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무척 좋아서 산행을 가려고 마음먹었다.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였다. 해가 짧아지는 시기라 서둘러 준비했다. 올여름이 워낙 뜨거웠던 탓에 가을 날씨 같지 않은 가을이라, 이맘때 가을보다는 다소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다. 한 시간을 걸어서 산 입구에 도달했다. 운동 삼아 걷는 거라 생각했는데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라 올라가는 데 부담은 없었다. 주말이라 오고 가는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했지만 조용했다.
오랜만에 쾌청한 날씨라 다들 외곽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산새 소리만이 크게 들렸다. 10여 분을 올라갔을까? 등산로를 막고 선 물체를 볼 수 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가 보니 부러진 나무였다. 커다란 나무가 부러져 네다섯 토막을 낸 채 등산로에 쓰러져 있었다. 위아래 오고 가는 사람들은 등산로를 우회해서 올라가고 내려갔으리라. 그냥 우회해서 올라갈까, 아니면 나무를 치워볼까, 순간 고민되었다. 어쩌면 착한 일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손을 걷어붙였다.
부러진 줄기를 보자니 썩어서 넘어진 게 맞았다. 일단은 부러진 곁가지를 등산로 밖으로 옮겼다. 썩은 나무 파편이라 가벼울 줄 알았지만 막상 들어보니 무게감이 상당했다. 조심조심하면서 하나하나 빼내서 이동했다. 넘어지면서 가지와 줄기가 엉켰기에 힘을 줘 빼내야 했다.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거친 가지를 옮기다 보니 자칫 방심하면 상처를 입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서너 번 왔다갔다 반복하고 나니 등산로가 정리되어 갔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커다란 줄기를 잡고 힘을 써 보았다. 죽은 나무치고는 꽤 무거웠다. 힘으로 당겨 보았지만 쉽게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 사람만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시 오고 가는 사람을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라 끝을 맺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다시 한번 당겨 보았지만 죽은 나무도 버티기에 들어간 듯,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좀 아쉽기는 했지만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포기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오르자 가을 향기와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시원한 시야는 눈을 맑게 만들었다. 크게 심호흡하며 깨끗한 공기를 한껏 흡입했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가을 산에 대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부러진 나무와 마주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몇 사람들과 마주쳐서 혹시나 했는데 나무를 치운 사람은 없었다. 나뭇가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냥 지나쳐 가기엔 역시나 찜찜한 구석이 있었기에 다시 한번 힘을 내었다. 산의 정기도 듬뿍 받은 만큼 아까보다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묵직한 그 크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등산로 밖으로 나무를 옮기는 건 어렵다 생각했다. 차선책을 선택하기로 했다. 최소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데는 불편이 없도록 등산로 한쪽으로 밀어넣기로 했다. 어영차! 힘을 냈다. 꿈쩍하지 않던 나무 줄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파른 등산로 구간이라 덕을 볼 수 있었다. 등산로를 막고 있던 나뭇가지를 등산로 옆으로 최대한 밀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치워놓고 나니 등산로가 한결 시원해 보였다. 팔과 다리에는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가 남았다. 비록 누구도 알아주지는 않을 테지만 스스로가 뿌듯했다. 산을 내려오는 길이 한결 가벼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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