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곡 이름과 함께 연주하는 속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함께 표기되어 연주됩니다. 때로는 연주 속도가 곡명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클래식 음악에서의 연주 속도는 대단히 중요한 표현 방식입니다.
속도, 즉 빠르기를 나타내는 단어는 주로 이탈리아어가 사용됩니다. 단어로 간단히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곡의 분위기나 작곡가의 의도를 담기 위해 문장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1악장의 <Allegro ma non Tropp>는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라는 의미로 문장 형식을 빌려 곡의 빠르기를 표현합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중 1악장 Beethoven: Symphony No. 9, 1st movement
영상출처 : https://youtu.be/VKxX2EJozxo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 <세르세(Xerxes)> 중 유명한 <라르고(Largo)>는 단순히 느리다는 뜻과 함께 폭 넓고 풍부하게 연주되어야 하는 곡입니다. ‘느리다’에는 다소 답답함보다는 주위를 둘러보거나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칠 수 있는 것을 챙겨볼 수 있는 여유가 담겨 있습니다. 느리다는 뜻을 게으름이나 더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느림에는 익어가는 숙성과 차분하게 챙기는 면밀함, 그리고 안정감을 주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긍정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헨델, 라르고 G.F Handel - Largo (Opera from Xerxes HWV40)
영상출처 : https://youtu.be/s-CpJpWm9Vs
유명한 일화인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보면 빠름에는 쉽게 지친다는 단점을 보여줍니다. 이에 반해 느림은 지속성과 차분함, 그리고 여유로움이 있어 지치지 않고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달리다가 토끼는 피곤함에 잠시 쉬어 가는 동안, 거북이는 꾸준함으로 천천히 목표로 걸어간 것입니다.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거북이 Saint-Saens - Le Carnaval des animaux 4. Tortues
영상출처 : https://youtu.be/j0I0itPnwVM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결단과 포부를 세웁니다. 그리고는 결심한 결단과 포부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갑니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초반에 너무 힘을 쓴 나머지 종반으로 갈수록 지쳐가는 자신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을 겁니다. 새로 맞이한 해에 만든 계획에는 느림을 추가하여 마라톤 같은 장거리 인생에 지치지 않고 목표에 다가가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놀이동산에 가면 회전목마가 있습니다. 다른 놀이기구보다 빠르지도 않고 스릴도 없지만 놀이공원에서 반드시 타야 하는 놀이기구 중 하나인 이유는, 느리지만 안전하고 여유롭고 편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빠르고 짧게 끝나는 위험스러운 놀이기구보다 안전하기에 아이들과 같이 탈 수 있고, 느리기에 사진을 여유롭게 찍을 수 있고, 옆사람의 행복하게 웃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을 회전목마와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런 느림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드뷔시, 달빛 Debussy - Suite bergamasque “Clair de lune”
영상출처 : https://youtu.be/B0V24-WaYH0
현대 사람들은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해 중요성을 무시하고 싶어 합니다. 느리다는 것은, 경쟁에 뒤쳐진다거나 게으르다는 것으로 현대를 살아가는데 방해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느리다는 것은 인생을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음식도 급하게 익히면 설익습니다. 산도 급하게 오르면 다칠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빨리 일처리를 하고 쉬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음 일을 계획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제대로 쉬지도 못합니다. 느리다는 것에는 세심함과 철저함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빠르게 진행하므로 간과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지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여유로 인해 철저함이 생기게 됩니다.
농민들은 결코 빠르게 곡식을 수확하지 않습니다. 인내심으로 계절에 맞게, 시기에 맞추어 천천히 곡식을 익어가게 합니다. 조바심으로 비료를 많이 주거나 성장에 관련된 약품을 써서 빨리 수확한다면 영양 가치가 없는 농작물이 수확될 것입니다. 빠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빠름은 느림에서 만들어진 익숙함이 기본이 되어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 풍성한 풍작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느림은 익숙함과 노련함을 가지고 빠름을 도와줍니다.
마스네, 타이스 명상곡 Massenet - Meditation from Thais
영상출처 : https://youtu.be/nGjaXzVzZlo
「The Art of Travel, 여행의 기술」의 저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느리고 빠르고’와는 상관없이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기억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빠름과 느림을 조화롭게 다룰 수 있을 때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슈만,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 R Schumann - Kinderszenen No.7 Traumerei
영상출처 : https://youtu.be/efp4UHImq9g
‘우보만리(牛步萬里)’는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걸으면 만 리도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장거리 인생의 여행 중입니다. 돌아보면 서두르다가 놓친 것, 빨리 가려다 잃은 것이 많았던 여행길이었습니다.
새로이 맞는 새해는 조금은 느리게 시작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좀 더 가지고 싶고 좀 더 높아지고 싶다면, 새로운 계획에는 느림의 시간을 첨가해 보는 것이 완성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생은 계획한대로 움직이는 않습니다. 빨리 가다가 수정할 시간을 지나칠 수 있기에, 느리게 가면서 고쳐야 할 것이 생기면 고치고,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아가야 할 길도 찾아본다면, 장거리 인생의 여정에서 후회는 많이 없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계획에 느림이 없다면 지금 추가해 보시지요. 조금 전에 출발했으니 잠시 멈춘다고 앞으로의 여정이 많이 틀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발디 사계 중 봄 2악장 Largo Vivaldi – Four seasons “Spring” 2nd movement Largo
영상출처 : https://youtu.be/1Nx4B0hUbs8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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