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신흥리 해수욕장은 ‘청산도슬로길 7코스’의 끝이자 ‘8코스’의 시작점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청산도 슬로길은 ‘길이 지닌 풍경, 길에 사는 사람, 길에 얽힌 이야기’와 어우러져 거니는 길로 섬 구석구석을 연결, 그 길이가 총 42.195km(100리)에 달하며 1코스부터 11코스까지 각각 특색 있는 테마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필자가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걸어볼까요?
슬로길 1코스는 도청항에서 시작됩니다. 이 길은 배를 타고 청산을 입도하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길로, 슬로걷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요, 오늘 걷기는 변칙을 적용해 3코스의 1/2지점인 ‘읍리안길’을 시작으로 3코스를 걷고 2코스를 지나 1코스에서 끝내기로 합니다. 마을 안길에 해당하는 읍리안길, 차곡히 쌓아올린 돌담 너머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단풍나무, 빛 바랜 하늘색 철문이 시시각각 발길을 붙잡습니다. 척박한 논과 밭을 일구는 농부의 부지런함은 내리쬐는 태양도 무시 못 할 삶의 숭고함을 이야기하고, 알록달록 장대 깃발이 내리 꽂힌 성벽을 따라 총 길이 680m에 이르는 청산진성 계단을 오르니 청산의 풍경이 발 아래 아득합니다.
진성의 끝자락에 만나는 마을은 ‘당리마을’이예요. 마을입구에는 영화 <서편제> 촬영 가옥이 있어요. 한국영화 최초 100만 관객을 넘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어린 시절 교육의 목적으로 단체 관람을 강요당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린 마음에 어린 딸 송화의 눈을 일부러 멀게 했던 떠돌이 소리꾼 유봉의 행위가 어찌나 끔찍했던지…. 그것이 고작 ‘한’을 소리에 심기 위함이라는 사실이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던 ‘<서편제>의 그 집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밀랍인형, 초가는 낡고 허술한 관리는 아쉬웠어요.
이어지는 걸음이 2코스 사랑길로 접어듭니다. 당인리에서 구장리를 잇는 해안절벽길로 숲의 고즈넉함과 해안 절경의 운치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걷기 길은 좋은 사람과 함께 걸으면 걷는 즐거움도 배가 된다고 해요. 하여 청산도 사람들은 사랑길을 ‘연애바탕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대요. 사랑길 입구에는 바다로 갈 수 있는 나무 계단이 있어 해변을 거닐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 탁 트인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3코스의 종점에서 시작한 길이 2코스를 완주하고 1코스로 넘어갑니다.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진도아리랑 씬이 촬영된 돌담길로도 유명한 코스는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길에 수놓아집니다. 언덕 위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는데요, 건물 내부를 들어서자 드라마 속 공간이 그대로 재현된 모습이 흥미를 자아냅니다. 서편제 세트장에서는 간단한 요기도 가능한데요, 이곳에서 파전에 동동주 한 잔 걸치니 걷는 맛이 또 새롭습니다.
청산도 슬로길 7코스(돌담길-들국화길)는 상서마을에서 시작됩니다. 마을 전체를 구불구불 감싸고 있는 돌담길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의 돌들이 아다리가 딱 맞아 빈틈없이 촘촘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상서마을은 조선 인조 때 난을 피해 섬으로 들어온 밀양 박씨와 언양 김씨, 나주 임씨가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집성촌입니다. 이 마을의 돌담은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고 있는데요, 섬 지방의 전형적인 구조인 강담(흙을 쓰지 않고 돌로만 쌓는 담)으로 쌓였는데, 이는 바람이 많은 지역 환경에 적합한 축성 형식이라고 해요.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 당시 마을길을 넓히면서 일부 담장을 옮겨 쌓아 변형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옛 고향의 정취를 물씬 느끼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4월 한 달, 청산도 슬로워크 축제기간 동안 청산도의 각 마을의 마을회관에는 각종 특산물을 판매하는 장터가 열립니다. 상서마을의 초입의 슬로장터 역시 김, 미역, 말린 전복부터 콩자반, 각종 장아찌류까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상서마을은 청산도 슬로길과는 별개로 마을을 탐방하는 코스별 길이 조성되어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크게 마을 둘레길과 논두렁 트래킹 길로 나눌 수가 있는데요, 마을이 크지 않아 구석구석 누비는데 별 무리가 없습니다.
