtY)


The Doors - Hello, I Love You

영상 출처 : 유튜브(https://youtu.be/hzM71scYw0M)


Platoon - Aretha Franklin - Respect (1967) (Original Version)

영상 출처 : 유튜브(https://youtu.be/6FOUqQt3Kg0)


영화 속 배경인 1960년대 말엽을 다룬 영화답게, 당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반전 무드와 영화 속 전장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장치들로 선택된 당대의 팝, 록의 고전들은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잠시나마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극복하려고 했으며, 서서히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미쳐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신들과 절묘한 합일을 이룹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극 중 막사 내에서 벌어지는 마리화나 파티장면에서의 영원한 히피들의 찬가인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White Rabbit>과 스모키 로빈슨의 <Tracks of my tears>일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1960년대 록 신과 젊음의 상징인 도어스의 <Hello, I love you>와 소울의 데모 아레사 프랭클린의 <Respect>는 또한 이 영화 속 삽입된 록과 소울 넘버들 중 단연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트랙들이지요.


PLATOON ENDING

영상 출처 : 유튜브(https://youtu.be/NIJZGR2FaDA)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극한의 리얼리즘을 더욱 돋보이게 한 스코어는 미국의 현대 음악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현악 4중주 1번의 2악장을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Adagio for Strings(현을 위한 아다지오)>일 것입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영화 중간중간의 매복 장면 시, 미군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민간인 촌락에서의 수색 신에서, 이 영화 개봉 직후 그 유명한 스틸 사진으로 유명세를 탔던 엘라이어스의 순교와도 같은 죽음의 장면에서, 그리고 마지막 극 중 크리스가 “우리는 적이 아닌 우리 내부의 적과 싸웠다.”라는 독백 시 흘러나오던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성스럽고 비장한 선율이 없었던들, 이 영화의 감동과 충격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남아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플래툰》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었던 1988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했던 필자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다시 느끼기에는 너무나 성장해버린 지금에도 이 영화 《플래툰》이 전해준 ‘전쟁이라는 극한의 리얼리즘의 정석’이라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현실’이라는 명제가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명제를 부정한다는 것만큼 서글픈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바로 그 이유는 아직도 현대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겠지요.


Platoon - The Death of Sgt. Elias (1986)

영상 출처 : 유튜브(https://youtu.be/mKpQB3bEPbI)



플래툰 (1987)

Platoon 
8.3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톰 베린저, 윌렘 데포, 찰리 쉰, 포레스트 휘태커, 프란체스코 퀸
정보
액션, 전쟁 | 미국 | 120 분 | 1987-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