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커피 자판기가 사라졌다. 도서관을 가면 동전 몇 개를 집어넣고 달달한 커피를 먹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였을까? 커피 자판기가 사라진 자리에 서 있는 화분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코로나 확산으로 왠만한 공공기관의 문이 굳게 닫히고 다시 연지 채 1년도 되지 않는다. 그 안에 벌어진 일인 것이다.
혹시나 해서 도서관 전체를 둘러보았다. 다른 곳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실망감으로 마무리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매점까지 철수한 것을 보면 커피 자판기를 운영하는 업자도 많이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한 집 걸러 커피 매장이 생기다 보니 커피 자판기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가까운 편의점을 들어가면 캔커피를 비롯하여 다양한 커피 제품을 살 수 있다. 거기에 바지 주머니에 찰랑찰랑 소리나는 동전을 넣고 다니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도 많아졌다. 그야말로 커피 자판기의 고난의 시대다.
하지만 아쉽다. 옛날 추억까지 모두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도서관에서 다섯여섯 시간 공부를 하다 보면 뒷목이 뻐근하고 머리도 무거울 때 찬바람을 쐬며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은 행복이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받아내고자 인내하는 시간은 기쁨이었다. 똑 하는 그 소리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능력을 다 짜내서 시험 마지막 문항을 다 풀어낸 마지막 1분과 견줄 만했다.
자판기에는 세 가지 형태의 모드가 있었다. 일반, 고급, 블랙. 고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듯 일반보다는 가격이 항상 비쌌다. 늘 일반과 고급 사이에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고급으로 먹어 볼까?’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선택은 일반이었다. 고급이 일반과 얼마나 다를까. 비교하는 차원에서 한 번쯤 고급의 버튼을 눌러 볼 만도 했지만 새로운 길은 항상 불안감이 존재했기에 최종 선택지는 일반이었다.
10초 지나면 커피와 프림, 그리고 설탕이 적당히 녹은 상태라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면서 한 모금을 마실 때 달달한 맛이 온몸에 전해지곤 했다. 한때 자판기의 커피는 커피는 조금 들어가 있고 프림이 많아서 참다운 커피 맛을 즐기기엔 무리가 있었다는 논쟁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밥 먹고 나서는 자판기를 눌러 커피 한 잔씩을 뽑아 먹는 사람도 많았다.
찬바람에 멍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자판기 커피 한 모금을 다시 마시면 무겁던 눈꺼풀도 말똥말똥해졌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 양이 많지 않다 보니 서너 모금 들이키고 나면 종이컵 바닥이 보일 정도였다. 양이 좀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게 자판기 커피로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지하상가에 발을 들였다. 10시나 되야 지하상가 매장의 문은 열린다. 하지만 매장 셔터가 열려 있고 환한 빛이 나오는 곳이 있었다. 매장 수리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옆을 지나가는 순간 참 낯익은 물건이 보였다. 자판기였다. 새로운 브랜드 이름을 가진 자판기였다. 크고 네모난 형태를 띤 자판기와 달랐다. 자판기 옆에는 여러 가지 메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지하상가에 커피 자판기는 상상도 해 보지 않았기에 신기함을 넘어 신비롭게 느껴졌다. 커피 자판기가 많이 사라진 후 마주친 자판기라 그 모양이 어떻든 반가움도 컸다.
길을 걷다 서리가 내린 논바닥에 옆 어느 집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 뛰며 흥분되었던 것처럼, 옛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물건을 보게 되면 마냥 행복감에 젖게 되는 것 같다. 동전 몇 개를 준비하고 자판기에서 어떤 커피를 선택할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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