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일과를 잠시 멈추고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 다가올 때가 있다. 시간만 나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뭘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시간이 나면 꼭 해야겠다는 일 하나 정도는 늘 가슴 속에 담고 산다.
11월에는 꼭 누룽지를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런 시간이 주어졌다. 누룽지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 중 첫째는 솥밥을 먹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밥을 할 수는 없지만, 늘 먹게 되는 전기밥솥의 밥과 다른 형태의 밥을 먹고 싶어서다. 불 앞에서 지켜 서야 하는 수고와 불 조절을 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음에도 밥솥에서 갓 지은 밥을 뜨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불 조절만 잘 된다면 노릇노릇한 누룽지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함께 녹아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당신의 바쁜 일과 속에서도 따스한 밥을 꼭꼭 챙겨 먹히겠다는 일념으로 한꺼번에 많은 양의 밥을 하지 않고 끼니 때 먹을 양만큼 밥을 지어내셨던 엄마의 손길이 생각이 날 것만 같다. 압력밥솥이 있다면 편하게 찰진 밥을 만들 수 있겠으나, 여기저기 찾아봐도 압력밥솥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냥 옛날의 느낌 하나만 가지고 밥짓기에 돌입했다. 많은 양의 밥을 할 생각은 없었다. 찬밥도 라면과 호흡을 맞추면 그럴싸한 한 끼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오늘은 밥보다 누룽지가 먼저였기에 한끼 분량의 쌀을 넣고 밥솥을 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공존했다. 신중을 기하는 바람에 쉽사리 불 앞을 떠나지 못했다. 솥뚜껑을 들었다 놨다 여러 번 했다. 엄마가 보셨다면 한 소리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자주 열어보면 밥이 잘 안 돼.”라고. 하지만 조바심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옛날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긴 했지만 보면서 확인하지 않으면 왠지 실수를 할 것만 같았다.
30여 분 동안 씨름한 결과, 그럴듯한 밥은 만들어 냈다. 엄마가 했던 밥 냄새와 고스란히 닮은 듯도 싶었다. 뚜껑을 열었을 때 하늘 위로 오르는 한 줄기 김들이 거의 사라질 쯤 밥의 모양이 제대로 드러 났다. 하얀 밥 위에 콩과 귀리가 알맞게 섞여 있었다. 주걱을 가지고 크게 한번 뒤집어 보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생각보다 잘 된 밥처럼 보였다. 주걱에 붙은 몇 개의 밥알을 입안에 넣어 보았다. 공을 들인 보람이 느껴졌다. 질지도 되지도 않은 밥알이 씹을수록 단맛을 냈다. ‘이 정도면 밥은 합격!’ 스스로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밥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솥의 바닥에 만들어진 누룽지를 찾기 시작했다. 따스한 열기가 가득한 탓에 바닥에 있는 누룽지도 주걱으로 긁어낼 수 있었다. 탐스러운 누런빛을 띤 누룽지가 보였다. 누룽지 한쪽을 떼어 입에 넣어보았다. 갓 만들어진 누룽지라 딱딱함이 덜했다. 최우수 등급의 누룽지의 기준을 알지는 못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함이 느껴지고 타지 않아 쓴맛이 없어 스스로는 만족이었다.
둥그런 모양의 누룽지를 실온에 식힌 후 설탕을 뿌려 간식거리로 먹던 추억도 새삼 떠올랐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고 누룽지에 물을 부어 눌은밥까지 만들었다. 한 끼 양을 조절하다 보니 눌은밥을 많이 만들지는 않았다. 숭늉 한 모금을 먼저 마시고 숟가락으로 밥을 잘 폈다. 향긋함이 코끝을 자극했다. 한 숟가락 뜰때마다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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