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디한 스토리의 시대,
묵직한 나의 서사를 위하여
요즘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먹거나, 먹기 전에 음식 사진을 찍거나, 음식을 먹는 내 사진을 찍거나, 밥을 먹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곤 합니다. 공연을 보러 가서도 직접 눈으로 보는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공연을 보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요약해둔 쇼츠나 짤로 감상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할 때도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을 확인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피드에 올리고, 관심 있게 봤던 다른 피드를 공유하며, 뉴스나 지도의 링크를 서로 나눕니다.
남의 인생을 감상하는 시간은 나의 인생일까요? 멋진 공연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동할 시간이 없이 실시간으로 나의 피드에 게시하는 것이 진짜 나의 스토리일까요? 보여주기 위해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내는 프로필은 진짜 나인걸까요? 사진 찍을 거리를 찾기 위해 방문하는 카페는 정말 나의 취향일까요? 선촬영, 후감상의 시대에 한시도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들고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모모」의 회색도당들이 어쩌면 스마트폰의 형태로 우리의 시간을,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전히 나의 시간을 찾아, 나만의 서사를 만들고 싶은 분들께 다음 두 권의 책을 권합니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우리의 뇌를 망가뜨리는가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박종대 옮김 | 더난출판사
노모포비아는 2018년에 캠브리지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 ‘노 모바일 폰 포비아(No Mobile Phone Phobia)의 줄임말입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 초초하거나 불안함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이 책의 목차에는 이런 제목의 챕터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아도 당신은 스마트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요. 스마트폰을 단지 책상 위에 놔두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스마트폰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사고능력과 지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루 중에 스마트폰을 몸에서 떼어놓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스마트폰은 지구상의 인구보다 더 많이 생산되었고, 이용자 수는 벌써 40억 명이 넘습니다. 통계적으로 인류는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을 스마트폰에 할애합니다. 그 결과 디지털 치매, 지능지수의 하락, 공감과 배려의 상실, 우울증, 여론의 양극화, 민주주의의 위기 같은 다양한 사회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그럼 포노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새로운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지난 30년 사이에 행동반경이 90%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은 진화일까요, 질병일까요. 이 책을 통해 스마트폰의 부작용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내 인생의 주도권을 찾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토리 중독 사회의 도래
「서사의 위기」
한병철 지음, 최지수 번역 | 다산초당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화학 교수를 지낸 한병철 철학자님의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피로사회」 출간 이후 10여 년 만입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서사’와 ‘스토리’입니다. 이 둘은 다릅니다. 스토리는 서사가 아닙니다. 스토리텔링은 한 가지 삶의 형식,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을 전제합니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에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삶의 형식이나 다른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책에서는 파편화된 이슈를 좇는 스토리 중독 사회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서사적 동물(animal narrans)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됩니다. 서사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내 생각과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삶을 게시하고 공유하고 좋아하도록 스마트하게 지배받는 세계에서 서사는 사라집니다. 서사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서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빚어내지 못합니다. 정보의 나열을 뛰어넘는 진실한 이야기, 자신만의 굳건한 서사가 있을 때 예측불가능한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한병철 철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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