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지오(Adagio)는 이탈리아어로 ‘천천히 걷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용어로는 ‘느리게 또는 침착하게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즉, 걸음을 걷는 것과 같은 속도와 호흡으로 연주를 하라는 것이지요.
달리기를 하는 것보다 걸을 때 심장은 무리가 가지 않고 뇌는 안정을 취하게 됩니다. 옛 선비들은 조근조근한 걸음을 통해 사색하고 계획하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대학(大學)」에서는 ‘선비의 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기술하고 있습니다. 수기(修己)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닦고, 치인(治人)으로 백성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고 여겨 배우고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급한 뜀걸음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닦기 위한 침착하고 차분한 걸음걸이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알비노니 <아다지오> Albinoni <Adagio> in G minor
영상출처 : https://youtu.be/kn1gcjuhlhg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듣다 보면 옛 선비들의 걸음걸이가 자연스럽게 상상이 됩니다. 허리는 꼿꼿이 편 상태로 뒷짐을 지고 시선은 지평선을 향하여 걷는 지고지순한 모습의 선비가 머리 속에 그려 집니다. 전남 담양 소쇄원에 가보면 대나무숲의 차분함과 고즈넉함에 저절로 걸음이 느려지고 고풍스러움이 온몸을 압도하는 것과 같이 말이지요.
현대사회는 차분한 음악보다는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음악이 대중을 더 끌어들이는 것 같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듣다 보면, 주변 환경이 너무 혼잡하고 잡음이 많아 온전히 즐기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시끄럽고 주변의 환경의 소음이 묻히는 날카로운 음악을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개인용 음악 플레이 장치의 발달로 여럿이 공유하며 즐기던 공연문화에서 점차 개인만의 음악을 듣는 형태로 전환이 빠르게 되었습니다. 아다지오의 음악들은 거칠고 날카로운 소음을 둥글고 부드럽고 편안하게 다듬어 우리를 차분하게 굴러가게 합니다.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들어보면 잔잔한 호수 위로 유유자적하고 고고하게 수면을 헤엄치는 백조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숫가를 그렇게 잔잔히 헤엄을 치기 위해 백조의 두 다리는 수많은 발길질을 해야 합니다. 우리네 삶도 수면 위 백조처럼 겉은 고고하지만 숨은 노력과 마음 속의 열정은 치열합니다.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Saint-Saens <The Swan>
영상출처 : https://youtu.be/3qrKjywjo7Q
이러한 치열함 속 인생의 성공은 정중동(靜中動)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에서의 아다지오는 이러한 조용함 속에서의 거친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조용한 가운데 숱한 발길질과 거친 움직임을 통해 호수를 헤엄치고 안개 속에서 성장해 결국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다지오의 존재감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고요함에서부터 시작해 움직이고 싸우고 거칠어진 후에 다시 부드럽게 다듬어져 처음의 고요함으로 회귀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인생과 음악은 정중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L.v.Beethoven, Piano Sonata No.14 <Moonlight>
영상출처 : https://youtu.be/uTjOXAzUTQA
파반느(Pavane)는 르네상스 시대의 춤곡 중 하나입니다. 유럽에서 춤으로 유명한 나라는 스페인과 프랑스 일 것입니다. 스페인 춤곡은 빠르고 열정적이고 반면, 프랑스 춤곡은 느리고 고전스럽습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서민적인 스페인’과 ‘귀족적인 프랑스’라 구분할 수 있겠군요.
프랑스 작곡가 포레의 파반느는 이러한 구분을 명확하게 이해시켜줍니다. ‘귀족적’이라는 단어가 적절히 어울리는 음악이 바로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입니다. 아다지오의 뜻을 ‘귀족적이며 고풍스럽다’로 정의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가브리엘 포레 <파반느> Gabriel Fauré <Pavane>, Op. 50
영상출처 : https://youtu.be/HhiVuIRw4tM
아다지오는 오랜 걸음을 걷고 난 뒤의 휴식일 수도 있고, 고단한 인생의 여정에서 마침내 다다르는 안식의 단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평안(平安, Peace)이라는 것은 ‘쉼’이고 ‘여유’입니다.
바흐의 <프렐류드(Prelude)>는 평안이라는 깊은 뜻이 잘 표현된 곡입니다. 보통 ‘프렐류드’라 하면 연주의 시작 부분을 알리는 ‘전주곡’을 말하지만, 이 곡의 경우 평화롭고 안식이 필요할 때 듣는 클래식음악의 진수라 할 수 있습니다. 쉼이 필요할 때 그 어떤 영양제보다 더 개운함을 선사받을 수 있지요.
바흐 <프렐류드> 1번 Bach <Prelude> No. 1, BWV 846
영상출처 : https://youtu.be/iWoI8vmE8bI
곧 봄을 맞이합니다. 길고 추웠던 지난 겨울을 잘 견디고 따스한 봄 햇살에 낮잠 잘 자리를 챙기게 될 겁니다. 지난 겨울 같은 혼란과 불면의 밤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며, 새로운 봄에는 평안하고 여유로움이 생긴다면 윤슬이 반짝거리는 호수를 찾아 잠시 쉬고 싶습니다. 잠시 견디면 봄이 반드시 거기 있겠지요.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강> Smetana - Vltava <The Moldau> from <Má Vlast>
영상출처 : https://youtu.be/sGoRl32e1nQ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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