마지막 날은 슬로길11코스(미로길)을 따라 도청항 주변 마을을 돌아봅니다. 그 시작은 도청향 뒷골목 안통길 창산 파시문화거리인데요, 파시(波市)란 성어기에 각처에서 모여드는 어민들로 형성되는 계절적인 어시장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연안의 육지시장 일대를 합친 어촌취락을 아우르는데요, 파시가 서는 대표적인 곳은 신안군의 흑산(흑산도 예리), 사월포(자은도 고장리), 개원(임자도 재원리), 원평(비금도 신원리) 등이 있습니다. 청산도 안통길 파시문화거리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번성했던 청산 파시의 옛 생활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부분적으로 일본 가옥의 형태를 띈 건물들이 눈에 띄고 옛 양조장, 여관, 다방, 요리집, 선술집 등등 거리를 걷노라니 걸음걸음 그 시대의 풍경들이 재현됩니다.
Travel Tip. 슬로길
✔️ 슬로길1코스(미향길-동구정길-서편제길-화랑포길) - 5.7km / 90분
복지회관 - 느림의 종 - 갤러리길 - 동구정 - 도락마을 노송 - 독살 - 서편제 복원 세트장 - 서편제 촬영지 – 봄의 왈츠 세트장 - 여인의 향기 촬영지 - 화랑포 전망대 - 화랑포 새땅끝공원
✔️ 슬로길2코스(사랑길) - 2.1km / 48분
연애바위 입구 - 모래남길(당리재) - 읍리앞개
: 당리에서 구장리를 잇는 해안절벽길로 숲의 고즈넉함과 해안 절경의 운치를 즐길 수 있으며 좋은 사람과 함께 걸으면 걷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 슬로길3코스(고인돌길) - 4.5km / 88분
읍리 앞개 - 서편제 촬영가옥 - 청산진성계단 - 읍리안길 - 고인돌공원(하마비) - 청룔공원 - 읍리해변방파제
: 청산도 역사문화 자료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길로, 당리를 감싸 안은 청산진성, 고인돌, 하마비, 초분 등 청산도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길이다.
✔️ 슬로길4코스(낭길) - 1.8km / 40분
읍리해변방파제 - 바람구멍 - 따순기미 - 권덕리해변 - 권덕리마을회관
: 구장리에서 권덕리까지 이어진 낭떠러지 길로 하늘에 떠 있는 듯, 바다에 떠 있는 듯, 모호한 경계선을 따라 걷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 슬로길5코스(범바위길-용길) - 5.54km / 125분
권덕리마을회관 - 말탄바위 - 범바위전망대 - 칼바위전망대 - 장미기해변 - 청계리
✔️ 슬로길6코스(구들장길-다랭이길) - 5.115km / 82분
청계리중촌들샘 - 신풍리마을회관 - 부흥리숭모사 - 양지리구들장논 - 느린섬여행학교 - 베롱나무뚝방길 - 원동리마을회관 - 상서돌담마을
: 구들장논이 펼쳐진 논길을 따라 걷는 길(구들장길)과 청산도 곡창 지대라 불리는 너른 들판을 지나는 길(다랭이길)을 만날 수 있다.
✔️ 슬로길7코스(돌담길-들국화길) - 6.21km / 136분
상서돌담마을 - 동촌리돌담길 - 신흥리풀등해변 - 국화길해변공원 - 상서돌담마을 - 목섬(항도) - 신흥리풀등해변
: 상서리와 동촌리를 지나는 길은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항도로 가는 길은 청산도 비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 슬로길8코스(해맞이길) - 4.1km / 77분
신흥리풀등해변 - 성산포보리마당 - 노적도일출전망대 - 진산리갯돌해변 - 진산천 - 정골꼬랑
: 청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를 맞이할 수 있는 목섬, 신흥리, 상산포, 진산리를 잇는 길로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길이다.
✔️ 슬로길9코스(단풍길) - 3.21km / 55분
정골꼬랑 - 국화리입구 - 오천기미입구 - 진짝지입구 - 지리청송해변입구
: 아름다운 단풍만으로도 눈이 즐거운데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선명한 색의 대비에 눈을 떼지 못하는 길이다.
✔️ 슬로길10코스(노을길) - 2.67km / 51분
지리청송해변입구 - 지리청송해변 - 고래지미 - 도청들녘 - 도청리뒷등길
: 청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길. 노을의 검붉은 농담이 푸른 바다로 흘러내리는 장면이 장관을 연출한다.
✔️ 슬로길11코스(미로길) - 1.2km / 21분
도청리뒷등길 - 시장개 - 청산지역아동센터 - 안통길 - 향토역사문화전시관 - 도청항방문자센터
: 청산중학교에서 도청향에 이르는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창산 파시문화거리에서는 1930년~70년대 전국 3대 어시장으로 유명했던 청산도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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